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 작가의 작품 중에 <사과는 잘해요>라는 장편소설이 있다. 작품에 나오는 어수룩한 두 주인공은 할 줄 아는 건 ‘사과’밖에 없다. 얼마나 사과를 잘하는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대신 사과하는 '사과 대신하기'를 생업으로 한다.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사회 부조리를 풍자하는 줄거리는독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사과를 할 줄 모르는 정치인이 많다. 권위의식이 몸에 밴 행동과 오만을 넘어 뻔뻔하기까지 한 후보도 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오보를 내고도 사과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을 지지자들도 닮아간다. 사과 대행업체'가 필요한 때다.
20대 대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 막판이라 온갖 네거티브가 난무한다. 가짜 뉴스가 SNS를 돌아다닌다. 마침내 내가 포함되어 있는 단톡방에도 부정선거를 하는 듯한 내용의 동영상이 올라왔다. 사전 투표 마지막 날,선관위가 오미크론 확진자 사전 투표 부실 관리 의혹으로 비난을 받던 때다. 혹시 이게 선거 불복의 빌미를 줄까 걱정되는 차에, 얼핏 보아 부정선거의 증거인 것 같은 동영상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런데 이를 자세히 살펴본 사람이 반박글을 올린다. 선거판이 가열되고 있다.
단톡방의 대화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대선을 앞둔 타이밍에 무슨 영상인지 이해가 안 되네요!!!
영상을 보면 2018년, 남양주인데. 2018년에는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있었습니다. 19대 대선은 2017년이었고. 남양주에 보궐선거가 없었으므로 지방선거만 있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영상에 "민주주의"란 글씨 같은데 "주"자 하나를 흐리게 해서 "민주□ 의"만 보이게 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 생각됩니다. 지난 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선을 앞두고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영상 같은 느낌입니다.
자세히 안 보면 민주당에서 부정 선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요즘 이런 영상 퍼 나르는 사람이 많던데, 이게 사실이면 현 정부에 비우호적인 언론이 가만히 있었을까요."
"말 나온 김에 한 마디 하겠습니다. 참 답답하고 참담한 현실입니다.
거대 양당에서 내놓은 후보가 마음에 드는 이 없는 데다, 한쪽으로 편향된 언론으로 인해 국민은 양분되고.
5년 전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도, 그리고 대안 없이 반대만 하는 국힘당(전 자유한국당)은 없어져야 할 당이라고비난하던 사람들도, 국힘당이 '대통령에게 아베 만날 것'을 주장할 때 '아베당'이라고 조롱하던 사람들도,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도 지금의 현실을 헷갈려하니.
한번 배반한 사람이 두 번 배반하는 건 쉬운 일인데. 최선이 안되면 차선이라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결국 우리 국민의 수준에 맞는 사람을 뽑겠지.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자기 눈 앞의 들보는 못 본다. 마치 젊은이 생각한다며 집값 오르는 건 걱정하면서, 내 집값은 내리면 안 되는 것처럼.
튀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큰 도둑을 못 보고 작은 도둑놈만 잡아야지. '카드로 어찌 주식을 따라잡겠는가?' 답답할 뿐이지만 이게 우리의 수준이라면 어쩌겠습니까."
대화는 이어진다.
"오호 통제라"
"국민의 집단지성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보다 못한 후보에게 표를 찍겠습니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고생 좀 더 해야겠지요."
익명성 뒤에 숨어 인터넷에 가짜 뉴스를 유포하는 사람이 사과 할리 만무하지만, 지인들의 단톡방은 그 경우가 다르다. 그래도 한 때는 이 사회의 '정의와 공정'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했던 적이 있는 동지들이 모인 단톡방이면 더욱 그렇다.
문제의 동영상은 지난 지방선거 후 선거 용품의 폐기처리를 적절하게 하지 못한 것을 왜곡한 가짜 뉴스다.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장면이 나오지만 부정선거의 증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이번 대선의 일은 더더욱 아니다. 아마 애초 우리의 단톡방에 이 영상을 올렸던 사람도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다시 영상을 꼼꼼히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인데, 반박글을 보고도 묵묵부답이다. 해명도 없고 사과도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