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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박 Feb 19. 2017

평범함의 폭력성을 깨닫다...

기시 마사히코의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 영화 <내추럴 디스오더>

우리는 종종 '평범하게 살기가 제일 어렵다'는 말을 한다. 이 '평범한 삶'을 이루기 어려운 이유는,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기준이 사실 이상적인 높이에 있기 때문이다.


양친 슬하에서, 정상적인 신체와 정신을 가진, 이성애자로 태어나,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구한 후에, 연애를 하고, 결혼 적령기에 결혼하여, 4인 가족을 이루고 나서, 자녀들을 출가시킨 후, 편안한 노후를 보내다 삶을 마감하는, 적어도 10가지 교집합에 속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능하면 많은 가짓수가 겹치는 인생에 속하는 것이 평범에 가깝고, 그것이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으며 산다. 그리고 꼭 행복하지만은 않은 자신들의 인생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며, 그 교집합 인생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폄하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한다.


'나는 이 색깔의 돌이 좋아'라는 말은 거기에 아무도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색깔 돌을 갖고 있는 사람은 행복해'라는 말은 그 돌을 갖고 있는 사람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의 구별을 낳는다. 한마디로 여기에는 행복한 사람과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좋은 것에 대한 모든 말을 '나는'이라는 주어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는 어떤 색깔 돌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 하는 것과 행복한지 아닌지 하는 것을 따로 떼어 내 생각하는 것이다.
-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p. 111>


그러나 선망하는 평범함이 밀집한 사회는 건강하거나 좋은 사회가 될 수 없다. 우리 나라의 교육 평준화는 몰개성화와 천재의 소멸을 낳았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에 의하면, 발효능력이 비슷한 효모만을 골라 모은 이스트는 천연 효모가 낼 수 있는 다양한 발효의 맛을 낼 수 없다고 한다. 정상적인 신체와 정신으로 평범하게 사는 사람이 편안한 삶을 살아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내추럴 디스오더> 속 야코브만큼의 다양한 경험을 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네가 편안한 삶을 살고 싶다면 정상인으로 태어나야 하겠지만, 세상의 다양한 국면들을 경험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아빠처럼 태어나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 <내츄럴 디스오더, 장애인 야코브가 미래의 아이에게 쓰는 편지 중>


역사적으로 지구, 자연, 인간 사회 중에서 다양성의 힘을 이겨낸 일관적인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깨끗하게 자란 생명의 면역력이 더 약한 법이고, 완벽한 진공 속에는 어떠한 물질도 존재하지 못한다. '평범'이라는 단어를 빌어 '평준'을 강요하는 사회에는 꿈도 희망도 없다. 각자의 존재와 단편적인 삶의 파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로 의미있고 행복할 수 있는 사회야말로 진정 건강하고 좋은 사회일 것이다.


누구도, 누구에게도 손가락질을 받지 않는, 평온하고 평화로운 세계, 자기가 누구인가를 완전히 망각한 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세계, 그것은 우리 사회가 꾸는 꿈이다.
-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p.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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