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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의 전쟁

올레10길(하), 섯알오름과 알뜨르

by 정순동

셋알오름 일제 고사포 진지, 한국전쟁 양민 학살 터 섯알오름, 알뜨르의 군사 비행장 터를 걷는 다크 투어리즘을 이어간다.



셋알오름 일제 고사포 진지​


들판에 말 여러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말이 사람을 경계하는 기색이 없다. 가까이 다가가도 반응이 없다. 풀밭에 놀고 있던 장끼가 놀라 달아난다.

셋알오름 일제 동굴진지

송악산 기슭에는 세 개의 알오름이 있다. 송악산 북동쪽에 위치한 해발 45m, 비고 30m인 말굽형 오름이 동알오름이고, 북서쪽에 위치한 해발 40.7m, 비고 21m인 말굽형 분화구가 섯알오름이다. 송악산 둘레길을 나와서 올레10길을 따라 섯알오름을 오르다 보면, 동알과 섯알 사이에 있는 셋알오름을 먼저 만난다. 카카오맵엔 표고가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분명 별개의 오름이다.

셋알오름에 올라 사계해안을 바라본다.

셋알오름에 오르니 바로 앞에 동알오름과 사계해안이 보인다. 산방산에서 바다로 내려서는 용머리가 셋알오름의 초원과 어울려서 전쟁 비극의 현장과는 거리가 먼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셋알오름에서 본 동알오름과 산방산, 용머리 해안. (2021. 5. 22촬영)

성지의 입구에 세운 홍살문처럼 파란 문이 서 있다. 왜 이곳에만 유독 파란색 올레문이 세워져 있는지 모르겠다. 장면전환 효과를 줄려는 것인지 영혼을 달래는 의미인지 문을 지나면 일제 포진지를 만난다.

파란 올레문 뒤로 고사포 진지가 보인다.

셋알오름 일제 고사포 진지는 태평양전쟁의 중요한 전략적 기지인 알뜨르 비행장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고사포는 항공기를 사격하는데 쓰는, 앙각이 큰 포를 말한다.

셋알오름 일제 고사포 진지

1937년 중일전쟁 초기에 구축된 '고사포 진지'는 1943년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포대를 재정비하여 미군 B29 폭격기에 대응할 고각포를 설치했던 것으로 현지 안내문은 추정한다. 포대는 폭파 제거되었으나 콘크리트 포상 흔적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5기 중 4기는 완성된 기지고 하나는 미완성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일본군 고사포. <출처 : 셋알오름 일제 고사포 진지 안내판>

셋알오름의 남쪽 바다는 우리나라 유인도 중 높이가 가장 낮은 섬 가파도와 최남단의 섬 마라도를 품고 있다. 가파도가 가까이 보인다. 상동항과 하동항, 가운데 풍력발전기도 보인다. 그 뒤로 마라도가 보인다.

셋알오름에서 본 가파도와 마라도

발걸음을 서쪽으로 옮긴다. 우거진 숲이 하늘을 가린다. 천상의 선녀들이 따 먹는 과일, 천선과나무 숲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제주도가 원산지인 뽕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관목이다. 오뉴월에 꽃이 피지만 둥근 화낭에 싸여 보이지 않는다. 가지에 달린 화낭이 흑자색으로 익어간다.


천선과나무의 꽃말처럼 '넘치는 생각'을 하면서 천선과 터널의 오솔길을 지나니 노란 꽃이 핀 유채밭과 무밭이 펼쳐진다. 오른편 유채밭 뒤의 낮은 들판에 비행기 격납고가 여러 기 보인다. 더 멀리 모슬봉이 알뜨르 들판을 내려다본다. 왼편 무밭 가장자리에 셋알오름 일제 동굴진지가 있다. 붕괴 위험이 있어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유채밭과 무밭 가장자리에 셋알오름 일제 동굴진지가 있다.



섯알오름 양민 학살 터​


​셋알오름 유채밭을 지나니 또 하나의 오름이 나타난다. 섯알오름이다. 제주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동여매고 있는 비극의 현장이다.

화순 올레10코스 기점으로부터 11km 되는 지점인 섯알오름에는 알뜨르 비행장을 방어하는 셋알 고사포 포대의 탄약고가 있던 곳이다. 일제가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하여 만든 도내 최대의 탄약고였는데 종전 후 들어온 미군이 폭파시켰다.


백조일손지묘 묘역에 묻힌 희생자의 학살 터(상)와 이를 알리는 진혼비(하)

일제 군사시설이 있던 탄약고 자리는 '예비검속 학살터'로 그 이름을 바꾸어 단다. 일본군이 물러간 땅에서 동족의 지배자가 이곳 주민들을 학살한다.

만벵디 묘역에 묻힌 희생자의 학살 터(상)와 이를 알리는 진혼비(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우리 군대가 양민 210명을 예비검속으로 잡아와 무참히 총살하여 돌무더기와 함께 암장했던 장소다. 당시의 비참했던 상황을 지금까지 보여 주고 있는 학살 터는 도내에서 섯알오름이 유일하다.

수백 명의 뼈가 한데 뒤엉켜 있었던 시신과 함께 나온 돌무더기가 그날의 참상을 전하고 있다.

4.3 비극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당시 총살 참여자 진술을 토대로 '이곳은 1950. 7.16 해병 모슬포 부대 5중대 2소대 분대원과 같은 해 8. 20 해병 3대대의 분대장급 이상 하사관들이 두 차례에 걸쳐 모슬포 경찰서에서 예비검속한 양민을 학살한 장소다. GMC 트럭에 실려온 민간인들을 구덩이 가장자리에 일렬로 세워 총살하고 구덩이 안으로 밀어 넣었다'라고 안내판은 설명한다. ​

학살 집행 참여자 진술

이어진 안내문은 '유족들이 그 사실을 알고 당일 바로 시신 인도를 요구하자, 계엄군은 무력으로 저지했다. 그리고 이곳을 7년간 출입금지 구역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후 유족들은 시신을 수습했으나 수백 명의 뼈가 한데 뒤엉켜 있었다 '라고 그날의 참상을 전하고 있다.


이곳에 추모정이 세워져 있고 추모비가 서 있다.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정
트럭에 실려 가는 길
살아 다시 못 오네

살붙이 피붙이 뼈붙이 고향마을은
돌아보면 볼수록 더 멀어지고

죽어 멸치젓 담듯 담가져
살아 다시 못 가네

이정표 되어 길 따라 흩어진 고무신들
전설처럼 사록 전하네

오늘은 칠석날
갈라진 반도 물 막은 섬 귀퉁이 섯알오름

하늘과 땅, 저승과 이승 다리 놓아
미리내 길 위로 산 자 죽은 자 만나네

녹은 살 식은 피 흩어진 뼈
온전히 새 숨결로 살아 다시 만나네​


<섯알 오름길 / 김경훈 시인>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와 명예회복 진혼비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머리 숙여 묵념을 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구천을 헤매며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계실 억울하게 희생된 원혼들의 한을 어떻게 풀어 드릴 수 있겠는가?

제단에 놓인 주인 잃은 검정 고무신

제단에 놓인 주인 잃은 검정 고무신이 가슴을 메이게 한다.


미안하다. 모른 채 외면하고 살아온 게 진심으로 미안하다.

유족들은 이곳을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깨우치는 역사박물관으로 전환하길 희망한다.

유족들은 '70년의 한'으로 응어리진 이곳을 탈바꿈하여 천부적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깨우치는 역사박물관으로 전환하길 기대하고 있다.

학살의 증거를 인멸한 장소를 알리는 비석

안타깝다. 아직도 역사의 강물을 거꾸로 돌려 진실을 왜곡하려는 세력이 있다. 일부지만 이데올로기의 올가미를 씌워 갈등을 부추기려는 움직임이 있다.

'예비검속 섯알오름 학살 터'의 역사적 사실을 만화로 그린 안내판이 알뜨르에 세워져 있다.

'예비검속 섯알오름 학살 터'의 역사적 사실을 만화로 그린 안내판이 서 있다.


기억하자. 기억과의 전쟁이다. 4·3의 진실을 되찾기 위한 노력들을 헛되게 하지 않게 가슴속 깊이 기억하자.

비극의 현장에 핀 서양금혼초

봄이 되면 섯알오름 비극의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서양금혼초가 추모비 앞 언덕을 노랗게 뒤덮는다. 1980년대 유럽에서 유입되어 다른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는 생태계 교란종 서양금혼초가 무리 지어 자라고 있어 기분이 씁쓸하다.



태평양 전쟁의 전초기지, 알뜨르 비행장


지평선이 보이는 광활한 들판에 똑바로 뚫린 길이 알뜨르 비행장으로 들어간다. 지금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넓은 광장이다.

섯알오름에서 알뜨르 비행장 가는 길

예전에는 대나무를 쪼개 엮은 9m 높이의 파랑새를 안은 소녀상이 탐방객을 맞이하였다. 설치 조각가 최평곤이 동학 농민군이 사용한 죽창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파랑새'다.


겸손한 자세로 평화를 염원하던 그 파랑새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난여름 제주도를 강타한 태풍 힌남노의 피해를 입었는가?' 하며 서운해한다.

평화를 염원하며 제작한 제주 비엔나래 출품작, 파랑새. (2021. 5. 20 촬영)

파랑새 소녀가 있던 광장 가장자리의 무밭은 봄이 되면 소박하기 그지없는 연 보랏빛 무꽃이 들판을 덮는다. 추운 겨울을 난 무가 장다리를 곧게 올려 활짝 핀 무꽃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은 미처 몰랐다.


4월이나 5월에 꽃이 피기 시작해 한 달가량 계속 피는 무꽃은 서늘한 기후를 좋아한다. 이곳이 꽃피우기에 알맞은 곳인가 보다. 꽃말이 ‘계절이 주는 풍요’인 무꽃은 네 갈래로 갈라진 흰 꽃잎 끝이 보랏빛으로 곱게 물들어 가며 나비를 불러들인다.

들녘을 보랏빛으로 물들인 무꽃. (2021. 5. 22촬영)

농민들이 임차하여 농사를 짓고 있다.
일제 강점기 전쟁 유적지가 채소밭이 되어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자. 원래 농사짓던 농부의 밭이었던 생명의 땅이 살생의 땅인 군사기지로 징발되어 주민들의 생활공간이 제한된 곳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지평선만 보이는 광활한 들녘에 무, 배추, 양배추, 콜라비, 감자, 마늘, 호박, 메밀 등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채소밭 사이로 곳곳에 격납고가 보인다.

광활한 알뜨르 들판에 무, 배추, 양배추, 콜라비, 감자, 마늘, 호박, 메밀 등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다. ​

확 트인 넓은 벌판 가장자리 지평선이 보이는 곳에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19기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아랫마을 널븐 들'이란 뜻의 알뜨르 비행장

1940년대 초, 일제가 정뜨르 비행장(제주공항)과 함께 태평양 전쟁의 전초기지로 삼았던 곳이다. 1926년 20만 평 규모로 건설을 시작하여, 오무라 해군 항공대가 들어서면서 40만 평 규모로 확대되고,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비행장 관련 시설이 여의도 광장 면적을 훨씬 웃도는 80만 평을 차지하였다.

1938. 11월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하자, 오무라 해군항공대를 중국 본토로 옮겨가고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가미카제 특공대 비행 훈련장으로 이곳을 사용했다.

산방산이 침탈의 현장 알뜨르를 지켜보고 있다.

산방산이 일제가 전지기지로 사용했던 침탈의 현장 알뜨르를 지켜보고 있다. 중국 남경과 상해를 폭격하기 위해 제로센 전투기들이 알뜨르 활주로를 날아올랐다. 세월은 흘렀지만 ‘제국주의 아시아 하늘’로 연결된 알뜨르의 슬픈 역사를 산방산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잊고 살려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잊고 살려는 자가 있으면,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격납고에 '제로센 함상 전투기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또 하나의 조형물이 있다. 격납고에 '제로센 함상 전투기'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2010년 경술국치 100년 기획, 박경훈 개인전이 이곳 알뜨르 격납고에서 열렸다. '알뜨르에서 아시아를 보다'의 출품작 중 하나인 '애국기 매국기'다. 이 작품은 당시 일제의 악명 높은 주력 전투기인 '제로센'을 실물크기로 형상화한 것이다.

박경훈 작가의 개인전 '알뜨르에서 아시아를 보다'의 출품작 중 하나인 '애국기 매국기'

이 모형 전투기에는 작은 리본들이 빽빽하게 걸려 있다.

하나하나 읽어본다.

평화를 염원하는 간절한 호소다. 각오도 적혀 있다.

누군가 달필로 쓴 일기장도 놓여 있다.

농경지 한쪽에 비행장 부속시설 지하벙커가 있고, 멀리 보이는 모슬봉은 레이더기지가 있었다.

지하벙커. 채소밭에 스프링클러가 돌아가고 있다. 차로 물탱크를 싣고 와서 물을 주는 모습도 보인다. 평화로운 농경지 한쪽 옆으로 콘크리트 구조체로 만들어진 지하 벙커가 있다. 알뜨르 비행장 부속시설이다. 위에 돌무더기로 동산을 만들고 나무로 위장해 놓았다.

돌무더기로 동산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위장한 지하 벙커

입구는 좁지만, 안은 넓다. 남북으로 길이 약 30m. 너비 20m의 장방형 구조로 사람이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충분한 높이다. 중간중간에 환기구도, 밖을 살피는 관측구도 있다. 일제가 비행대 지휘소나 통신시설로 사용하였지 않았나 추정된다.

대륙을 향해 활주로를 차오르던 전투기들을 통제하던 관제탑

대륙을 향해 활주로를 차오르는 전투기들을 통제하던 관제탑이 뼈대만 남아 있다.

1세기가 지나고 굉음도 멈추었지만 침탈의 역사를 증명하는 상징적인 관제탑은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남아있다. 관제탑 사이로 보이는 산방산이 이채롭다.


활주로가 있던 넓은 들판에는 억새풀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활주로가 있던 들판

패러글라이더가 하늘을 날고 있다. 알뜨르는 아무런 속박이 없이 공중을 날면서 자유를 맛보기에 매력이 있는 장소다. 문제는 동력이다. 이륙을 위한 높은 곳이 없다. 알뜨르에서 바다 쪽으로 날면 몰라도.

모터패러글라이더가 알뜨르 들판 위를 나르고 있다.

엔진을 단 모터패러글라이더가 알뜨르 들판 위를 나르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엔진 소음이 귀에 그슬린다. 현 정국을 보는 듯 가슴이 답답하다. 창공을 나르는 자신만의 자유를 누리면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이상화가 노래한 '빼앗긴 들'이 여긴가?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닿은 곳으로 브로콜리와 마늘이 심어진 가르마 같은 밭길을 따라 걷는다.

알뜨르 브로콜리밭 사이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는데 들은 빼앗긴 채 그대로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한다. 알뜨르 비행장과 진지동굴, 4·3 유적지 등 모슬포 일대에 '제주도 평화대공원'을 조성하여 제주도민에게 돌려준다고 약속한다. 정권이 바뀌고 무산되는 듯하던 이 약속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다시 주목을 받지만, 국방부의 제주 공군기지 대체부지 요구로 여태 막혀 있었다. 알뜨르 지역 주변 대상지의 91%가 국방부 소유라서다.

알뜨르 활주로 서쪽 끝에서 운진항 앞 바다로 떨어지는 해

그동안 우여곡절을 겪던 ‘제주평화대공원’ 조성 사업이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2022. 9월 법안소위를 통과해 상임위원회, 본회의 의결을 남겨놓고 있다. 제주도와 국방부는 제주도가 알뜨르 비행장을 무상 사용하는 것에 합의했다. 10년 동안 무상 사용하되 10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고, 전쟁 상황이 발생하면 원상 복구한다는 조건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평화의 섬을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자.


올레는 다시 해안으로 나와 최남단해안로를 만난다.

서쪽 바다로 떨어지는 일몰을 보며 밝은 미래를 꿈꾼다. 토착 왜구(?)라 조롱을 받는 세력의 저항이 만만찮은 것은 사실이나 두려워하지 말고 한발 한발 나아가자.

노을이 알뜨르 감자밭 곁에 핀 해국을 붉게 물들인다.

올레는 다시 해안으로 나와 최남단해안로를 만난다. 해안로는 하모 사구를 따라 운진항으로 이어진다. 송악산이 만든 하모리층이 조간대에 넓게 펼쳐져 있다. 내륙으로 들어가면서 하모리층 위에 사구가 형성되었다. 하모 해안사구에 감자가 자라고 있고 올레는 숲을 통과한다. 볼레낭 아래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오늘 지나온 길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하모 사구에 형성된 숲

송악산 서쪽에부터 이어진 해안선은 완만한 계단 모양의 해안단구를 이루고 있다.

하모해수욕장의 뒤편에는 해안사구가, 그 뒤의 최남단해안로 너머는 내륙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하모해수욕장은 운진항 방파제 건설로 모래의 유실이 심각하여 해수욕장의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다.

하모 해안사구의 소나무와 백년초가 아름다운 집

숲을 빠져나오니 소나무와 백년초가 아름다운 집이 운진항을 바라보고 있다.


등대가 하모해수욕장을 지키고 있고, 가파도 마라도행 정기여객선은 시간 맞추어 운항하고 있다.

하모해수욕장의 노을

하모해수욕장이 보인다. ​

검은 응회암이 뒤덮은 해변에 파도가 밀려와 세월의 흔적들을 덮어 버리는 듯하지만, 파도가 밀려가면 다시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모습을 당당히 드러낸다.

해모해수욕장 해안사구에서 본, 해질녘의 운진항

운진항을 지나서 마을로 들어선다. 대정 전천후 게이트볼장, 대정중학교를 거쳐 하모 체육공원 올레11코스 공식 안내소에 도착한다. 해가 지고 가로등이 켜진다. 시간이 늦었다. 사진을 찍어주며 반갑게 인사하던 안내소 직원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의 일정을 여기서 마무리한다. (2022. 11. 21)

하모 체육공원 올레11코스 공식 안내소




운동 시간 4시간 53분(총 시간 7시간 7분)
걸은 거리 18.9km (공식 거리 : 15.6km)
걸음 수 31,727보
소모 열량 1,873kcal
평균 속도 3.8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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