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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Nov 17. 2023

새별오름의 가을

제주의 368개 오름 중에서 억새 명소를 꼽으라면 동부의 용눈이오름, 아끈다랑쉬오름과 함께 서부의 새별오름이 먼저 생각난다. 용눈이오름에 이어 새별오름을 찾아간다.

봉우리의 모습만큼 이름도 예쁘다. 제주 사람들이 새벨오름 또는 새빌오름이라고 부르던 새별오름.

 「새벽하늘의 샛별과 같이 외롭게 서 있다」는 뜻으로 새별오름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탐라지에 '효성악'으로, 제주군읍지에는 '신성악(新星岳)'이라 기재되어 있다. 즉 '새벽(曉) 별(星)' 또는 '새(新) 별(星)'이다.

용눈이오름과 유명세로는 쌍벽을 이루지만 찾는 탐방객의 숫자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다. 주차장도 엄청나게 넓다. 대형 관광버스도 여러 대 들어왔다. 주차장에서 보는 봉우리는 하나로 용눈이와 비슷하다. 새별오름 역시 능선의 곡선이 부드러운 오름이다.

고려 공민왕 때 명월포로 입도한 최영 장군이 목호와 일전을 치른 곳이며, 4.3 때는 무장대의 군사 훈련장이 있던 곳이라 하는데 산세가 순하여 의아했다. 하지만 남서쪽새별오름을 보면 금방 의문이 풀린다. 이달오름 쪽에서 보는 새별오름분위기는 주차장에서 올려다보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서쪽과 북쪽 사면이 열린 말굽형 굼부리를 지닌 복합형 화산체로 몇 개의 봉우리가 울퉁불퉁한 근육을 드러낸다.

들머리부터 꼭대기까지 억새풀 천지다. 억새풀의 키는 용눈이보다 크다. 11월 초순경, 새별오름의 억새풀은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룬다. 역광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억새는 가을의 운치를 느끼게 한다. 말이 필요 없다.

새별오름의 가을을 제대로 즐기려면 탐방 코스를 잘 잡아야 한다. 많은 탐방객은 주차장에서  왼쪽 길을 따라 오른다.  매우 가파른 길이다. 정상까지 오르려면 땀깨나 흘려야 한다. 숨이 가쁘면 주위를 살필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역방향으로 가보자. 오른쪽 탐방로는 경사가 순하다. 억새는 역광에 더 아름답다. 정상으로 오르는 능선은 상대적으로 평탄하다.

해발고도 519.3m, 비고 119m인 새별오름은 북쪽과 남쪽 탐방로 모두 20분 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우리는 북쪽으로 올라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선택한다.


주차장에서 오른쪽(북동쪽)으로 300m쯤 떨어진 곳에서 오름을 반시계침 방향으로 비스듬히 감아 오른다. 탐방로가 왼쪽으로 꺾이면서 가팔라진다. 바람은 거세지고 억새는 점점 키가 낮아지며 양도 줄어든다.

오르던 길을 돌아본다. 오름들이 고개를 내민다. 다래오름, 왕이메오름, 현대오름, 괴오름,  바리메오름, 족은바리메오름, 노꼬메오름 등이 솟아오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뒤를 한라산이 인자하게 앉아있다. 새별오름은 가을 억새와 들불 축제로 유명하다지만, 탐방 포인트는 뭐니 뭐니 해도 탁 트인 조망이다. 제주 서부의 오름군 펼쳐놓은 아기자기한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정상 표지석에서 남쪽으로 내려선다.  서쪽에 거대한 풍력발전기 풍차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앞에 외딴 봉우리가 보인다. 갈림길이 나 있다. 갈림길의 좌우로 새별오름 굼부리가 위치한다. 건너편 봉우리로 가려고 갈림길로 들어선다. 길은 억새와 가시덤불에 덮여 이내 끊긴다. 출입금지 팻말이 세워져 있다.

외딴 봉우리로 갈라진 능선은 이달오름으로 이어진다지만, 포기하고 다시 주 탐방로로 돌아선다. 탐방로 위의 구름이 새별오름 서사면을 투영한 듯하다. 구름과 푸른 하늘이 능선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누어진 굼부리 모습을 하고 있다.

이달오름을 바라보며 내려간다. 이달오름 정상 뒤로 보이는 통신탑이 금악오름임을 증명한다. 남쪽으로 이시돌목장의 넓은 평원과 골프장이 펼쳐진다. 정물오름과 당오름이 마주 보는 사이로 도너리오름이 어깨동무하듯 서 있다.

멀리 희미하게 고개를 내민 산방산을 바라보며 남쪽 탐방로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간다. (2023.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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