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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올레10-1길, 뉘이 부르는 소리 없어도 발걸음을 멈춘다

by 정순동

연일 이어진 올레길 탐방에 몸과 마음이 지쳤다. 오늘은 하루쯤 편히 쉴 수 있는 길, 가파도를 선택한다. 우리나라 유인도 중 해발고도가 가장 낮은 섬, 가파도 올레길을 쉬엄쉬엄 걷는다.


모슬포 운진항에서 배를 탄다. 현장 발권했는데 승선권은 여유가 있다. 평소에는 시간당 1편 운항하는데 4-5월은 청보리 익는 철(코로나로 청보리 축제는 취소됐다)에는 증편 운항한다. 상동항까지 배 타는 시간은 10분 소요된다. 가파도 들어가는 표를 끊으면 나오는 배편이 정해진다. 대체로 2~3시간 가파도에 머물 수 있다. 우리가 발권한 11:20 배편은 가파도 체류시간이 가장 긴 3시간이다. 아마 점심시간을 고려한 모양이다. 나오는 배편을 따로 요구할 수도 있다.

가파도 상동항 뱃머리에서 바라보는 한라산, 그 앞으로 산방산과 송악산이 보인다.


가오리 모양의 작은 섬, 가파도


상동포구 뱃머리에서 오른쪽으로 올레10-1길이 시작된다. 선착장 앞에 '가파도, 친환경 명품 섬'이란 표지석이 서 있다. 높은 산이 없고 납작 엎드린 모양을 한 가파도는 마치 덮개를 덮은 것 같다 하여 예로부터 '개도(蓋島) · 개파도(蓋波島) · 더 포섬' 등으로 불렸다.

가오리 모양을 한 자그만한 섬, 가파도는 상동과 하동으로 나뉘어져 있다

가파도는 면적이 약 30만 평, 상동과 하동으로 나뉜 가오리 모양의 자그마한 섬에는 93세대 177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느릿느릿 걸어도 2시간이면 가파도 올레를 완보할 수 있다.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상동 선착장 앞의 올레10-1길 시작점에는 스탬프 찍는 이들과 자전거 빌리는 이들로 붐빈다.

처음 만난 곳이 상동방파제 입구의 상동 할망당(매부리당)이다.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섬사람들은 토속신앙에 의지하며 산다. 가파도에도 여느 해안 마을과 마찬가지로 마을 주민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한 할망당이 있다. 가파리 마을을 수호하는 해신당으로, 매년 한 번씩 가정의 안녕, 고기잡이 나간 가족의 무사 귀환과 풍어를 기원하는 곳이다.


정월, 6월, 8월에 택일한다. 메기, 돼지고기, 과일 등의 제물을 할망당에 차려놓고 발원한다. 소원을 빌러 할망당에 갈 때는 무엇보다도 음력 정월 첫 토끼날에 만든 명실(命실)을 꼭 챙긴다. 명실을 차면 그해 재액이 물러가고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는다.

상동 할망당

벽화마을, 하동포구에서 돌아올 때 들를 길이다.

상동포구 대합실 주변에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식당, 카페, 선물 가게, 민박집들이 모여 있다. 여객선이 닿으면 조용하던 포구는 손님맞이에 분주한 모습을 보인다. 가파도는 해안을 따라 난 일주도로와 섬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난 길이 주 도로다. 카페와 식당이 이어지는 섬 중심지 마을로 가는 길에 벽화마을이 있다.

섬 중심지 마을로 가는 길에 벽화마을이 있다. 하동포구에서 돌아올 때 들를 길이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우르르 몰려가는 곳이 자전거 대여소 말고도 또 있다. 유명한 맛집 '가파도 김진현 핫도그' 가게다. 가파도에서 알려져 서울까지 진출하여 건대점도 생겼단다. (2022년 가을 다시 갔을 때는 코로나의 파고를 넘지 못했는지 휴업 중이었다.)

유명한 맛집 '가파도 김진현 핫도그'(2022년 가을 현재 휴업 중이다.)

올레는 바다보리카페 앞에서 오른쪽 돌담길로 들어선다.

마을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요란하던 길이 차분해진다. 집들은 다소 개량했지만 옛집 그대로다. 제주 특유의 멋을 드러내는 돌담길은 언제나 정겹다. 크기가 다른 돌을 불규칙하게 막쌓기 한 돌담은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다. 자연을 그슬리지 않는 돌담, 골목골목 이어지는 마을 길, 울긋불긋한 색깔의 지붕, 그 너머로 보이는 자를 대어 그은 듯한 수평선은 서로 조화를 이룬다.

막쌓기한 돌담길, 울긋불긋한 색깔의 지붕, 자를 대어 그은 듯한 수평선은 서로 조화를 이룬다.

큰 왕돌(보름바위)

올레는 다시 해안 둘레길 가파로로 내려간다. 큰 왕돌이 해변을 지키고 있다. 보름바위라 불린다. 가파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바위다. 함부로 바위 위로 올라가거나 걸터앉으면 바람이 일어나 재난이 생긴다고 이곳 사람은 여긴다. 주민들은 태풍이나 강풍이 몰아치면 하동 가파포구 인근의 까마귀돌이나 큰 왕돌에 누군가 올라간 것 아닌가 의심한다. 큰 왕돌이 심심할까 봐 길 가던 사람들이 정성을 담아 작은 돌멩이를 하나둘씩 조심스레 올려놓는다.

큰 왕돌이 해변을 지키고 있다. 보름바위라 불린다. 가파 사람들이 신성시 하는 바위다.


가파도는 야생화 천국이다


갯무. 올레가 서쪽 해안을 따라 이어지면서 민가와는 점점 멀어진다. 해안가의 작은 채소밭에 '계절이 주는 풍요'라는 꽃말을 가진 갯무가 엷은 자주색 꽃을 피우고 있다. 무가 야생화된 것으로 뿌리가 가늘고 딱딱하며, 잎이 작다.

갯무. 무아재비라고도 불리는 십자화과의 무속으로 분류되는 두해살이풀이다.

갯강활. 해변 얕은 언덕에 하얀 뭉치꽃을 피우며 나무처럼 우뚝 서 있는 덩치 큰 풀이 있다. '모정, 재회, 굳은 의지, 기약, 초청' 등의 꽃말을 지니고 있는 갯강활이다. 소금기가 있는 바닷가에서 자라는 염생식물이다. 해변에 무리 지어 서서 가파도를 지킨다. 구릿대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갯강활. 섬강활이라고도 불린다. 제주도, 홍도, 가거도의 바닷가에 자라는 산형과의 당귀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백년초. 또 하나의 군락은 다년생 초본인 야생의 '손바닥 선인장' 백년초 군락이다. 짙은 녹색의 손바닥 같은 긴 타원형의 편평한 마디 위에 또 마디가 나서 부채 모양을 하고 있다. 씨앗이 멕시코만에서 쿠루시오 난류를 타고 기나긴 여정 끝에 이곳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진 백년초의 꽃말은 '인내, 불타는 마음, 열정'등이다.

북미의 멕시코만에서 쿠루시오 난류를 타고 기나긴 여정 끝에 정착한 백년초

엉겅퀴. 짙은 자주색 꽃을 가지 끝에 달고 있는 엉겅퀴가 돌담과 돌담 사이에 군락을 이루며 자란다. '독립, 고독한 사람, 근엄, 건드리지 마, 순진함' 등의 꽃말을 가지고 있다. 엉겅퀴를 찧어서 상처에 바르면 피를 멈추게 하는 효과가 있다. 피를 엉기게 한다고 하여 엉겅퀴라고 불리게 되었다.

엉겅퀴. 한국, 일본, 중국 북동부가 원산지인 국화과 엉겅퀴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갯까치수염. 해풍에 맞서기 위해 주로 바위 틈새에서 뿌리를 깊게 내리는 또 다른 염생식물, 앵초과의 두해살이풀인 갯까치수염은 파르라니 깎은 턱수염처럼 하얀 꽃이 깨끗하다.

갯까치수염. 원산지는 한국, 중국, 대만, 일본, 필리핀 등이고, 꽃말은 '친근한 정,그리워함, 매력, 멋진 추억' 등이다.

가파 어린이 소망탑. 가파초등학교 어린이들이 꿈과 희망을 담아 맑은 바다 기운이 가득한 곳에 쌓아 올린 「가파 어린이 소망탑」은 가파도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아이들의 가파도 이야기 몇 소절 옮겨 놓는다.


"거센 파도 너울에 업혀 달려오는 파도가 있어 가파도일까? 물결 너머 바다 냄새 찐득한 아이 있어 가파도인 게다."


"따스한 햇살과 맑은 햇살, 마음을 다독여주는 청보리, 밤 이면 별들이 내려앉아 노래하는 이곳. 가파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움트는 자리"

가파 어린이 소망탑

마라도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

'가파도에서 바라보는 마라도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라는 설명과 함께, 검푸른 바다에 하얀 파도가 일고 있다. 마라도는 깎아 세운 듯한 해안 단애로 큰 바지선이 수평선에 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올레는 마라도를 바라보며 바다와 나란히 간다

큰 바지선처럼 수평선에 떠 있는 마라도

고냉이돌

고양이 모양으로 생긴 돌이 마라도가 가장 가까이 보이는 곳에 쭈그리고 앉아 밀려왔다 멀어져 가는 파도를 지켜보고 있다. 고냉이돌이 바라보는 갯바위는 냇골챙이로 불리며 낚시꾼들이 자주 찾는 농어, 참돔, 감성돔, 벵에돔, 돌돔 등의 낚시 포인트로 알려진 곳이다.

고냉이돌이 냇골챙이를 바라보고 있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간다.


올레는 냇골챙이에서 해안을 버리고 풍력발전기가 서 있는 언덕을 오른다. 섬 중심부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가파도 전체 면적의 60~70%가 보리밭이다. 섬 전체가 보리밭인 셈이다. 이곳의 보리 품종은 키가 큰 재래종(향맥)다. 씨만 뿌려 놓아도 잘 자란다. 4월 중순까지는 청보리를 볼 수 있다. 이후부터는 보리가 익기 시작한다. 5월 중순인 지금은 허리 높이로 자란 황금 보리가 절정이다.

가파도의 보리밭은 돌담, 바다, 푸른 하늘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드넓은 보리밭에 머리띠를 두르듯 한 밭담이 경계를 나누고 있다. 보리밭은 돌담, 바다, 푸른 하늘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가파도는 평탄하여 어디서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멀리 마라도가 보이고 황금 들녘에는 수확기를 맞아 보리를 베고 있는 농부가 보인다.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보리밭 돌담길을 따라 '소망 전망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가파도 풍치의 큰 몫을 담당하는 보리밭담

제주는 돌담이 풍치의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가파도의 돌담은 아주 멋지다. 돌담을 쌓은 돌 하나하나가 모두 수석이다. 돌담의 돌과 돌 사이에 바람이 잘 통해 큰 바람을 맞아도 무너지지 않는다. 집담도 밭담도 가파도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지킴이다. 길가의 갯무는 밭담과 귀속말로 속삭인다. 돌담과 이야기를 나누면 가파도의 역사를 모두 전해 들을 수 있다.

길가의 갯무는 밭담과 귀속말로 속삭인다.

가파초등학교 뒷담 옆에 돌과 고장 난 선풍기로 정원을 꾸며놓은 집이 있다. 집담도 아름답지만 주홍색을 칠한 출입문과 주황색 톤으로 처리한 지붕, 붉은 장미꽃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한다. 아마 집주인이 뛰어난 색감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

가파초등학교 뒷담 옆에 돌과 고장난 선풍기로 정원을 꾸며놓은 집.


내가 다 들어줄께, 소망전망대


전망대는 가파도에서 제일 높은 섬 중앙에 만들어져 있다. 높다 하지만 해발 20.5m인 곳에 2.5m 높이로 설치하여 제주 본섬과 마라도, 푸른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명소다.

태양국과 흰송엽국을 식재한 나지막한 전망대

전망대 주변에 꽃밭이 만들어져 있다. 온통 토끼풀이다. 토끼풀이 이렇게 이쁜 줄 몰랐다. 햇살에 반사되어 빤짝빤짝 빛나는 하얀 송엽국과 태양국이 전망대 돌틈에 심어져 있다.

전망대 주변의 꽃밭, 온통 토끼풀이다.

조망대에 올라서니 개성이 강한 산방산이 먼저 다가온다. 그 앞으로 송악산, 오른쪽으로 군산, 그 뒤로 멀리 흰 구름이 감싸고 있는 한라산과 왼쪽으로 모슬봉이 보인다. 항상 느끼지만 제주의 구름은 아름답다. 오늘은 푸른 하늘에 흰 물감을 살짝 뿌려놓은 듯 평온하다.

전망대에서 본섬을 바라본다.

이곳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며 설문대할망에게 소망을 기원한다. 전망대에는 옛날 타작한 보리를 도정하기 전에 임시로 보관하던 고팡(고방)을 보리짚으로 만들어 놓았다. 주변에 소망을 담은 리본이 빼곡하게 달려 있다. 나무에도, 전망대 난간에도.


돌지 않는 풍력발전기

탄소 없는 섬 '카본프리'를 위해 2012년에 설치한 풍력발전기는 가동이 중단되고 철거할 예정이다. 2012년 250kW급 풍력발전기 2기를 설치했지만 가동과 중단을 반복하다가 풍력발전은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20년째 핵심 전력 생산 발전설비로 디젤발전기에 의존하고 있다. 가파도가 20년째 이어지는 디젤발전기의 오명을 씻기 위해 재생에너지 전환사업을 추진한다.

돌지 않는 풍차, 풍력발전소 2기는 가동을 멈추고 철거를 앞두고 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이 부르는 소리 없어도 발을 멈추고, 보리밭을 바라보며 흥얼거린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 ~'

보리밭 사잇길을 걸어가다 발걸음을 멈춘다.

섬 안에 하나뿐인 공장, 보리 도정 공장이다. 보리 찧는 정미소다. 조금 전 냇골챙이 근처에서 보리를 베던 농부가 이내 도정공장으로 왔다.

섬 안에 하나뿐인 공장, 보리 도정 공장이다. 보리 찧는 정미소다.

보리 베기에서 보리타작까지 기계로 다 이루어진다. 옛날에는 낫으로 온종일 보리를 베고, 타작마당에 동네사람들이 모여 도리깨로 타작하던 것을 한 번에 혼자서 뚝딱 해치운다. 새삼 기계의 효능을 실감한다.


「보리를 베면서 가라면 하루에 갈 길을 평지에서 걸어가라면 닷새도 더 걸린다」는 보리를 거두어들이는 일이 힘들지만 신이 나는 일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개엄주리코지에서 가오리 꼬리로


올레는 이동통신국을 담장을 지나 보리밭 사이로 이어진다. 다시 개엄주리코지가 있는 북쪽 해안으로 내려가서 동쪽 해변을 따라 하동포구로 향한다.

개엄주리코지로 내려간다.

어멍, 아방돌. 상동 동쪽에 두 개의 바위가 나란히 있다. 어멍, 아방 돌이라 부른다. 마을사람들은 이 바위에 사람이 올라가면 파도가 거칠어진다고 여긴다. 상동 서쪽의 큰 왕돌과 마찬가지로 바위에 오르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다.

어멍, 아방돌

'너를 본다'는 푯말과 함께 간세가 '6개의 산'을 안내한다. 제주도에는 산의 이름에 보통 오름이나 봉을 붙인다. ○○산인 것은 모두 7개가 있다. 그중 가파도에서는 영주산을 제외한 6개의 산을 볼 수 있다. 오른쪽부터 해안선 가까이 고근산, 뒤로 멀리 한라산, 그 앞으로 군산, 왼쪽으로 가장 가까이 송악산, 그 뒤에 우뚝 솟은 산방산, 가장 왼쪽에 단산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한라산, 산방산, 송악산, 군산, 고근산, 단산 까지 6개의 산을 볼 수 있다

갈퀴나물. 길 오른쪽 낮은 언덕에 갈퀴나물이 널려있다. 주변에 '나물채취금지지역'이라는 푯말이 여러 군데 세워져 있다. 갈퀴나물을 가리켜 이르는 말인지는 분명치 않다.

갈퀴나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나물채취금지지역'이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가파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를 올리는 제단이다.

이를 이곳 말로 짓단이라 한다. 매년 정월 정(丁)일과 해(亥)일을 택하여 제를 지낸다. 마을 사람들은 제관 7~8명을 선정하여 2박 3일 제를 지낸다. 희생 제물은 생육 상태로 올린다. 제를 지내는 사당인 '짓단집'이 언덕 안쪽으로 있고, 그 집이 있던 밭을 '짓단집밭'이라고 부른다.

가파마을 제단

부근덕.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촬영지를 지나면 현무암이 덮인 부근덕이 하동마을을 찾는 손님을 맞이한다. 마을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돈물깍이 있다.


돈물깍. 바닷가 끄트머리에 있는 소금기 없는 용천수가 솟아 나오는 샘이다. '돈물' 담수를, '깎'은 끄트머리를 일컫는 제주어다. 바닷가 마을에는 담수가 적지만 마을이 형성되려면 샘이 있기 마련이다. 제주 해안 마을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명칭이다.

돈물깍

불턱. 해녀들이 물질을 하면서 옷을 갈아입는 일종의 탈의실이다. 불을 쬐며 몸을 녹이며 휴식을 취한다. 그러면서 물질하는 노하우를 전수하고 배우기도 한다. 또 개인적인 고민을 하소연하는 해녀들의 소통 공간이다. 맞은편에 가파 치안센터가 있다. 올레10-1길은 여기서 마친다.

불턱. 해녀들의 탈의실이자 휴게소로 소통공간이다.


또 하나의 포구, 하동포구


하동포구의 정식 명칭은 가파포구다. 까마귀 돌(동산)과 바람바위를 품고 있는 남부르코지가 파도와 바람을 막는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고 수심도 좋아 포구로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가파포구가 있는 하동마을에 주민들이 많이 모여 산다.

가파포구 선착장 입구에 '가파도 개경(開耕)120주년 기념비'가 세워져 가파도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가파도는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무인도로 버려진 섬이다. 1750년(영조 26) 진상용 흑우를 50마리를 방목하면서 사람이 머물기 시작한다. 1840년(헌종 6) 영국인들이 들어와 흑우를 약탈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목장은 폐장된다. 남은 사람들이 1842년 개경허가를 받아 상ㆍ하 모시리 일대에 살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마을을 이루었다. <가파도 개경 120주년 기념비 요약>


가파포구를 둘러싼 자연 방파제, 남부르코지를 들른다.

바깥 해안선을 따라 설치된 테트라포드가 살짝 낮은 곳이 있다. 방파제로 올라가는 계단이 놓여 있고, 테트라포드 사이로 길이 나 있다. 방파제를 넘어서니 넓은 너럭바위가 펼쳐진다.

방파제 넘어 넓은 너럭바위가 펼쳐진다.

하동 할망당(돈짓당) 가는 길이다.

돈짓당은 해녀와 어부들이 물질작업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해신당의 다른 이름이다. 상동 할망당(매부리당)에서 갈라진 당으로 2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풍어제의 원당이다. 제일은 따로 없다. 음력 정월과 6월에 택일하여 제를 올린다.


돈짓당은 바닷가 암반층에 있다. 돌담을 쌓아 시멘트로 제단을 조성하였다. 제단 위에는 2개의 석궤가 있다. 한쪽 궤에는 하동해녀들이 정성껏 마련하여 돈지할망과 하르방께 바친 지전과 물색 천, 실 들이 걸려 다.

하동 할망당(돈짓당)

까마귀돌(동산). 돈짓당과 등대 사이의 남부르코지 위에 둥글게 생긴 큰 바위가 보인다. 그 형태가 마치 까마귀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파도 주민들은 까마귀돌을 상동 동쪽의 어멍, 아방 돌과 상동 서쪽의 큰 왕돌과 마찬가지로 신성시한다. 함부로 올라서거나 걸터앉든지 하면 그 즉시 태풍이나 파도가 몰아쳐 가파도에 큰 재난을 가져오는 것으로 믿고 있다.

돈짓당에서 본 까마귀돌

방파제를 따라 가까이 가본다. 돈짓당과는 사정이 다르다. 방파제에 오르는 계단도, 까마귀 바위로 갈 수 있는 길도 없다. 심지어 방파제 앞에 세워져 있던 안내판도 망가져 있다. 아마 바위 근처에 접근하지 못하게 흔적을 없앤 게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

까마귀돌

하멜등대를 바라만 본다.

가오리 꼬리 형상을 하고 있는 방파제 끝에 등대가 서 있다. 가파도를 '게파트'라는 이름으로 서양에 최초로 소개한 '하멜 표류기'의 저자, 하멜의 일행이 가파도 암초에 파선하여 선착한 기념으로 그 자리에 등대를 세웠다고 한다. 그 이름이 '하멜등대'다. 하지만 그 기착지를 두고 논쟁이 있다. 우리는 등대를 바라만 보고 돌아 나간다.

가파포구와 하멜등대


돌아가는


이 길이 가파도의 중심 마을이다. 마을회관, 의용 소방대, 마을 강당, 교회, 보건진료소, 학교, 도정공장, 경로당, 카페, 게스트하우스, 음식점이 이어진다.


특히 길 양쪽 담장에 그린 벽화가 눈에 띈다. 가파도의 역사와 문화, 생활풍습 등 가파도에 대한 모든 것을 벽화로 잘 정리해 놓아 가파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하동 중심 골목에서 시작된 벽화는 상동포구 입구까지 이어진다.

가파도 고인돌 군락을 찾아간다.

가파보건지소 못 미쳐서 냇골챙이 풍력발전기 사이에 가파성결교회가 있다. 교회를 중심으로 동서로 보건지소에서 풍력발전기까지, 남북으로 하동 해안 마을의 선돌부터 가파초등학교까지 사이의 넓은 들에 고인돌로 추정되는 군락이 있다.

고인돌 군락 (위에서 부터 하동 해안 마을 쪽, 가파성결교회, 가파초등학교 쪽, 풍력발전소 앞)

국립제주박물관은 가파도 내 추정고인돌 56기 중 11기에 대하여 2년에 걸쳐 1차, 2차 학술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는 이렇다.

1. 일반적인 고인돌과 매우 유사하며, 배치 형태와 패총 유물 산포지와 가까운 위치 등으로 미루어 보아 고인돌군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2. 암석 하부에 돌방이나 돌덧널 등 정형성을 띤 유구·유물 등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전수 조사가 아니므로 단언할 수 없으나 적극적으로 고인돌이라 추정하기는 곤란하다.

3. 2004년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56기의 추정고인돌의 일련번호를 정리하고 보호를 위한 장기적인 대책을 강구한 것은 적절한 조치로 평가된다.


이후 고인돌에 대한 기대는 시들해진 것 같다. 벽화와 가파도 지도 안의 표시 외에는 변변한 안내가 없다. 풍력발전기 앞의 추정 고인돌에는 관광객이 올라가서 사진을 찍는다.


섬의 중심지에 학교가 있다.

1922년 개교한 가파초등학교다. 마라도에 있는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장이 휴교 중이니 현재로서는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는 학교다.

가파초등학교

체육시간이다. 잔디운동장 끝에 5명의 어린이가 선생님과 함께 하키를 하고 있다. 아마 전교생인가 보다. 가파초등학교에는 매년 한 명씩 졸업한단다. 그 졸업생은 15개의 상장과 장학금을 받는다고 한다.


뱃머리에 걸려있는 펼침막의 주인공인 변시 합격자도 가파초등학교의 특별한 졸업생인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가파도 출신 변시 합격자 축하 펼침막

수확을 마친 보리밭을 지나간다.

보리 이삭을 쪼아 먹던 참새떼가 날아오른다. 들판 한가운데 상동우물이 있다. 약 150여 년 전에 상동 주민들이 사용하던 우물이다. 식수 공급처이자 빨래터가 있던 상동의 인구가 하동보다 더 많았다. 하동에도 공동우물과 빨래터가 새로 생기자 당시 유일한 포구가 있던 하동으로 주민들이 많이 모여들게 되었다고 한다.

들판 한가운데 있는 상동우물

가파도에는 전봇대가 없다.

송전선을 지중화하였다. 또 태양열 발전 패널을 설치한 집도 많이 보인다. 소라와 전복 껍데기로 울타리와 벽면을 아름답게 장식한 집은 현관 앞에 태양열 발전 설비가 설치되어 있다. 집주인 할머니께 양해를 구했더니 예쁘게 찍어 달란다.

소라와 전복 껍데기로 울타리와 벽면을 장식한 집에 태양열 발전 설비가 설치되어 있다.
조개 껍데기로 고래와 바닷속을 형상화한 집

조개껍데기로 고래와 바닷속을 형상화한 집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도보일정을 마친다. 올레10-1길의 종점인 가파치안센터에서 1.5km를 더 걸어 상동포구 선착장에 도착했다. 올레10-1길을 (가파치안센터에서 상동선착장까지의) 코스를 추가하여 원점회기형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본섬으로 돌아갈 배가 선착장에 들어온다. 승선을 기다리는 관광객이 길게 줄을 서 있다.

가파도에서 운진항으로 돌아가는 뱃길




운동 시간 1시간 51분 (총 시간 2시간 57분)

걸은 거리 7.15km (공식 거리 : 4.2km)

걸음 수 12,100보

평균 속도 3.8km/h

소모열량 668k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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