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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가지현 Oct 27. 2024

불편한 여행

경험해 봐야 아는 일이 있다. 아무리 옆에서 이야기를 해줘도, 책을 파고들어도 모르는 일이 있다.

    

스스로 기획해 각자 자신의 짐을 짊어지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여행을 해요.


학교 설명회였다. 교실 한쪽에 아이들 여행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공간을 소개하던 교사는 위의 말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그 강조에는 뿌듯함과 자신감, 자랑 같은 감정이 있었는데, 같은 무게로 호응을 하지 못했다. 몰랐기 때문이다. 여행은 시간표를 아이들이 결정한다거나 자기활동 시간이 종일 있다거나 하는 교육과정에 비해 평범해 보였다.


재미난은 봄, 여름, 겨울 1년에 3번 여행을 간다. 입학 후 큰 아이는 19번-초등과정 18번, 중등과정 2번, 작은 아이는 11번의 여행을 다녀왔다. 가깝게는 남양주, 멀게는 여수, 제주도까지.


여행지 결정 과정은 치열하다. 각자 가고 싶은 여행지 선택을 위해 아이들은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친구들을 설득한다. 여행지가 결정되면 그 때부터는 여행 이름, 목표, 프로그램, 조 등을 짠다. 아이들은 기차를 타기 위해 새벽 6시 반에 일어나는 수고를 계획하고 버스와 버스 사이에 비는 시간에 무엇을 할지 준비한다. 식당을 예약하기도 하는데, 주변에 식당이 없는 여행지라면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어 먹는다. 칼과 불이 무서우면 빵과 시리얼로 식사를 대신한다. 여행 후 먹고살려면 요리를 할 줄 알아야겠다며 다음 학기 수업으로 요리 수업을 개설하기도 하니 여행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대개의 경우, 대중교통을 여러 번 갈아타며 이동해야 하므로 캐리어는 금지. 제 몸만한 크기의 가방을 메고 여행을 한다. 학년이 올라가면 가방이 좀 작아지나 싶었는데 어림도 없다. 몸이 커진 만큼 옷도 커졌다.


설명회 때 교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이제야 들린다.

 

스스로 여행을 기획해

=스스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길어내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며

각자 자신의 짐을 짊어지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여행을 해요.

=배움을 해요.


2016년 내게 재미난 여행을 자랑하던 교사는 2023년 큰 아이의 6학년 생활 교사가 되어 재미난 역사상 제일 긴 14박 15일 여행을 다녀왔다. 졸업 여행이었다. 아이는 혼자 서울 여행을 하면서 탕후루를 사 먹고, 친구들과 자전거로 두물머리를 왕복한 후,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가 한라산을 오르고, 성산일출봉에 다녀왔다. 여행에서 돌아온 아이는 ‘14박 15일은 좀 길더라.'며 웃었다. 그래, 내게도 길더라. 아들. 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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