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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Nov 01. 2021

영원한 루머

최승자의 시 「일찌기 나는」

부모의 존재를 부정하고 어떻게 자식이 존재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래야 존재할 수 있는 자식도 있는 법이라고 신을 믿지 않는 친구가 말했을 때, 신을 믿는 친구는 스스로의 눈에 떠오른 두려움의 빛을 알지 못했다. 다만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의 눈동자에 어린 슬픔의 빛을 보았다. 우리는 물과 기름이야. 신을 믿지 않는 친구는 우울하게 말했다.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어 신을 믿는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 마른 빵에 핀 곰팡이 /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 너당신그대, 행복 / 너, 당신, 그대, 사랑 //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최승자, 시집 "이 시대의 사랑" 중 일찌기 나는」 전문)




"부모님은 종교가 없으셔?" 발사믹 식초에 빵을 찍으며 선생님이 물었다. 선생님의 물음에 신을 믿는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큰 시련이 없으셨던 모양이구나."  담담하지만 어딘가 뾰족한 말투로 선생님이 말했다. '시련'이라는 말을 듣자 신을 믿는 친구는 갑자기 신을 믿지 않는 친구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신을 믿지 않는 친구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시련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 선생님이 말하는 큰 시련이란 무엇일까.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신을 믿는 친구는 생각했다. 시련에 대해 입을 뗄 수 없는 시련이야말로 큰 시련이 아닐까, 하고. 이 세상의 어떤 신에게서도 위안을 얻을 수 없는 친구의 시련을 생각하자 신을 믿는 친구는 그제야 비로소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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