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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Mar 20. 2023

평일에도 훌쩍 떠나는 퇴근박 이야기


갑자기 퇴근하면서 캠핑을 가고 싶어졌다. 아니 불멍을 하고 싶어졌다. 시골로 오면 30분 거리 정도면 불멍을 하러 언제든지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한시간은 가야한다.



늘 가던 곳으로 네비를 찍고 가는데 57분이 뜬다. 퇴근시간이지만 차는 전혀 막히지 않는다. 그래, 시골이 이런 맛도 있어야지.



가다가 유명한 박지가 10분 정도 더 가깝길래 그곳으로 차를 돌렸다. 평일이고 날씨도 흐려서 사람이 많지 않을거란 판단이었다. 게다가 거긴 화장실도 있고 매점도 있다.



그렇게 40분만에 박지까지 도착.


40분 거리에 강가 노지면,, 훌륭한 수준이다.










도착해서 보니 역시 한가하다. 텐트가 한두개 정도 보였다.


최근에 비가 와서 그런지 수위도 꽤 높다. 이곳 접근성은 내가 자주 가는 곳 보다는 훨씬 더 좋다. 주차하는 곳 까지 바퀴에 흙하나 묻지 않는다. 위에 보이는 뷰가 주차하는 곳에서 찍은 사진이니 박지와의 거리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도착해서 짐을 하나씩 풀어 놓는다.


이번 겨울에는 캠핑 한 기억이 없고..


날씨가 좀 풀려서 오늘 나온것이 몇달 만이니...


오랜만이긴 하다.



짐이 단촐하다. 매트, 침낭, 텐트, 물, 라면, 허니버터 칩, IPA 2캔.


그리고 오늘 밤 내 곁을 지켜줄 장작이 끝이다.











그리고 작년에 사놓고 한번도 못쓴 나의 첫 우모바지를 드디어 개시한다 ! 택도 안뜯었다. 근데 아직도 안뜯음!








음.


어쩐지 단촐하다 했더니 폴대를 안가져왔다. 폴대를 집에 어디뒀는지 눈을 감고 생각해봤는데 모르겠다.


비 예보는 없고..


원래 플라이는 잘 안치고 자니까


이너만 치고 자는거랑 그냥 비박하는거랑 별로 차이가 없는거 같다.


그래서 나뭇가지 같은것도 찾아볼 생각도 않은채 그냥 저렇게 자기로 했다.








누워서 하늘을 가만히 바라본다. 구름이 빠르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른다. 구스다운 같다는 생각을 했다.


구스다운안에 들어와 있나?


그러고 보니 집에서 쓰는 이불 베개도 죄다 구스다운이다.


그래서 그런지 집 같이 포근하다는 생각을 했다.



숨을 크게 들여마시고 내쉬고 몇십분을 그렇게 있다가


인스타에 폴대 안가져왔다고 글을 올렸다.


게스트 모집 글도 올렸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흐르는 눈물을 애써 모자로 가린다.


괜찮다. 늘 그런식이니.



누워있다보니 배가 고파졌다.


오늘 첫 끼다.


아침은 원래 안먹는 편이고 최근에는 점심도 잘 먹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대란때 산 구운계란을 집에서 가져와서


한두개를 까먹으며 커피랑 대충 떼우는 식이고


저녁에 농사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서야 제대로된 첫끼를 먹거나


술을 먹거나 하는 식이다.



이게 바로 혼자 사는 독거노인의 일반적인 삶인 것이다.








아, 위 라면팬도 개시다.


백마팬이 너무 무거워서 혼자 다닐때 가볍게 쓰려고 싸게 주고 산 팬인데 처음으로 개시!


가볍고 좋다. 라면 하나 끓이기는 충분해서 혼자 다닐때는 백마 대신 이걸 가져다니면 충분할듯 하다.


얼마줬더라..


좁아서 라면이 온전히 들어 가지 않기 때문에 사진처럼 부셔서 넣으면 된다 !








바람이 좀 불길래 플라이를 덮었다. 침낭 라이너 느낌이랄까. 그러고 보니 비비색을 갖고 싶다.



위 사진을 보면 차 바퀴가 보인다. 저긴 차도 들어 올수 있는 차박의 성지다.


그런 곳에서 비박을 하다니....








비록 폴대도 없고 번듯한 텐트도 없는 밤이었지만 불멍은 제대로 한다.



혼자서 아무런 영상이나 음악도 틀지 않고 그저 불만 바라봤다.


불멍을 하다보면 여러가지 영감들이 문득문득 떠오르는데 이런것들을 잘 캐치해야 한다. 요즘엔 글로 쓰기보다는 육성으로 녹음을해서 영감들을 기록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불길이 가는 곳을 가만히 바라본다. 불은 단 한번도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바람을 따라 공기의 이동을 따라서만 불길이 꼭 이는 것도 아닌듯 하다.


이러저리 휘둘리면서 비규칙적으로 강력한 뜨러움만 내 뿜는다.



불을 계속 보다 보면 옛날에 알던 사람들이 한두명씩 떠오른다,


그게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옛날에 알던 사람들, 어느정도의 옛날인지,


딱히 그리운 사람도 아닌데.



불이 뇌속을 헤집으면서 가라 앉았던 아무 기억들이나 막 끄집어 내는 듯 하달까. 그렇게 한참 또 추억이라고 부르기 힘든 기억 여행을 한다.



2시간쯤 불만 보고 앉아있었을까,


그제서야 옆에 누군가 한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의 일렁임이 누군가의 얼굴에 비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멍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불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장작이 타는 소리와 훅훅 하는 불꽃이 공기를 타격하는 소리,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 소리와 불의 움직임의 리듬이 느껴진다.


그런것을 알아차리는게 진짜 불멍이다.


아름답다. 그 색과 소리, 움직임은 우아하고 명예롭고 거룩하다.




맥주 두캔, 라면 하나, 과자 한봉지를 먹으니 벌써 배가 부르다.


라면하나를 다 먹지도 못했다.



오늘 가져온 20키로 장작을 모두 태우는 것이 내 목표다. 3~4시간이 더 걸릴거 같다. 바람이 조금 불어서 불을 크게는 못 피운다.


아주 낮은 불만 유지 한다.


장작하나가 다 타면 또 하나를 화롯대에 올리는 식이다.









올해는 열심히 다녀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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