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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박 Apr 17. 2016

벚꽃 엔딩

일상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에 대하여...

어릴 적 탤런트 금보라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사극을 좋아했었다. 제목도 배경도 줄거리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분홍치마에 연둣빛 저고리를 입은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울 뿐이었다.


출퇴근길에 이용하는 용서고속도로 위에서 그 당시 금보라가 입고 있던 분홍빛과 연둣빛이 그대로 떠올랐다. 20년 어쩌면 30년 전 기억이 어쩌면 그토록 생생할까. 금토 톨게이트 너머의 야트막한 산자락에 하얗게 활짝 피는 것도 부족해 용을 쓰듯 분홍빛을 발하는 벚꽃이, 푸르기는 아직 쑥스러운 듯 연둣빛에 머무른 나무들과 어우러져 있는 모습은 분명 그 옛날 TV에서 보았던 치마저고리 빛깔과 꼭 같았다. 그리고 오늘은 늘 지나치던 점심시간 산책로에서, 퇴근길 양재천 한 켠에서도 똑같은 꽃색과 잎색의 조화를 발견했다.


늦봄과 초여름이 만나는 4월이면 온 나라가 꽃 잔치로 출렁이는 듯하다. 발 닿는 곳마다 하얀 벚꽃으로 가득하고, 들리는 음악은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뿐이다. (올해는 벚꽃엔딩보다 화제의 드라마 태양의 후예 OST가 더 많이 들리는 듯 하지만...) 꽃구경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진해 벚꽃 놀이에 한 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다. 보이는 곳마다 하얀 벚꽃들이 가득한 풍경은 과연 어떨까.


그러나 요 며칠 출퇴근길에서 발견한 벚꽃의 분홍빛은 이전에는 본 적 없는 빛깔이다. 내 기억 속의 벚꽃은 하얗게 피어서 비바람을 맞은 후 하얗게 떨어지는, 그저 하얗기만 한 꽃이었다. 그러나 톨게이트 뒷산에서, 개천 한 켠에서, 점심시간에 잠시 걷는 산책길에서 발견한 벚꽃의 끝자락은 분홍빛이었다. 이미 하얗게 피어버린 벚꽃은 며칠 전 가벼운 비 때문인지 후드득 떨어져 버린 자리에 분홍빛의 가느다란 꽃잎새들을 채우고 있었다. 이 꽃잎새마저도 떨어지면 벚꽃이 피던 자리는 연둣빛, 초록빛의 잎새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무심코 지나치던 일상에서 발견한 벚꽃 빛을 바라보며, 문득 벚꽃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저 많이 보이는 하얀 꽃색과 초록 잎색이 벚꽃나무의 전부라고 생각해왔다. 조금만 유심히 바라보면 발견할 수 있던 분홍빛과 연둣빛을 그동안 왜 몰라보았을까. 조금만 더 유심히 바라보면 분홍빛과 연둣빛 사이에 더 다양한 빛깔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게 무심한 것은 아닐까. 스쳐 지나갈 때 보이는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좀 더 관심 있는 눈길로 상대를 바라보면, 겉모습 사이로 보이는 상대의 진실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상대에 대한 오해 없이,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를 내 방식대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약간의 관심만 있으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일 수 있을 텐데... 그 약간의 관심을 갖는 법을 잊고 사는 걸까. 오늘도 내게 보이는 아주 작은 단초들만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재단하려고 애쓰던 내 모습을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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