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2월 17일. 크리스마스이브 일주일 전, 겨울방학을 앞둔 마지막 목요일. 전교생이 2교시 수업을 마치고 인근 D교회로 간다. '졸업 및 성탄 축하 예배'날이다.
이사장은 축도를 한다. ‘어제저녁 새로운 보통 사람의 시대를 열 훌륭한 대통령이 탄생하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ㆍㆍㆍㆍ' 졸업 축하 예배인지, 대통령 당선 축하 예배인지 모를 말을 이어간다.
장로인 이사장과 권사인 이사장 부인은 싱글벙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다.
이어 헌금 시간이다. 헌금 봉사자가 기다란 막대기 끝에 매단 잠자리채를 학생들과 교사들이 앉은 긴 의자 사이로 밀어 넣는다. 아이들은 잠자리 채에 헌금 봉투를 넣는다. 얼마씩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헌금봉투는 미리 학교에서 나누어 주었다.
목사가 헌금 기도를 한다.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헌금을 해 주신 성도 여러분께 은총을 내려주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헌금하지 못한 성도님께도 아버지 하나님의 은총이 내리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경제적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없어 헌금을 하지 않은 성도님께도 아버지 하나님의 자애로운 은총을 베풀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아멘."
예배 마칠 시간만 기다리는 아이들은 '아~멘'을 크게 외친다. 버터빵 2개씩 든 빵 봉지를 하나씩 들고 찬송가 115장을 목청 높여 부른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온 교회여 다 일어나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 찬양하여라.'
이사장 부부는 진정으로 기쁜 모습이다. 이 광경을 보며 앞으로 다가올 것 같은 일에 대한 불길한 예감과 분한 마음에 나는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
20대 대선 후 3일째 되는 날이다. 한참 지난 것 같은데 겨우 3일째 다. 영주동, 대청동 골목길을 걷는다. 싱글벙글 웃음을 참지 못 하는 당선자의 얼굴이 커다랗게 담긴 펼침막이 거리 곳곳에 걸려 있다. '87년 대선 다음날 함박웃음을 웃으며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부르던 이사장 부부의 얼굴이 당선자의 얼굴에 오버랩된다.
"문재인 이전보다 더 강력한 검찰.. 윤석열 발 검찰권 강화 태풍 예고"
"김건희, 당선되니 보복 시작(?)..서울의소리 상대로 '1억 손해배상' 소송 청구"
"강남 재건축 호재 넘치네",.. 10 개월에 10억 원 "쑥"
"윤 공약, 재건축에 '날개' " 등의 기사가 쏟아진다. 모두 함박웃음을 웃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그런데 '87년 이사장은 부부가 함께 웃었는데, 이번에는 부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멘붕을 빠져나오려고 애면글면 한다. 그 방법도 각자 다르다.
'이를 악물어도 삐어져 나오는 울음, 통곡을 했다. 내 몸속 물기가 다 빠지도록 실컷 울고. 모든 것을 접으련다...'라고 하는 페북 친구도 있다.
아내는 차근차근 준비하는 모습을 보인다. '앞으로 우리가 대선 투표를 몇 번 더 하겠나' 하면서도 씩씩하게 준비한다. 준비란 게 별거 있나. 마음의 준비지. '안달복달하지 말고 초연해지자'고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김 선생은 이렇게 지내고 있었다. 페북에서 소식을 들었다. "동료 교수가 전화하여 '교수님은 잘 계세요?' 잘 있냐고? 하필이면 그리 물으시나. ‘그럼, 잘 있죠, 죽은 줄 아쇼?’ 농담으로 받으려는데 목구멍이 콱 막혔다. 그리고 둘이서 우물쭈물, 뭔 말을 주고받았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전화를 끊자 참았던 눈물이 봉숭아 씨앗 터지 듯 쏟아졌다. 젠장, 그때까지 잘 참고 있었는데."라고 한다.
'검찰공화국을 반대하는 교수 모임'을 이끌며 혼신의 힘을 다한 김 선생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말 한마디 할 만도 한데, 나는 전화하지 않았다. 나도 울 것 같아서.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김 선생은 고기잡이 배 타고 욕지 근해를 돌면서 전화도 안 받는다. 강 선생도, 아내 후배인 우 선생도 세상이 다 귀찮은지 카톡에 반응을 안 한다.
나는 도다리 1kg에 소주 한 병 사서 혼술 하고, 말 상대도 없이 혼자서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고 있다. 이불 덮어쓰고 만세 부르듯이. 이렇게라도 해야 살 것 같아서. 이것이 멘붕에서 빠져나오는 나의 방법이다. (2022.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