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공고에는 이북 출신의 실향민이 많았다. 우선 설립자도 이사장도 함경도가 고향이다. 경비원 김 씨도 황해도 해주가 고향이다. 당시는 교사가 숙직을 할 때다. 경비원과 함께 한다.
요즘 같으면 근무 중인 당직자가 술을 마시면 큰 일 날 일이지만, 그 때는 김 씨와 같이 저녁 먹으면서 소주도 한잔씩 했다. 술기가 돌면 김 씨는 고향 떠나 여기까지 온 사연을 이야기한다. 여러 차례 들은 이야기다. 숙직할 때마다 김 씨는 매번 처음 하는 것처럼 반복한다. 끝내는 눈가가 촉촉해진다.
들은 지 오래되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사연은 대충 이렇다.
김 씨가 결혼 한지 일 년 정도 지나서 김 씨의 아내는 출산을 위해 친정에 갔다. 그 사이에 6.25가 터진다. 김 씨는 인민군에 입대하게 된다. 인민군이 순식간에 서울을 점령한다. 김 씨가 있던 부대는 서울 외곽 가평 근처에 주둔한다. 얼마 후 인천 상륙작전으로 서울을 탈환한 유엔군과 국군에 밀려 김 씨 부대는 와해되어 흩어진다.
본대와 헤어진 김 씨는 강원도 어느 산골 빈집에 숨어들었다가 붙잡혀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가게 된다. 중공군이 참전하고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져 어느 쪽도 상대방을 압도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1951년 7월에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한 정전협상이 시작된다. 휴전선 위치, 전쟁포로 문제 등을 둘러싼 대립이 지루하게 이어지며 정전협상은 2년 동안이나 계속된다. 자연히 인민군 포로들은 자신들의 처리 문제에 촉각이 곤두선다. 논쟁도 일어나고 포로들 사이에 갈등도 생긴다. 김 씨는 포로수용소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자세히 하지 않는다.
아무튼 김 씨는 판문점까지 간다. 북으로 가느냐, 남에 잔류하느냐, 아니면 제3국으로 가느냐는 본인의 의사로 결정된다. 북으로 가면 포로가 되었으니 처벌받을 것이란 소문도 돌았다. 그렇지 않을 것이란 말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경우도 자신할 수 없었다.
김 씨는 남을 선택한다. 김 씨와 가장 친했던 친구는 북을 선택했다. 그 친구는 가서 죽더라도 고향땅 한번 밟아 보고, 부모형제 만나보고 죽겠다고 말했다고한다. 이 말을 할 때 김 씨의 목소리는가볍게 떨린다. 김 씨는 눈가에 눈물이 돈다.
한 번은 내가 비겁했다고말한다. 딸을 낳았다는 소식만 듣고 얼굴도 못 본 딸과 마누라를 두고 ㆍ ㆍㆍㆍㆍ이 대목에서 김 씨는 말을 다 잇지 못 하고 엉엉 운다. 그날이 아마 추석날이었던 것 같다. 명절이 되니 북녘의 가족들이 생각났는가 보다.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하거나 명절이 되면 김 씨는 소주병을 앞에 놓고 남쪽의 자식들에게 통일되면 내가 죽고 없더라도 너그 누부는 꼭 찾아보라고 골백번씩 다짐한다. 북녘의 큰엄마를 찾아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아, 나도 묻지 않았다.
어릴 때는 다소곳이 듣던 아이들이 커 가면서 그 말을 듣기 싫어한다고 김 씨는 고민한다.
선거 때가 되면 늘 있는 이야기지만. 오늘도 어머니께선 경로당에서 들은 이야기를 하신다. 요번엔 이상하게도 선거 기간엔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더니 후일담이 많다는 말씀을 서두에 붙이면서.
"민주당은 북한만 좋아한다 카데. 할매들이.
문재인이 이북 사람이라서 북한에 마구 퍼준다 카면서 나라가 이제 바로 좀 서것다 카더라."
"김정은이가 대포를 빵빵 쏴아 쌌는데 문재인은 아무 소리도 못한다 아이가. 중국놈 한테도 아무 말 못하고. 코로나가 그래서 심해졌다 안카나. 이젠 괜찮겠다 카더라. 윤석렬이가 가만 안 둔다 캤다매. 선제 뭔가 한다꼬 카데."
어머니는 경로당에서 들은 이야기를 (지지한 후보가 낙선하여 서운한 마음을 애써 감추고) 자기 이야기하듯이 옮기신다. 어머니 나름의 반어법이다. 그러면 쓰린 속이 조금 나아지는가 보다.
앞에 말한 D공고 김씨는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지금도 통일을 기다리며고향 이야기 하시는지. 살아 계시면 한 번 만나고 싶다. (2022. 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