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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Mar 05. 2024

제4관 보험 사기 - 6

  3개월 뒤, 모든 계획을 실행에 옮긴 명석은 서재에 앉아 1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생각보다 늦으셨네요, 명석님."

  1호는 이미 명석에게서 전화가 온 것임을 알고 있었다.

  "늦었다니?"

  "어떻게든 영혼을 팔고 싶어 하셨으니, 계약하고 바로 보험금을 달라고 하실 줄 알았거든요."

  "그런 멍청이는 아니지 내가."

  1호가 전화를 받았다는 것에 명석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명석은 지난 3개월 사이에 혹시나 싶어서 1호의 번호를 조사해 보았으나, 그 어디에서도 그 전화번호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보험금 지급이 필요할 때, 전화를 받지 않으면 모두 허사인지라 명석은 다른 사람을 시켜서 상대가 전화를 받는지 확인을 시켜보기까지 했었다. 그러자 수화기너머에서는 '보험의 계약자가 아닌 분께서 전화를 걸면 통화가 연결이 어렵습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었다. 옆에서 그 안내방송을 같이 들은 명석은 본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보았고, 놀랍게도 명석의 휴대폰으로 걸었을 때는 1호가 바로 전화를 받았었다. 그때 명석은 보험금이 제대로 지급될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고, 더더욱 계획에 박차를 가했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지금, 보험금을 지급받고자 전화를 것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보험금을 지급해 드리면 될까요?"

  "그래, 얼른 내놔. 어떻게 줄거지? 복권당첨금? 아니면 뭐 집 마당에서 기름이라도 나오나?"

  "그건 보상 담당자가 알아서 할 겁니다. 저는 그저 지급 신청만 전달할 뿐이죠."

  "그럼 액수는?"

  "액수는 모릅니다.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명석님이 필요하신 만큼 지급될 거라서요."

  "만약, 내가 지금 갚아야 할 돈이 있고, 그 돈을 갚지 못하면 나는 전재산을 뺏기고 길거리에 나앉을 수 있다면, 빚을 갚을 만큼 지급이 되나?"

  "그게 정말 명석님에게 정말 필요하신 돈이라면 그만큼 지급이 되겠지요."

  명석은 자꾸 말을 애매하게 돌리는 1호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보험금은 확실하게 지불이 될 예정인 것이니, 곧 큰돈을 거머쥘 수 있다는 생각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방금 보상 담당자에게 지급 신청을 넣었어요. 최대한 빨리 지급해 달라고 했으니, 금방 지급될 거예요."

  "그게 언젠데?"

  "방식에 따라 다르지만 늦어도 2주 정도 걸릴 거라 예상되네요."

  명석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마지막 불안요소가 바로 지급이 늦어지는 것이었는데, 2주 정도면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이로써 명석의 계획은 거의 다 마무리되었다.

  "그럼 이제 궁금하신 것들은 다 해결되셨을 것 같으니 이만 끊을게요. 일이 바빠서요."

  "어어."

  "그리고 지급이 완료되면, 이 번호로는 이제 연결이 되지 않으실 거예요. 계약 종료니까요."

  "그래 뭐 영원히 보지 말자고. 아, 혹시 또 영혼이 필요하면 말해. 싸게 줄게."

  "… 끊을게요."

  통화를 끊은 명석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이번 일을 통해 명석이 얻게 될 돈은 여생동안 펑펑 써도 다 쓰지 못할 만큼의 금액일 것이 분명했다.

  명석은 축배를 들기 위해 부엌으로 가 와인을 꺼내고 잔을 찾았다. 싱크대 상부장을 열어 비싼 와인잔을 꺼내려했으나, 너무 기쁜 나머지 평소보다 부주의하게 잔을 꺼내다 그만 바닥에 떨어뜨려 잔을 깨뜨렸다.

  "아, 씨발"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지만, 잔 유리가 사방으로 튀어 부엌이 온통 유리 범벅이 되었다.

  "야! 청소기 좀 갖고 와서 이것 좀 치워봐!"

  명석은 큰 소리로 연정을 불렀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아무런 대답도 없고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아침식사 때만 해도 있었는데, 어느샌가 집 밖으로 나간 모양이었다.

  "이년은 어딜 가면 간다 말이 없어. 애 유치원에서 올 때가 다되어가는데 어딜 처 싸돌아다니는 거야?"

  명석은 유리조각들을 거칠게 차며 그대로 방치하고는 청소기를 찾으려 다용도실로 향했다. 오랜만에 다용도실에서 청소기를 꺼내 콘센트에 연결하려는 찰나, 명석의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에는 연정이 보낸 메시지가 와있었다.

  '나 당신이랑은 도저히 못살겠어. 아무리 나한테 폭언을 퍼붓고 폭행을 해도 연우를 위해서 참으려 했는데 나날이 심해지는 걸 보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연우도 때릴까 무서워. 이혼서류 정리해서 보낼게 도장 찍어줘. 그리고 우리 부모님이랑 나는 당신이 찾을 수 없는 곳에 피신해 있으니까 우리 집으로 찾아와 봐야 소용없어.'

  연정의 메시지를 본 명석은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씨발!"

  분노에 찬 명석은 당장에 연정을 잡으러 가려했다. 친정 부모님까지 모시고 다른 곳으로 피신했다고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일단은 진짜 피신을 했는지 직접 처갓집에 가서 확인해 보려 했다. 그냥 연정의 말대로 얌전히 이혼해 줄 수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직접 잡아 족칠 생각이었다.

  '꺼질 거면 지 혼자만 꺼질 것이지, 애를 데리고 가?'

  명석에게 연정은 가정부와 같은 존재나 다름없을 정도로 애정이 없었다. 그럼에도 연정을 내치지 않은 것은 명석의 자존심에 이혼을 해서 세상에 자신의 결혼이 실패했다고 공표하기는 싫어서였다. 심지어 스스로가 무능력한 연정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다고까지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연정이 이혼 얘기를 꺼냈단 것은 명석의 자존심을 긁는 일이었기에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연정에게 그렇게 매몰차고 함부로 대하는 명석일지라도 자식인 연우에 대한 애정은 갖고 있었다. 일보다 아이가 우선인 그런 성격은 아니었고, 항상 돈이 제일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럼에도 자기 피에 대한 애정은 어느 정도 갖고 있었다. 단지 절반은 연정의 피가 섞였다는 게 거슬릴 따름이었다.

  그런 명석이었기에 당장에라도 연정을 잡으러, 아니면 도망친 흔적을 확인하러 처갓집으로 향하기 위해 차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차를 미처 출발시키기도 전에 상진에게 전화가 왔다.

  "뭐야?"

  "명석아, 여기 지금 사람들이 잔뜩 찾아왔는데 이게 무슨 상황이야?"

  "사람들? 뭔 사람들?"

  "모르겠어. 뭐 채권이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빨리 돈 내놓으라고 하는데, 이게 뭐야?"

  상진의 설명으로 짐작건대 명석이 남발한 채권을 산 사람들이 채권을 추심하러 온 상황이었다. 어차피 명석이 가본다 한들 아직 보험금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돈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산들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들도 이미 회사에 투자금으로 부었기에 일시적으로 돌려 막기에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곧 돈 준다고 하고 적당히 돌려보내."

  "그게 무슨 말이야. 경영이나 뭐 그런 거는 네가 다 알아서 해서 나 하나도 모르잖아. 뭐라고 하고 돌려보내 이 사람들을."

  '하, 모지리 반푼이 새끼.'

  명석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투자처에서 제 날짜에 입금을 안 해줘서 그렇다고 하고 나 지금 그거 받아내러 가고 있다고 해."

  "알았어, 그럼 일단 그렇게 말은 해볼게."

  명석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1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1호의 말대로 신호가 가기만 할 뿐, 전화를 받지는 않았다. 명석은 휴대폰을 조수석에 집어던지고는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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