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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Mar 08. 2024

제4관 보험 사기 - 7

  정말로 처갓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구태여 열쇠가게에 연락해서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가기까지 하면서까지 확인을 했지만 옷가지 대부분이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선 정말로 명석을 피해 도망친 듯 보였다. 명석은 당장이라도 사람을 고용해서 연정과 처가 식구들을 찾아내고 싶었지만, 일단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처갓집에 가만히 서서 고민하던 명석의 휴대폰이 또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명석의 회사에 지분을 가장 많이 투자한 정대표의 전화였다.

  "장사장, 지금 대체 무슨 일이야? 들어보니까 채권자들이 회사를 찾아갔다 그러고 어음은 지불이 안 돼서 부도날 위기라고 그러고 막 그런 소리가 들리던데. 이게 뭐야 대체?"

  "아 정대표 님, 걱정 마세요. 별일 아닙니다. 잠깐 돈이 멈춰서 그래요. 받을 대금이 있는데, 그거 받으면 바로 해결됩니다. 지금 그거 받으러 가고 있어요."

  "진짜야? 지금 잠깐사이에 연락이 너무 많이 왔어. 지금 소문이 너무 흉흉해. 내가 지금 장사장 사무실로 갈게."

  "아유, 대표님이 오실 필요도 없습니다. 진짜 별거 아니에요. 이거 뭐 괜히 발걸음 하셔서 시간낭비 하지 마시고 제가 내일이나 모레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일단 잘 좀 해결하고 다시 연락 줘요.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그럼요. 제가 잘 해결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들어가십쇼."

  전화를 끊은 명석은 바로 욕을 내뱉었다.

  "아, 씨발 뭐 도와주는 것도 없이 지랄이야."




  3일 뒤, 명석은 집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있었다.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모든 자산을 담보로 빚을 내고 현금까지도 다 처리한 덕에 쓸 돈이라고는 한 푼도 없기도 했거니와, 집을 나서기만 하면 채권자들이 들이닥칠 것이 뻔했다. 보험금을 타기 위해 모든 대출과 어음, 채권의 만기를 같은 시기로 설정한 것이 오히려 명석에게는 독이 되었다. 덕분에 돌려 막는 것도 불가능해져서 당장에라도 돈을 마련하지 않으면 집과 차는 경매로 넘어가고 회사는 부도가 나게 생겼으며, 자신이 투자한 지분도 모두 잃게 되었다. 

  그래서 명석은 어떻게든 보험금이 들어오게 하기 위해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쥐어짜 복권을 사보기도 하고 갑자기 혹시 받아야 할 돈이 있는 건 아닌지 회사 장부를 뒤져보기도 했으며, 혹시 더 투자금을 받을 수 없을까 이곳저곳에 전화를 돌렸지만 모두 별 소득은 없었다. 

  1호에게도 백번은 넘게 전화를 걸었으나, 1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1호가 말한 대로 2주가 지나면 돈이 생길지도 모를 노릇이기는 했지만, 명석은 1주도 더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심지어 이혼에 관해서도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연정은 재산 분할이나 양육비를 요구해오진 않았다. 대신 연우에 대한 양육권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명석은 다른 건 몰라도 양육권을 넘겨줄 생각은 없었고 무슨 수를 써서든 아이만큼은 본인이 키울 생각이었기에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지도 못한 상태로 고민만 깊어갔다.

  결국 명석은 연정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야, 꺼질 거면 너만 꺼져. 애는 절대 못줘. 싫으면 소송 걸던가.'

  명석은 소파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풀리는 게 없었고 1호에게도 연락은 없었다. 명석은 인정하기 싫었지만, 상황이 이쯤 되고 보니 자신이 신에게 속은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평함 운운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씨발.'

  진퇴양난에 빠진 명석은 이제 회생하는 것보다는 도망치는 걸 생각하는 게 더 나을 상황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재산을 현금화해서 도망칠까 궁리를 하던 도중, 상진에게 전화가 왔다. 명석은 일부러 다른 사람들의 전화를 피하고 있었지만, 상진의 전화만큼은 회사와 관련된 것일 테니,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

  "어, 명석아. 그 우리 채권인지 뭔지랑 어음? 그거 있잖아…"

  "아, 내가 해결한다니까!"

  명석은 다짜고짜 소리부터 질렀다.

  "어, 근데 그거 갚아준다는 투자자분이 오셔가지고… 나는 이런 거 잘 모르잖아. 네가 와서 얘기해 보면 안 될까?"

  "뭐?"

  명석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무래도 이게 1호가 말한 자연스러운 지급방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실패할리가 없지.'

  좀 전까지 도망칠 궁리를 했던 명석은 다시 자신감을 얻었다. 

  "내가 지금 갈 테니까, 잠깐만 계시라 그래. 한 20분밖에 안 걸릴 거야."

  명석은 전화를 끊고 황급히 집을 나서 차에 올라탔다.


  20여분 뒤, 명석은 회사에 도착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급하게 사장실로 올라갔다. 명석과 상진, 공동 대표 체제였기에 둘은 각각 사무실을 꾸렸었고, 투자자는 상진의 사무실에 있을 것이었기에 명석은 일단 자신의 사무실에 들러 예비로 갖춰놨던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거울을 보며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자며 스스로를 다독이곤 바로 옆의 상진의 사무실로 향했다.

  "똑똑"

  평소라면 명석은 노크 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안에 투자자가 있을 것이기에 예를 갖춰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가장 안쪽 책상과 의자에는 상진이 앉아서 평소처럼 여러 개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고, 사무실 중앙 소파에는 처음 보는 사람이 편안하게 앉아있었다. 

  그 사람은 명석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명석에게 다가왔다. 명석도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명석보다 키가 크고 덩치도 좋아 보였다. 배가 약간 나오고 얼굴에도 살이 조금은 붙어서 후덕하면서도 온화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동네 아저씨처럼 등산복 차림이었지만, 오히려 명석은 그 모습을 보고 투자자가 돈이 꽤 많은 사람일 것이라 짐작했다.

  "여기가 장사장님? 아, 반가워요. 나는 민정환이라고 해요."

  정환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명석은 정환이 내민 손을 잡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장명석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명석은 고개를 옆으로 숙여 상진을 슬쩍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박대표가 일하느라 바쁜 것 같으니, 제 방으로 옮겨서 얘기하시는 게 어떨까요?"

  "그래요, 그럽시다. 허허."

  명석과 정환은 명석의 사무실로 옮겨서 사무실 가운데 소파에 마주 앉았다.

  "자, 실례지만 혹시 민대표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허허, 뭐 별건 아니고 소소하게 건물 몇 개 관리하는 정돕니다."

  정환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정환의 말에 명환은 속으로 꽝을 뽑았다고 생각했다. 고작 건물 한두 개 가지고 있어 봐야 투자금은 얼마 되지도 않을 것이고, 그런 금액으로는 채권과 어음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일 터였다.

  "아, 그러시군요. 그러면 혹시 투자금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시는지…"

  "200억 정도?"

  정환의 말에 명석은 화들짝 놀랐다. 사실 명석은 정환의 행색이나 말로 볼 때 잘해봐야 10억 정도가 고작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환의 입에서 나온 금액은 명석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 말대로면 어음과 채권을 다 처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남는 돈으로 사업을 더 확장할 수 까지 있는 액수였다. 

  명석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렇게 큰돈을 저희에게 투자해 주신다면, 저희야 감사할 따름이죠. 하지만 너무 많이 투자하시는 게 아닌가 우려도 좀 됩니다."

  "아니 뭐 그렇게까지 큰돈은 아니고… 허허"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관리하시는 건물이 어느 정도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저희로썬 어느 정도 자금의 출처를 알아야 투자받을 때 문제가 없을 것 같아서요."

  정환은 천장을 바라보며 되뇌었다.

  "음… 어디 보자… 테헤란로에 빌딩이 다섯 개, 명동에 5층짜리가 두 개, 압구정에 낮은 거 하나, 잠실에도 낮은 거 세 개, 공덕에 하나… 또 어딨더라? 내가 이런 거 잘 기억을 못해가지고 허허. 우리 박기사한테 물어보면 다 알 텐데. 잠시만, 내가 전화해 볼게."

  명석은 다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십니다."

  "그래? 그럼 전화하지 말까?"

  "네, 네. 굳이 전화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얼른 투자 계약서를 작성하시죠."

  명석은 다급하게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 비서를 찾았다. 비서는 자리를 비운 모양인지 명석이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았다. 황급히 전화를 걸어보니 비서는 손님에게 낼 차가 떨어져서 급하게 차를 사러 갔다고 했다. 명석은 그런 건 됐으니 빨리 올라와서 투자 계약서를 찾아오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시 사무실로 들어온 명석에게 정환이 말했다.

  "아니, 그 장사장님 뭐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너무 성급하시네."

  "아, 그러셨나요? 죄송합니다. 혹시 더 하실 말씀이…?"

  "그, 나는 그냥 투자할 생각은 아니고, 지분을 좀 받았으면 해서."

  "아, 그럼 증자를 해드리면 될까요?"

  "아니, 그것도 아니고…"

  "그러면…?"

  명석은 정환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대체 이 사람이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없었다.

  "증자만 해봐야 이게 비중이 크지 않아서 뭐 별게 없잖아. 나는 어디서 무시당하는 게 제일 싫거든? 그래서 내 조건은 장사장과 박사장의 지분을 나에게 좀 넘기는 게 조건이야."

  정환은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말투는 처음과 완전히 달라졌다. 그래서인지 명석은 정환에게 말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환의 말투에 기분도 조금 나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석이 화를 내거나 불평할 수는 없는 처지였다. 아마 정환도 그런 명석의 입장을 알기에 조금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어쨌거나 정환의 말에 명석은 큰 고민에 빠졌다. 명석은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절대로 본인의 지분은 놓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 200억을 유치하지 못하면 어차피 그 지분은 곧 휴지조각이 될 예정이었기에 지금은 지분을 조금 넘겨서라도 회사를 살리는 게 무조건 우선순위였지만, 그러면 회사에 대한 명석의 영향력이 약해질 우려가 있었다.

  그런 명석의 생각을 읽은 정환이 먼저 말을 꺼냈다.

  "둘이 지금 지분이 얼마나 돼?"

  "저랑 박상진 대표랑 둘이 각각 40%씩이고 다른 투자자 두 분이 각각 10%씩 갖고 계십니다."

  "그럼 이렇게 하자구. 둘이 각각 나에게 13%씩만 넘겨. 그러면 나 26, 둘이 각각 27, 나머지 둘이 10이 되겠지. 어때?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당신들 둘이 계속해서 최대 지분을 갖고 나는 그다음이면 돼. 그러면 200억은 증자가 아니라 전환사채 형태로 투자할게. 이율은 최소로 해서. 그러면 당신들은 최소의 비용으로 200억을 유치할 수 있고, 당신들 영향력도 그대로 유지될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명석에게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명석입장에서는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었다.

  "민대표님이 그렇게 해주시면 저희야 감사하긴 한데, 사채가 최저이율이면 회사가 상장하지 않는 이상 민대표님께서는 별다른 이득이 없으시지 않나요? 어쩌면 오히려 손해일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허허, 이 사람. 그래 그렇게 보일 수 있지."

  정환은 인상 좋게 웃다가 갑자기 정색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런 정환의 모습에 명석이 움찔거렸다.

  "나는 손해 보는 짓은 안 해. 멍청하게 지금 이자수익 좀 얻는 그런 소소한 이익보단 당신네들을 상장시켜서 얻는 이익이 더 크다고 봐 나는. 내 생각에 이 정도 플랫폼은 제대로 궤도에 오르기만 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거야. 그리고 나는 그때 주식을 팔고 빠질 거고. 그 수익은 이자 따위의 푼돈과는 비교가 안 되겠지."

  "저희가 상장할 수 있을 거라고 보시나요?"

  "물론 그래서 여기 투자하러 온 거지. 하지만 명심해. 당신들은 반드시 이 회사를 상장시켜야 해. 이 200억은 그걸 위한 자금이야. 알겠어?"

  정환은 확실히 돈 얘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냉정하고 무서운 얼굴로 변해갔다. 말투도 반 협박조에 가까웠다. 하지만 명석은 오히려 그런 정환을 보며, 확실히 돈이 많은 놈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말씀하신 대로 진행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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