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도 문학치료다 (중)

사회복지사와 작가와 스팀 이용자

by 제이언

최초 공개했던 일기를 보면 대강 알지도 모르지만, 나는 사회복지사를 준비하는 여전한 백수이며, 현재 온몸이 아파 하기 싫은 쿠팡 주간조 허브나 각종 까대기, 택배 상하차나 당근 단기 알바 등으로 근근이 생활비를 마련하며 여가 시간에 조금 생소할 수 있을 보조공학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하기 싫은 공부나 스팀 게임으로 하루를 보내는 21세기 대한민국 서울 좁은 방에서 왓슨 없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셜록 홈즈다. 잠시 보조공학사 소개를 하자면, 거동이 불편하신 장애인이나 어르신께서 안전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끔 각종 보조공학 기기(휠체어나 기계 팔 등)를 개발하거나 맞춤 제작, 유지 및 보수하는 생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국가 자격증 기술사다. 백수인 내 프로필에 있는 기술사도 그런 맥락이고, 이 직업을 선택한 까닭은 사회복지사와 자전거 수리공의 교집합도 있고, 생긴 지 얼마 안 돼 따끈따끈한 이 직업의 전망이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일기에서 포기에 가깝다고 기술한 까닭은, 내가 수학을 포기한 지 오래된 문과 출신이라 제어공학과 같은 공학의 개념이 어렵고, 미분방정식 같은 수학 개념을 배워야 해서 그냥 수학 몰라도 전동드릴과 부속품만 있으면 수리할 수 있던 자전거와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조공학사를 거의 포기한 상태고, 스팀 게임과 생존을 위한 알바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여전히 사회복지사 지원도 넣고 있다. 하는 일에 비해 돈도 많이 못 벌고 전 직장 빌런들을 뛰어넘는 각종 인간군상을 겪어야 할 텐데 과연 사명감 하나로 나는 그곳의 무거운 중력을 버틸 수 있을까?


20251020191345_1.jpg 대역전재판


이미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과 운전면허 1종 보통도 있다. 그러나 작가와 달리 하기 싫어졌다. 작가는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사회복지사는 할 수 있지만 지레 겁이 나서 하기 싫은 상태다. 정말 사람을 돕는 가슴 아련해지는 다큐의 한 장면이 아니라, 엑셀과 워드만 두들기며 가끔 차나 좀 빼주는 삭막한 일반 사무직의 풍경이 사복의 현실이다. 치매 어르신들을 모시는 데이케어센터에서 실습하고 느낀 점과 주변 사회복지사분들의 푸념을 들어보면 나처럼 실제 업무 내용이 생각하던 일이 아니거나 각종 빌런들에 못 이겨 그만둔 경우가 많고, 그만두고 싶어도 달리 할 일이 없어 생계를 위해 꾸역꾸역하는 경우만 있을 뿐, 조금이나마 만족하는 경우를 목격하지 못했다. 직장인 누구나 가슴 한 켠에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는 말은 잘 안다, 그럼에도 이게 일 년 간의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나 공무원처럼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며 박탈될 존엄성 등을 감수하고 할 만한 일인가? 요즘 시대에 누가 공무원 하냐 하지만 당장 내 주변에도 있고, 공무원은 연금이라도 잘 나오잖아? 모르겠다. 내 시선이 편협하고 아직 우물 안 아성체 개구리라 잘 사는 사회복지사분들을 못 만난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일 년을 투자하여 자격증도 땄으니, 남들이 왜 욕하는지 직접 해보고 정 어려우면 그때 그만두면 될 일이다. 게임을 포함한 작품을 보는 눈은 높더라도, 인생은 결국 똥인지 된장인지 남들 의견보다 직접 해보는 게 정답인 것 같다. 해보고 별로면 영화 리뷰처럼, 스팀 리뷰처럼 안 좋다는 푸념을 특히 나 같은 경우는 잘 발달된 글솜씨로 더 입체적으로 작성할 수 있으니 그거면 된 거겠지.


20250818231050_1.jpg Monster Hunter Wilds


서두가 또 길어졌다. 사람은 누구나 여러 페르소나가 있고, 그건 게임으로 치면 여러 캐릭터가 있는 것과 같다. 평소의 일기를 보면 알겠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희극이고 그건 영화 <인사이드 아웃>과 유사하다. 단지 그 레버를 조작하는 캐릭터가 가상의 신이거나, 아버지거나, <몬스터 헌터 와일즈>의 내 캐릭터거나, 둘째 이모거나, 고등학생 시절의 바리톤치고 고음이 잘 올라가던 나일 뿐이다. 등장인물은 계속 바뀌고, 그 레버도 미분방정식을 모르는 내가 제작해서인지 울퉁불퉁하고 어쩔 땐 작동하지 않을 뿐이다. 무대 규모나 소품, 영화 기법에서 쓰이는 언어로 얘기한다면 미장센이 다를 뿐, 누구나 머릿속은 희극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감정의 교집합, 즉 영화나 게임을 통해 공감하고 더욱 이입하게 된다. 이게 문학치료다.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끊임없는 각본들을 받아쓰기하면 그게 일기가 되고, 그걸 통해 응어리가 해소되고, 남의 일기를 보면서 연민을 느끼거나 쾌락을 맛보는 모든 희로애락이 문학치료다. 유튜브 쇼츠나 틱톡, 인스타 릴스는 같은 동영상 시청이라 해도 영화 같은 작품이 아니기에 문학치료는 아니겠지만, 이런 매체를 통해 당신의 기분이 나아진다면 문학치료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른다. 문학에서 인간을 다루는 장르를 인문학으로 분류하지만, 결국 모든 문학은 인간을 다루기에 그 둘은 차이가 없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처럼 등장인물이 전부 동물이거나 외계인,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소설이라 해도 결국 인간이 주제다. 이는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하고 받은 가르침과 스스로 느끼는 견해를 모두 포함한 말이다.


게임은 직접 조작하여 극을 이끌기에 단순히 시청만 하는 영화와는 본질이 다르다. 어떤 게임을 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지만, 내 머릿속 풍경을 그대로 필사한 듯한 미치광이 캐릭터가 나오면 아픈 손가락처럼, 존재하지 않는 내 동생처럼, 혹은 투철한 시민의 시선으로 언제 고발하고 감옥에 잡아넣을지 집중하게 된다. 플레이라는 행위로 인해 기존의 좋은 스토리를 풀어내는 텔링이 확 와닿게 된다. 대형 게임사가 대량의 제작비를 투입하여 만드는 양질의 게임을 AAA 게임이라 한다. 위의 <몬스터 헌터 와일즈>나 <대역전재판> 모두 CAPCOM이라는 유명한 게임사에서 만든 굵직한 게임이다. 누군가에게 게임을 추천한다면 당연히 AAA 게임을 추천하겠지만, 개천에서 용 난다고 잘 만들어진 인디 게임들도 존재하는 편이다. 다만 그것들은 모든 대사에 성우들이 직접 더빙하지 않았거나, 플레이 타임이 20시간을 넘기지 않는다거나, 그래픽이 영화처럼 화려하고 사실적이지 않을 뿐이다. 쉽게 말해, 창작에 들어간 돈이 부족해서 아주 양질이 아닐 뿐, 대사 텍스트나 연출은 훌륭한 인디 게임들도 존재한다. 이러한 인디 게임이 성공하여 그 제작사가 유명해지기도 한다. 한때 유행하던 <언더테일>이나 <서브노티카>를 떠올리면 될 것 같다.


1469540_screenshots_20250812190352_1.jpg Maximus 2: Street Gladiators


위 게임도 인디 게임인데, 한국어 번역도 안 되어 있고 그래픽도 살짝 호불호 갈릴 카툰 느낌이라 당신이 게임 좀 하는 사람이라 해도 모를 확률이 높다. 스팀을 살펴보니, 현재 기준 이 게임을 379.2시간 플레이했으므로 <몬스터 헌터 와일즈>보다도 플탐이 길다. 물론 게임 출시 시기도 다르고, 이건 내가 예전에 했던 겟앰프드 같은 느낌의 아케이드 격투 게임이기에 긴 호흡을 가지고 거대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영화적으로 스토리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틈틈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하기 좋으므로 적절한 비교 대상은 아니다. 전편에서도 언급한 기성세대 부모의 불만 내지는 걱정은, 자녀들이 때리고 부수고 죽이는 게임만 하다가 불건전한 정서를 갖거나 게임중독에 빠질까 지레 겁먹는 것으로 해석된다. 부모가 된다는 그 고귀한 일을 겪어보지 못한 내가 하는 말이 어불성설로 들릴 수 있고, 잘 이해한다. 그러나 사회복지사를 위한 공부와 주변 사례 정리, 조카 네 명을 오래 돌본 경험을 비춰 보자면, 적절한 게임은 글을 써서 응어리를 해소하는 문학치료와 같다고 본다. 겟앰프드나 위 게임이 아주 적절한 사례는 아닐 수 있지만, 가령 왜 저 캐릭터가 저런 의상을 입었고, 저 붉은 카타나 같은 너클을 착용하였으며, 왜 싸울 수밖에 없는 걸까? 라는 식으로 조금은 문학적인 접근과 사색을 해볼 순 있겠다. 자녀가 걱정될 부모에게 첨언하자면, 위의 인디 게임처럼 한국어 번역 안 된 게임을 오래 하다 보면 해당 언어 실력이 상승한다. 당장 우리 누나라는 사례도 있다. 이러면 의도적으로 영어 게임들을 플레이하라고 강요할까 좀 겁이 난다. 모쪼록 장르가 격투일 뿐, AAA 게임이 아니더라도 작품으로써 곱씹고 다시 관람할 여지는 있다. 확실한 건 사촌의 사례처럼 아예 못 하게 막는다면 그것이 더 큰 집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고, 오히려 실컷 하게 냅두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끄는 경우가 많았다. 모든 게임과, 모든 아동에게 똑같이 작용한다고 단언하는 것은 아니다. 공포 영화를 보고 즐기는 게 일반 관객이지, 그걸로 살인 영감을 떠올리는 것은 극히 소수일 게 당연하니까.


또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장황하게 돼 버렸다. 계획에 없던 (중)편을 만들고도 본격 스팀에 관한 얘기는 하지 못했다. 그래도 제목부터 문학치료인데 이 개념을 짚고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정말로 마지막, 담담하다 못해 얼어 붙는듯한 수필이란 뭔지 똑똑히 보여주겠다. 머, 그래봐야 별반 다를 거 없는 일기다. 수필과 일기는 쌍둥이 형제나 마찬가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