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계 해안과 송악산

올레10길(중), 사계에서 송악산까지

by 정순동


깨끗한 모래와 푸른 물,

명사벽계(明沙碧溪) 사계 해안​


용머리 해안과 송악산 사이의 해변에 사계항이 있다. 인근 화순항과 운진항보다는 규모가 작다.

사계항

사계항의 빨간 등대는 예래포구의 흰 등대(진황등대)와 부부등대다. 예래 출신 강진황 씨가 자신의 고향인 예래포구에 흰 등대(남편등대)를, 아내의 고향인 사계항에 빨간 등대(아내등대)를 세워 사람들은 이를 부부등대라 한다.

아내등대

사계리 어촌계. 냉전 해체기인 1991년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제주에서 정상회담을 한다. 이때 김옥숙 여사와 고르바초프의 부인 라이샤 여사는 사계리 어촌계를 방문하여 남데기 조업 현장을 둘러보고 해녀들이 잡은 해물을 시식했다. 이를 기념한 조형물이다. 아내가 김옥숙 여사를 대신하여 두 명의 해녀와 라이샤 여사 사이에 앉았다.

고르바초프의 부인 라이샤 여사 사계리 어촌계를 방문 기념 조형물

사계마을. 뒤로 산방산과 단산이 둘러싸고 있고, 앞에는 형제섬과 가파도가 보인다. 사계마을은 형제해안로를 따라 취락이 형성되어 용머리 해안, 산방산 및 형제섬 등 천연 관광 자원을 갖춘 곳이다.

사계해변

명사벽계. 사계항이 있는 사계리는 해저탐험, 요트 타기, 어촌 체험활동 등의 관광과 농어업이 골고루 발전하고 있는 마을이다. 사계 해녀의집과 해변을 따라 카페와 음식점이 이어진다. 곱고 깨끗한 모래와 푸른 물이 어우러지는 곳, 명사벽계(明沙碧溪)는 바로 사계(沙溪)리를 일컫는 말이다.

명사벽계

사계해변에 앉아 또 모양이 변한 형제섬을 바라본다.

형제해안로라 명명된 해변에는 형제섬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고, '헤이 브라더'라는 카페도 있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형제섬은 이곳 사계리의 랜드마크다.

명사벽계 사계 해변에 앉아 형제섬을 바라본다.

바닷소리를 소라의 형상으로 디자인한 김형석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조각가 김형석이 바다의 소리를 소라의 모양으로 디자인하여 메아리치는 고동의 노래를 형상화한 '바다의 소리'다. 작품의 소라 고동 사이로 보이는 형제섬이 수평선 위에 떠있다.

김형석의 '바다의 소리'


사계 해안사구의

마린 포트홀과 선사유적지​


사계 해변은 백사장보다 독특한 암석해안으로 유명하다. 안덕면 사계리, 대정읍 상모리, 하모리 일대에 하모리층이라는 특이한 지층이 발달해 있다. 카페도 줄지어 있고 젊은이들의 사진 찍기 명소로 북적인다.

마린 포트홀(marine pothole)

마린 포트홀(marine pothole)​

거친 모래를 다져놓은 듯하다. 모래와 자갈이 퇴적되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다져지어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세월이 더 흐르면 퇴적암이 된다. 이를 암석화 작용이라 한다.


그러면 주로 암반으로 이루어진 하천의 바닥에 강물의 침식 작용으로 생기는 돌개구멍(pothole)이 어떻게 해서 사계 해안에 생겼을까?

하모리층의 바위는 이끼로 덮여 있다.

사계 해안의 하모리층은 불과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제주도에서 가장 나이 어린 지층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송악산 응회환이 만들어진 다음, 송악산의 화구에서 분출된 화산재와 그곳에서 파도와 바람에 의해 침식된 물질이 인근 해안으로 밀려와 쌓여서 형성된 지층으로 길이가 약 10km가 넘는다.

송악산의 화구에서 분출된 화산재와 응회암의 침식물이 쌓여서 형성된 하모리층은 길이가 약 10km가 넘는다.

생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퇴적된 모래가 단단히 다져진 정도로 보인다. 만조가 되면 해안이 바닷물에 잠긴다. 이때 상대적으로 약한 퇴적층이 파도에 밀려들고 나는 자갈과 모래 등의 마식 작용으로 돌개구멍(포트홀)이 생긴다. 해안에 생긴 포트홀을 마린 포트홀(marine pothole)이라 한다.

하모리층의 마린 포트홀(위)과 포트홀 생성원리(아래)

옛사람들은 생김새가 누룩을 닮아 누룩빌레라고도 부르는 하모리층의 웅덩이를 돌 염전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웅덩이에 고인 바닷물을 가마솥에 넣고 끓여서 소금을 만들었다.

돌 염전으로 이용되었던 물 웅덩이에 소금 결정이 보인다.

사계리 사람 발자국 화석지(천연기념물 464호)​.

선사시대 사람들은 이 바닷가에 사람이 살았던 것일까? 살았다면 어떻게 살았던 것일까?


선사시대 사람들의 흔적은 수천 년이 지난 2003년에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하모리층에서 사람과 동물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 '사계리 사람 발자국 화석지'이다. 현재까지 사람 발자국 화석지가 발견된 곳은 프랑스, 이탈리아, 칠레,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냐, 탄자니아 등 6개국뿐으로 희귀성이 높은 유적지다.

사계 발자국 화석 표본 보호를 위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지질이 독특하고, 사람ㆍ새ㆍ사슴 등의 동물과 식물 화석이 새겨져 있어 볼 만하지만, 보호를 위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길 건너편에 관리사무소가 있다. 화석표본을 전시하고 있어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설명이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 실내 전시장은 준비하고 있다.

화석산지는 출입을 금하고 있고, 건너편 관리사무소에서 화석표본을 관찰할 수 있다.


해안사구와 패총 유적지​


사계 해안사구. ​체육공원을 지나서 송악산을 마주 보면서 걷는다. 하모리층 위에 모래가 쌓여 형성된 해안사구가 이어진다. 사구는 흰물떼새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사구는 흰물떼새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흰물떼새는 봄철이 되면 해안사구에 알을 낳는다. 제주올레10코스가 지나는 사계 사구에서도 흰물떼새가 알을 낳는다고 한다. 조류보호단체와 제주올레는 알이 훼손되지 않도록 올레꾼들의 주의를 당부하는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사계 해안사구

바닷물이 드나드는 조간대인 하모리층 암반지대, 모래 해변에 바로 붙어 형성된 사계 해안사구는 염생식물 군락이다. 갯메꽃, 암대극, 갯강활, 돌나물 등 염생식물이 사구를 덮고 있다. 순비기나무가 넓게 퍼져 있고, 그 뒤는 곰솔이 바람을 막아준다. 바람막이 숲 뒤로 경작지와 주거지가 있다.

사계 해안사구(2021.5.20촬영). 염생식물들이 사구를 덮고 있다.

수많은 새들이 이곳을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계 해안사구 주변은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다.


상모리 패총 유적지. 대정읍 상모리 71-5번지 주거지와 해안도로 사이에 '상모리 패총 유적지'가 있다.

대정읍 상모리 71-5번지의 '상모리 패총 유적지'

1988년 발굴 당시 조개껍질, 간 돌도끼, 팔찌, 구멍무늬토기, 붉은간토기가 발굴되었다. 상모리 패총은 청동기시대 구멍무늬토기 문화의 제주도 유입과 전파 과정을 보여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개발로 사라질 뻔한 청동기시대의 흔적이 해안사구에 묻혀 보전될 수 있었다. 현재 사계 해안사구는 해안도로가 생기고 숙박시설, 식당, 주차장, 체육시설 등이 들어서면서 많은 부분 훼손되었다.


송악산 일제동굴진지​


산이물을 지나니 마라도행 선착장이 보인다. 마라도 가는 여객선은 운진항과 이곳 산수이동항에서 탈 수 있다. 여객선이 송악산 기암절벽의 모퉁이를 돌아 선착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산수이동항 마라도행 여객선 선착장

드라마 대장금 촬영지​. 선착장 바로 옆에 송악산 해안절벽이 웅장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드라마 대장금은 일본 NHK-BS2에서 방영되어 한류 붐을 일으키며 흥행에 대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주인공 이영애는 한류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중국, 대만, 홍콩, 이란 등 아시아권 국가는 물론 미국, 러시아, 캐나다, 터키 등에도 수출되어 많은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인데 안내판은 일본어로 되어 있다. 일본에서의 대장금 인기를 상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제 동굴진지 앞에 세워진 드라마 대장금 촬영지 안내판

일제동굴진지. 이 안내판이 일제의 흔적을 가리고 있다. 일제강점기 말(1945년 무렵) 일본군이 대정읍 상모리 송악산 공유수면에 건립한 일제동굴진지다. 해안 절벽을 따라 17기를 만들어 놓았다. 자살 폭파 공격용 소형 선박을 정박한 군사시설은 등록문화재 제313호로 지정된 근대문화유산이다.

송악산 해안 절벽에 뚫어 놓은 일제동굴진지

사층리. 지층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해변으로 내려간다.

송악산 동편의 석벽은 시루떡을 포개놓은 듯하다. 사선으로 된 기울어진 층리가 잘 드러나 있다. 이를 '사층리'라 한다. 아래 사진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사층리에서 층의 기운 방향은 당시의 퇴적과 관계된 유수 또는 바람의 방향을 나타낸다.

시루떡을 포개놓은 듯한 단층이 잘 드러난 석벽

처음에는 학술적 가치가 있는 바위 절벽에 일제가 구멍을 뚫어 자연을 훼손했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했다.

다크 투어리즘. 전쟁, 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부터 송악산 둘레길, 셋알오름, 섯알오름, 알뜨르비행장까지 다크 투어리즘을 시작한다.

송악산 동편 해안 석벽에 파 놓은 일제동굴진지. 2020년 겨울에 촬영한 사진이다. 현재는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가미카제 특공대. 이는 2차대전 말기에 폭탄을 실은 전투기로 연합군의 군함에 충돌하는 자폭 공격을 목적으로 한 일본군의 자살 특공대다.


자살 특공대가 항공부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가미카제 특공대는 항공부대였지만, 해상에서도 자살공격용 부대가 있었다. 일제는 이 무렵 적의 함대에 다가가 어뢰를 발사하는 소형 잠수함을 개발하여 진주만 공격 때 이 병기를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어뢰를 발사한 다음 재빨리 모함으로 귀환하는 것을 목표로 계획되었다. 하지만 이 소형 잠수함이 작전 후 돌아온 예는 하나도 없었으니 사실상 자살 공격을 위한 일회용 병기였다.

자살 폭파 공격을 하기 위한 소형 잠수함을 숨기기 위한 동굴진지

태평양전쟁 말기, 수세에 몰린 일본군은 해상으로 들어오는 연합군 함대를 향해 자살 폭파 공격을 하기 위한 소형 잠수함을 숨길 군사시설이 필요했다.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하여 송악산 해안 절벽 퇴적암에 17기의 동굴진지를 뚫어 놓았다. ​



송악산 둘레길을 들어선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누구나 감탄사를 연발한다. 동쪽으로 전형적인 종상화산인 산방산이 종을 엎어 놓은 모습을 하고 우뚝 서 있다. 그 왼쪽으로 추사가 좋아했다는 단산이, 오른쪽으로 박수기정이 펼쳐진다. 구름이 걷히면 한라산도 아스라이 보인다.


그리고 갯내음을 싣고 불어오는 바람에 억새풀이 흔들리는 모습은 장관이다. 바람 소리가 상쾌하다. 지나온 올레10길을 돌아본다. 황우치 해변, 용머리 해안, 사계해변, 산수이동항이 눈앞에 펼쳐진다. 특히 사계항에서 송악산 초입까지의 해안도로는 풍치가 좋기로 소문난 드라이브 코스이다.

썩은다리에서 시작하여 지나온 황우치 해변, 용머리 해안, 사계해변, 산수이동항을 바라본다.

감탄사와 함께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멀리 형제섬의 모습이 멋있지 않은가. 이제는 거인이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하며 누워있는 듯하다.


길고 큰 본섬에는 작은 모래사장이 있다. 높고 작은 옷섬은 주상절리층이 일품이다. 썰물 때면 바다에 잠겨있던 새끼 섬과 암초들이 모습을 드러내어 섬의 개수가 3~8개로 늘어난다.

송악산에서 본 형제섬

송악산 굼부리를 휘어감은 둘레길이 제1전망대를 향해 구불구불 이어진다. 봄여름에는 수국이 활짝 피고 해안절벽에 바짝 달라붙어 바람에 떨고 있는 인동초가 흐드러지게 피던 둘레길에 억새가 바람에 휘어진다. 승마 체험장이 있지만 말 타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송악산 분화구를 휘어감은 둘레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정상으로 오르는 탐방로가 일부 개방되었다. 승마체험장 옆 삼거리에 탐방로 입구가 있고 출구는 제1전망대 쪽이다. 분화구는 조망할 수 있으나 주봉과 일부 탐방로는 2027. 7. 31까지 출입제한기간을 연장하였다.

정상으로 오르는 탐방로가 일부 개방되었다.

송악산은 초기의 수성 화산활동과 후기의 마그마성 화산활동을 차례로 거친 화산으로 먼저 폭발한 큰 분화구 안에 두 번째 폭발로 지금의 주봉이 생기고 거기에 작은 분화구가 생겨난 이중 화산체다. 그래서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모여 있다.

주봉과 분화구. 아직도 검붉은 화산재가 남아 있다.

제주의 최남단에 위치한 오름인 송악산은 절울이, 절워리, 저벼리라고도 한다. 해발 104m인 주봉을 중심으로 서북쪽은 넓고 평평한 초원지대이고 서너 개의 봉우리가 있다. 주봉에는 둘레 500m, 깊이 80m 정도 되는 분화구가 있는데 그 속에는 아직도 검붉은 화산재가 남아 있다. 앞에 보이는 주봉으로 오르는 길은 출입 통제구역이다.

정상에 오르니 왼쪽부터 형제섬, 한라산과 군산, 산방산, 단산, 모슬봉, 그리고 동알오름, 섯알오름, 알뜨르가 보인다. 그리고 돌아서면 가파도와 마라도가 남쪽 바다 위에 떠 있다.

송악산 알오름에서 본 산방산, 한라산과 군산, 단산, 모슬봉(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제1전망대 위에 탐방객들이 여럿이 모여 사진을 찍고, 멀리 태평양을 향하는 수평선을 조망하고 있다.


전망대 앞과 뒤의 수직 암벽이 기묘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늘의 뭉게구름, 그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 역광으로 인해 검게 보이는 가파도, 파도를 가르고 달리는 동력선, 바람에 흔들리는 황금 억새풀, 이 모든 것이 제주도 최남단 송악산의 풍광을 더욱 아름답게 꾸민다.

제1전망대에서 본 해안 절벽의 주상절리(왼쪽)와 화구원 초지의 방목장(오른쪽)은 송악산의 풍광을 더욱 아름답게 꾸민다.

외륜 화구벽 둘레길 주변의 넓은 화구원 초지 곳곳에 제주말을 방목하고 있다. 해안경비단을 뱀처럼 감아도는 둘레길에는 향이 만 리까지 간다 하여 만리향이라고도 불리는 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노란 열매가 익어 껍질이 갈라진 속에서 빨간 씨가 꽃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해안경비단을 뱀처럼 감아도는 둘레길에는 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형제섬, 가파도, 마라도가 펼치는 해안 경관과 굼부리 쪽의 넓은 풀밭을 감상하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둘레길 산책로는 제2전망대로 이어진다. 하와이 어딘가를 옮겨 놓은 듯한 이국적인 풍경이다. 큰 키의 워싱턴 야자수가 굼부리를 둘러싸고 있다.

제2전망대에서 본 화구원의 야자수 농원과 그 뒤의 알오름 정상부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인다.

해수면에 납작하게 붙은 가파도가 쟁반처럼 떠있다. 그 뒤로 국토 최남단의 마라도가 한층 가까이 다가온다.

가파도와 마라도

이제부터 서쪽을 바라보고 걷는다. 송악산 서쪽 해변에 하모리층이 조간대에 넓게 펼쳐져 있고, 해안단구와 멀리 내륙 쪽으로 하모리층 위에 형성된 해안사구가 보인다. 이 모슬포 해안사구의 모래 속에서 선사시대 때 쓰던 토기와 전복, 소라 등의 화석이 발견됐다고 한다.

송악산 서쪽 하모리층과 해안단구

멸종 위기 야생식물 「노랑 무궁화(황근)」 2,500본을 식재한 지역을 지나간다.

줄을 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붉은빛을 띠는 회갈색 잎을 달고 있는 것이 황근이다. 황근은 원산지가 한국이고 제주도에서 자생하던 것이 멸종 위기에 놓여 복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아욱과의 무궁화속으로 분류되는 낙엽 활엽 관목으로 꽃말은 '즐거운 추억'이다. ​

황근 복원 사업지역

올레길을 살짝 벗어나 솔잎길로 들어간다.

외륜산 화구벽과 내륜산 알오름 사이의 화구원에는 농사를 짓고 있다. 방목한 말도 몇 마리 보인다. 송악목장이다. 이 솔잎길은 20분쯤 걸으면 지나온 동쪽 승마체험장이 나온다. 우리는 이즈음에서 다시 서쪽 올레길로 돌아간다.

내륜산과 외륜화구벽 사이의 화구원에는 목장과 농원이 있다.

송악산 외륜 일제동굴진지들을 만난다. 1945년 무렵 건립된 동굴진지는 등록문화재 제317호로 지정되었다. 전략적 요충지인 알뜨르 비행장 일대를 경비하기 위한 군사시설로 송악산 외륜에 13곳이 있다.

송악산 외륜 일제동굴진지

총길이가 1,433m인 이 진지는 동굴의 모습이 지네 모양을 하고 있다. 출입구가 모두 41곳이다. 태평양 전쟁 말기, 수세에 몰린 일제가 제주도를 저항기지로 삼으려 했던 정황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시설물이다.


최남단해안로를 건너 셋알오름을 오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