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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음 Oct 07. 2020

싫어하는 것에도 싫증이 난다

지속불가능한 절망에 대하여

ADHD는 두 가지 진단명의 합성어이다. 주의력결핍 attention deficit과 과잉행동 hyperactivity을 한꺼번에 일컫기 때문이다. 나처럼 늘 멍하면서도 공연히 정신없고 뚝딱거리는 타입이 주의력결핍 형이고, 흔히 ADHD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부산스럽고 소란스러운 모습이 과잉행동 형이다. 사견이지만 머릿속이 바쁜 타입은 ‘주의력 결핍’, 행동이 바쁜 타입은 ‘과잉행동’인 것 같다. 두 가지 모두가 나타나는 사람도 흔한데 나 같은 경우는 ‘주의력 결핍 우세형’이라고 했다.


ADHD 진단을 받아보니 내 세상만 무너질 뿐 진짜 세상은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었다. 처음엔 인생을 건 뽑기가 잘못된 것 같아 억울했다. ‘선천적’ 질병이라는 건 인생의 시작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에 끝까지 불행하리란 예감을 준다. 내가 체육도 암기도 운전도 수학도 못했던 이유가 이깟 등신 같은 질환 덕분이라니 몹시 허무해지면서 앞으로는 무엇에도 노력하지 않겠다는 패배주의까지 몰려 왔다.


의사는 내 ADHD가 유전적일 확률이 크다고 했다. 그 말은 내가 애초에 잘못되기로 약속된 아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루저가 되었다는 심정에 진짜 루저처럼 부모님을 원망했다. 의심도 했다. 엄마와 아빠 중 누가 나한테 머저리 DNA를 줬을지 형사처럼 검토했다. 두 분 다일 수도 있겠다는 상상은 원망을 두 배로 키웠다. 어쨌든 두 사람 유전자 중 뭔가가 내 전두엽의 구조를 틀었고 이젠 바로잡을 수도 없게 된 상황이었다.


이게 정말 전두엽만의 문제라면 해골 속에서 걔만 꺼내 타협한 후 다시 넣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불가능했고 불가해했다. 이젠 부모님도 나 자신도 현대 의학도 나를 고칠 수 없었다. 뜬금없이 ADHD는 공평한 건지 불공평한 건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건희나 도날드 트럼프도 이 병에 걸리면 가차없겠거니 생각하다가, 이렇게 딴 생각으로 빠져드는 게 바로 ADHD 증상이라는 깨달음에 슬퍼지곤 했다.


나아지는 게 없어도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금세 걷혔다. 이유는 집중력이 너무 부족해서 원망에 공들이는 것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남 탓은 지루했다. 남을 오래 원망하려면 내 마음속 후줄근한 여인숙에 대상을 장기투숙시켜야 했다. 하지만 좋은 일로든 나쁜 일로든, 나를 100% 사로잡을 수 있는 건 늘 나 뿐이었다.


부모님을 해방시키자 유전자라는 단어가 주전자라는 단어만큼 무의미해졌다. 대신 내 인생은 항상 이딴 식으로 끓고 식어왔다는 냄비론적 고찰이 나를 괴롭혔다. 지금은 누구도 진심으로 미워할 수 없는 내 집중력에 감사하지만, 그때는 모든 게 자신이 하자 인간이라는 증명으로 보였다. 어쩌면 나는 편집증적으로 공평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자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그게 나 자신일지라도 미친 듯이 비난했으니 말이다.


점점 아무와도 공유할 수 없는 절망이라면 이게 전부 내 비약이 만들어낸 판타지가 아닌지 헷갈렸다. 나는 29년째 헷갈리고 있어서, 헷갈리는 느낌이 너무 싫다. 그래서 내 ADHD로 인해 세상이 쥐톨만큼도 바뀌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관점을 약간 돌려 내가 쥐톨 만큼의 문제도 없는 인간이라는 방패막으로 삼았다.


나는 살인자도 방화범도 물의를 빚은 유명인도 아니었다. 그냥 통제할 수 없는 혼란에 화가 잔뜩 나 버린, 가여운 나에 불과했다.


당시에는 360도 돌아버려 오히려 정상을 가장하던 내가 이중인격자가 될까 무서웠다. 문제를 키우려는 나와 축소하려는 내가 산불과 소방관처럼 싸워댔다. 어떤 산불은 물조리개에도 잡히지만 어떤 산불은 한 달 내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내 머릿속의 불안, 공포, 스트레스, 열등감의 크기도 그것들을 합산한 스케일도 좀처럼 가늠이 되지 않았다. 괴로움보다 나 진짜 괴로운가? 하는 검열이 더 힘들었다. 진짜로 내가 얼마만큼 힘든지, 보통 이 정도면 얼마만큼 힘들어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힘들다 말고 어리둥절해졌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여서 혼란에도 오래 괴롭진 못했다. 애초에 산이어야 산불이 성립하는데 내 집중력과 인내심은 기실 뒷동산 정도도 못 되었다. 뒷동산은커녕 맛동산 한 봉지를 앉은자리에서 다 먹을 집중력도 없으니 집채만 한 절망을 계속 품을 수도 불태울 수도 없었다.


당시에는 그런 깨달음이 허망해서 좀 더 고차원적인 결론을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건 작위적이었다. 나는 어느 순간엔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상투적 표현에 토 달기를 그만두었다. 악플러는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현상을 표면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그러자 와닿지 않았던 충고들도 전부 새로워졌다. ADHD 확진으로 인해 내 세상은 무너졌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재건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지은 지 30년이면 건물도 재개발을 하는데 29살에 이런 혼란 쯤 뭐가 어떠냐는 낙관의 주인이 되었다.


세상은 양쪽으로 봐야 좀 더 재미있는 곳이었다. 자꾸 깜빡깜빡 뭔가를 잊고, 아주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잊어버리는 내가 예전에는 싫었다. 하지만 이제는 망각이 신이 주신 선물이고, 나는 남들보다 좀 더 많은 선물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든 거 없이 가벼운 인생’은 관점을 바꾸자 ‘잊음으로써 가뿐해지는 인생’이 되었다.


나는 계속 사사로이 절망스럽겠지만, 그것들이 지속불가능하기에 결국은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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