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다음 날
'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한 직선제 대선에서 양김 분열로 노태우에게 과실을 넘겨준다. 이어 '88년 4월에 제13대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있었다. 각 지역구에서 2명 뽑는 중선거구제에서 여야 큰 두 당이 안전하게 동반 당선되다가, 각 지역구에서 한 명씩 뽑는 소선거구제로 바뀐 첫 선거였다. 민주화 후 첫 총선이기도 하고. 대선 후 곧바로 이루어진 총선이다. '1노 3김'은 대선에 이어 다시 한판 승부를 겨룬, 여러모로 긴장된 선거였다.
나는 선거 전날 일생일대의 큰 사고를 쳤다. 일과를 마치고 선배 노 선생과 함께 중앙동 인쇄 골목으로 내려간다. 선배의 친구 김 사장과 함께 한잔한다. 평소에도 자주 술자리를 하던 사이였고 또 내일은 선거일이라 휴일이니 쉽게 의기투합했다. 중앙동 근처에서 1차를 하고 이어 서면으로 장소를 옮겼다. 국민은행에서 부전시장 쪽으로 들어가는 어디쯤이었을 것이다. 통일민주당 어느 후보 사무실 유리창이 박살이 나 있었다. 두 명 뽑기 하다가 한 명 뽑기로 선거법이 바뀐 첫해라 선거 분위기가 혼탁을 넘어 살벌했다. 곳곳에서 폭력사태가 일어났다.
박살난 선거 사무실을 보고도, 그 근처 어디엔가 술집을 잡은 게 화근이었다. 우리가 술 몇 잔 돌리고 나서 인가 다른 팀이 우르르 들어온다. 네댓 명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바에 일렬로 주욱 늘어서 앉았다. 50대로 보이는 한 사람이 자리에 앉으면서 술집 앞의 선거 사무실 광경에 대해 나름의 해석을 다는데.
"소선거구제 이거 문제야. 김대중이 한테 꼬여서 소선구제로 법을 개정해 갖고. 우리 동네 동구는 아아들이 몰려다니면서 선거운동하는 꼴을 보니 가관이더라. 내일 두고 봐라. 노무혀니 그 빨갱이 새끼 떨어질 끼다."
노무현은 그때 전두환 정권 실세였던 상대 후보를 가볍게 누르고 당선되었다. 사건의 본질은 아니지만 오늘만은 꼭 밝혀두고 싶다, 그 사람 저주와는 달리.
여야 동반 당선의 1구 2명 뽑기는 대표적인 악법이라 인식되어 소선거구제가 시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김대중'에, '노무현'에, '소선거구제'에, '뺄갱이 새끼'까지. 나는 순간적으로 꼭지가 돌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한 사람의 뒤통수를 아주 매섭게 한 대 갈겼다. '에라이 새끼야'하면서.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화장실로 갔다. 그때 내 나이는 30대 후반이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는 나이가 사회 질서의 기준이 되었던 때인데. 30대가 50대의 뒤통수를 갈긴 거다. 그것도 아무 예고도 없이. 뒤에 들은 이야기인데 그 사람 친구들은 아는 사람인가 했단다.
볼일을 보고 화장실을 나오니 난리가 났다. 씨름 선수 이봉걸만 한 사람이 앞을 딱 막고 나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 또 서너 명은 뒤에 둘러서서 위협을 하고.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덩치 큰 이봉걸이의 행동에 몸을 맡겼다. 그렇지만 입은 놀려댄다.
"니 마음대로 해라. 내가 뒤통수 때릴 때는 맞아 죽을 생각 안 하고 때렸겠나."
김 사장과 노 선생이 적극적으로 말린다. 대신 사과도 한다. 제풀에 지친 이봉걸이는 슬며시 손을 푼다. 여기서 이봉걸이는 진짜 씨름 선수 이봉걸은 아니다. 내가 그냥, 덩치가 커서 이봉걸이라 하는 거다.
우여곡절 끝에 싸움은 말려지고 우리는 황급히 자리을 피해 옆집으로 간다. 이봉걸이가 없어 긴장이 풀리니 김 사장과 노 선생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왜 그랬는지 묻는다. 화장실 갈려고 일어서는 줄만 알았다고 한다. 사실 그날 김 사장이 그 뒤통수가 말한 것과 비슷한 내용을 몇 차례 말했다. 그 뒤통수 같이 노골적인 표현은 아니었지만. 그런 김 사장 때문에 나는 기분이 썩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김 사장도 그 사실을 어느 정도 알아채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 하릴없이 계속 웃어대지.
다음 날 아침, 잠을 깨니 속이 쓰린다. 머리도 아프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아프다. 투표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누워 있다가 신문을 보니 전라도 어디에서는 비슷한 일로 경찰서까지 가서 둘 다 입건되었다는 기사가 났다. 내가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참 더러웠다.
어제저녁, 밤을 꼬박 새웠다. 새벽 두 시를 넘기면서 낙선할 것을 알고도 인정할 수 없었다. 후보가 패배 선언을 할 때까지 개표 방송을 보다가 잠깐 눈을 붙였다. '뭐 웃고 말지'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분이 더러워진다. '88년 4월처럼 어떤 놈이든지 걸리기만 하면 뒤통수 한 대 갈기고 싶다. 딱 한 대만. (2022.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