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를 등지지 않지만 매몰되지도 않는다. 자본주의가 아니라면 다른 뾰족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돈, 땅, 건물, 직장, 학벌 등이 많거나 좋으면 자본주의 사회에 살기 편하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비교 경쟁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매몰되면 걱정이 늘어 행복하기 어렵고 후회할 가능성이 높다. 남의 것이 커 보여 본성대로 사는 삶을 방해한다. 돈 등이 많으면 고맙고, 없어도 괜찮다.
죽을 때 삶에 대해 하는 말이 자기가 살고 싶어 하는 삶에 가장 가깝다고 한다. 조사한 결과 내 삶을 살지 않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을 가장 후회했다.
왜 사는지, 뭐 하고 살지에 대해서는 사실 내 관심 주제가 아니다.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할 따름이다. 아침에 눈이 떠져 일어나고, 집안 분위기를 쾌적하게 하기 위해 청소한다. 에너지가 필요하여 밥 먹고, 건강을 위해 걸어간다. 고객이 궁금하고 필요하다고 해서 집중해 일한다. 일이 끝나 집에 걸어 가고, 사색하다가 피곤하여 잠을 잔다. 내 행동에 특별한 이유가 없으며, 마음 가는 대로 산다.
어떻게 살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다. 현재 미리 정해 둔 목적지가 없다. 가고 있는 길의 매 순간이 내 목적지이다. 공차는 애들이 쉬는 시간이 짧아 더 간절하듯이 유한한 삶이 즐겁고 절절하다. 나중이라도 하고 싶은 목표가 있지 않느냐? 목표를 꼭 말해야 한다면 기대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며 존중하고 감사하는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삶에 내가 주체가 되어 내 본성대로 살고 싶다.’ 마음의 소리를 듣고 따르고 싶다. 남의 욕구나 남의 시선에 따라 내 삶을 살지 않는다. 남의 바람대로 거창한 일을 한 사람치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남이 시켜 끌려다니는 경우 짜증만 난다. 내 삶이 아니고 남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는 삶의 길에 같이 하는 사람을 아끼고 존중하고 싶다.’ 곁에 있는 아내, 자식, 가족, 친구, 고객, 한식뷔페의 밥집 아줌마 등이 그런 사람이다. 어릴 적 밥 주고 똥, 오줌 수발해 주신 부모님이 고맙고, 같이 부대끼며 사는 아내와 애들에게 감사하다. 외로울 때 같이 있어주고 아까워하지 않고 밥 사준 친구가 고맙다. 지난번 밥집 아줌마 팔이 아파 뷔페 문을 닫았다. 아줌마의 고마움을 절감했다. 일이 너무 바쁘더라도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많이 보낸다. 자기 몸으로 삶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혼자가 아니고 늘 같이 걷는 사람이 있다. 같이 걸으니 외롭지 않고 신난다.
‘심심한 삶을 살고 싶다.’ 심심해서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 널뛰지 않는 안정된 마음, 공기, 물, 햇볕, 음식이 좋다. 사지 멀쩡해 움직일 수 있어 좋고, 어제 숙면 취해 머리가 맑다. 통증 없이 배변할 수 있어 고맙다. 세상에 감사할 게 없는 게 아니라 이미 완벽하고 널려 있는데 너무 심심한 성격의 그것들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세상에 끌려 다녀 감사함을 모를 뿐인지도 모르겠다. 심심함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는 사고를 당하면 절실히 느껴 안다. 타이슨이란 권투선수가 이런 말을 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쳐 맞기 전까지는.”
아침에 청소를 했다. 거실과 방의 불을 켰다. 음식 하느라 도마에 사각사각 칼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딸이 맞춘 알람도 크게 지저귀었다.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죽은 후 식구들이 내 삶에 대해 이런 말을 했으면 좋겠다. “그는 삶의 순간순간을 열렬히 아끼고 사랑했으며, 사랑하는 삶, 그녀가 흘러가는 데로 내맡기고, 그녀에게 성실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