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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Jun 12. 2023

천아숲길, 한라산 둘레길의 시작

한라산 둘레길 1구간

올레길 473 km를 완주했다. 이제 한라산 둘레길로 성큼 올라선다. 한라산 둘레길은 제주의 역사ㆍ문화ㆍ생태ㆍ자연 경관을 올레길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만날 수 있는 소중하고 신비스러운 길이다.

한라산 둘레길 (출처 : https://www.hallatrail.or.kr)

제주인들의 삶과 흔적이 남아 있는 길, 신화 속 수많은 신들이 머물다간 신들의 길, 한라산 둘레길 일주를 시작한다. 70.8km, 9개 구간이 개통되어 있다. 한라생태숲에서 천아숲길까지는 아직 미개통 구간으로 남아 있다.


한라산 둘레길 1구간 천아숲길


그 첫 번째가 천아수원지에서 보림농장 삼거리까지의 8.7km, 천아숲길 구간이다.

1100 도로를 지나는 버스는 제주버스터미널에서 제주컨벤션세터를 오가는 240번이 유일하다. 천아숲길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왼편에 어승생 제2수원지(천아수원지)를 끼고 천아계곡까지 들어가는 진입로가 2.2km이다.

'한라산 둘레길 1구간 천아숲길, 8.7km'라는 안내를 보고 시간계획을 세우면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진출입로 4.3km를 생각해야 한다. 240번 버스가 50분 ~ 1시간 간격으로 다니며, 막차도 생각보다 일찍 떨어진다.

천아숲길 (출처 : https://www.hallatrail.or.kr)

지루할 것으로 생각했던 진입로는 꽃과 나무가 분위기를 바꾼다.

자줏빛 뭉치꽃을 가지 끝에 달고 있는 붉은토끼풀, '만사를 인내'하라고 조언하는 구절초가 반갑게 길손을 맞이한다.

붉은토끼풀(왼쪽), 구절초(오른쪽)

길가에 찔레나무가 나지막하게 울타리를 친다. 5장의 흰 꽃잎이 쟁반처럼 노란 수술을 소복이 담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진다. 가시 돋친 찔레꽃을 자세히 살피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줄기의 속이 하얗게 마른국수를 닮아 이름이 붙여진 국수나무가 '예민한 감성'을 드러낸다.

찔레(왼쪽), 국수나무(오른쪽)

숲은 점차 상수리나무, 삼나무, 때죽나무, 고로쇠나무, 단풍나무 등의 키 큰 나무로 채워져 길가에 그늘을 만드니 걷기가 한결 쾌적해진다. 천아계곡까지 차량 진입이 가능한 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진입로 자체가 훌륭한 산책로이므로 승용차보다는 걷는 것을 추천한다.

천아계곡 가는길 주변의 숲

숲 속에 있는 산막이 정겹다. 차가 갈 수 있는 길은 끝나고 단풍나무 숲길로 들어선다. 이 역시 얼마 가지 않아 막힌다. 천아숲길의 정식 시작점인 천아계곡이다. 윗세오름과 붉은오름에서 발원한 광령천이 여기서 만나 무수천계곡을 거쳐 외도포구로 흐른다.

천아숲길 시작점

천아계곡은 천아수원지와 인근에 한밝수원지가 있는 수자원의 보고다. 건천이라 말랐지만 우천 시는 물론 비 온 후 이틀간은 출입을 통제할 만큼 물이 세차게 흐른다. 또 천아오름, 냇새오름, 노로오름, 한대오름 등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고산 지역이다.

천아계곡

천아계곡을 건넌다. 초반부터 경사가 심한 오르막이다. 다리에 힘이 쏠린다. 숨이 가쁠 정도로 벅차다. 몇 걸음 걷지 않고 쉬었다 간다. 하지만 힘든 길은 10분 정도이고 다시 완만한 임도로 이어진다.

급경사는 잠깐이다.

둘레길이란 말처럼 일부 계곡을 지나는 바윗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평탄한 오솔길이다. 특별한 장애물은 없고 완만하다.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다. 산악자전거를 타는 건 금지인데 대여섯 명이 줄지어 지나간다.

참나무과의 교목과 제주조릿대

여유가 생긴다. 녹색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온다. 초입부터 느꼈지만 제주조릿대가 지표를 점령하고 있다. 조릿대는 다른 풀이나 관목과의 공존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포옹'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때죽나무 꽃향기가 은은하게 퍼진다. 종모양의 꽃이 촘촘히 달려있다. 하얀 꽃송이가 눈 내린 것처럼 길바닥에 떨어져 있어 꽃길을 걷는다.

때죽나무

때죽나무 열매껍질은 물고기를 일시적으로 혼절시키는 에고사포닌이라는 물질이 있다. 이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제주 중산간 마을에서는 때죽나무를 이용하여 빗물을 받아 생활용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잠시 조릿대가 사라진 자리에 천남성이 고개를 내민다. 관중과 풀고사리가 땅바닥을 차지하고 있다. 두릅나무, 고로쇠나무, 굴거리나무가 점점 늘어난다.

천남성(위), 풀고사리(아래)

참나무가 우거진 표고버섯ㆍ약초재배 연구농장을 지나 쉬어간다. 광령천 지류를 건너면 다시 임도로 이어진다. 바리메오름과 노로오름 가는 길이 나누어지는 삼거리다. 천아계곡 입구에서 1.7km 지점으로 50분 소요되었다.

광령천 지류(위), 임도 삼거리(아래 왼쪽), 등수국(아래 오른쪽)

산철쭉이 붉게 피어 있고, 독할도 보인다. 등수국이 큰 나무를 을 타고 오른다. '등나무처럼 줄기를 감고 올라가는 수국'이라 등수국이란다. 등수국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샘을 내듯 '날 봐'하며 덜꿩나무가 작은 별 모양의 흰꽃을 수없이 내민다.

덜꿩나무

주목, 굴거리나무, 전나무의 숫자가 점차 늘어난다. 노로오름 삼거리다. 노로오름을 올를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지나친다. 훤칠한 큰 키의 삼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는 인공조림지가 시작된다. 삼나무숲에는 극성맞게 자리를 잡고 있던 조릿대마저 힘을 못 쓴다. 간벌을 하고 있다. 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굴거리나무가 고개를 내민다.

삼나무 조림지

임도는 한대오름과 삼형제오름 사이로 이어진다. 삼나무 조림지를 지나니 다시 조릿대가 나타난다. 조릿대가 차지한 길섶에 박새가 자리다툼을 한다.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박새가 황백색 꽃을 피우고 있다. 은은한 초록빛이 도는 6장의 꽃잎은 초록색 수술을 담고 있다. 물통이 곳곳에 보인다. 아마 색달천 발원지가 아닌가 추측해 본다.

박새(왼쪽), 색달천 지류(오른쪽)

표고 재배장 삼거리에 '이슬 먹은 한라산 ○○○ 표고버섯'무인 판매대가 있다. 아내는 한 봉지 산다.  '당신의 양심을 넣어주세요'라고 돈 통에 대금을 넣는다. 맞은편에 '멧돼지 주의' 경고 펼침막이 멧돼지와 마주쳤을 때 행동요령을 알려준다.

표고버섯 무인 판매대

바위가 공중에 뜨있다. 식물에 영양을 공급할 수 있는 흙이 암반 위를 얇게 덮고 있다. 빈약한 토양에서도 식물을 뿌리를 내리고 숲을 이루고 있다.

바위 그늘

표고 재배장 삼거리에서 20여 분 더 걸으면 한라산 둘레길 1구간 종점이자 2구간 시작점인 보림농장 삼거리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1100도로까지 1.6km, 영실 입구까지 0.5km를 더 나가야 버스를 탄다. 둘레길의 불편한 점이다. 하지만 나가는 길 역시 숲 속의 명품 산책로다.

표고 재배장

불편한 점은 따로 있다. 길 안내 화살표가 순방향인지 역방향인지 아리송할 때가 있다. 이정표에 맞추어 파란색(순방향), 빨간색(역방향)으로 구분했으면 좋을 텐데. (2023. 5. 23)




운동 시간 3시간 32분(총 시간 4시간 55분)

걸은 거리 13.37km (공식 거리 : 8.7km, 진출입 거리 : 4.3km)

걸음 수 22,580보

소모 열량 1,434kcal

평균 속도 3.7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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