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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juGrapher Apr 10. 2017

제주의 봄 2017

봄을 기다리며 봄을 보내다.

긴 촛불집회 끝에 탄핵이 인용된 것도 벌써 한 달 전의 일입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도 남도에 불어오는 꽃바람과 함께 끝이 나고 봄이 찾아왔습니다. 3월이면 유채꽃을 즐기고 또 벚꽃을 기다립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봄이지만 짧게 화려함을 뽐내고 또 금세 우리 곁을 떠납니다.


몇 달 전에 적어뒀던 마지막 글을 지난주에 공개하고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좀 더 자유롭게 그 시기의 제주의 모습을 공유하겠다고 --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지만 -- 약속했듯이 오늘은 지난 한 달 동안 제주를 수놓았던 봄꽃 사진을 모았습니다. 긴 겨울의 끝에 핀 유채꽃을 시작으로 길거리마다 연분홍으로 물들인 벚꽃까지... 여느 때보다 일주일 정도 늦게 제주에 벚꽃이 만개했는데 이번 주에 출장을 다녀오면 모두 떨어져 있을 것을 생각하면 이별 전부터 이별 후의 씁쓸함을 느낍니다.


중문엉덩물계곡 (2017.03.19)

겨울에도 성산의 광치기해변이나 안덕의 산방산 일대에 가면 노란 유채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유지에 심어놓은 유채꽃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야 합니다.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지만 괜히 돈을 내고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제주도 곳곳에 유채가 아무렇게나 피는 3월을 기다립니다. 중문관광단지에서 색달해변으로 이어지는 엉덩물계곡에 유채밭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찾아갔습니다. 그 후로 고산의 당산봉, 화순곶자왈길, 아끈다랑쉬오름 주변, 그리고 가시리 유채꽃플라자 등으로 유채꽃 사진을 찍으러 다녔습니다. 올해의 백미는 가시리 녹산로 옆으로 넓게 가꾼 유채밭이었습니다.


'그룹 이미지'로 여러 사진을 한꺼번에 올려서 정열 순서가 조금 흩틀어졌습니다. 순서대로 가시리, 당산봉, 화순곶자왈, 가시리, 아끈다랑쉬오름, 그리고 가시리입니다. 당산봉과 화순의 사진을 가장 먼저 찍었고 (03.25), 5 & 6번 사진은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03.27), 그리고 1 & 4번 가시리 사진은 작년에 이월했던 연차를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03.31 (금)에 찍은 것입니다. 아끈다랑쉬오름 주변의 유채꽃 사진은 조금 불만족스럽습니다. 날씨가 더 화창했더라면, 더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 찾아서 역광을 피했더라면, 유채가 더 활짝 폈더라면 이라는 여러 아쉬움이 있지만 (1주일 후에 다시 찾았어야 했는데...) 지난 2~3년 동안 유채꽃밭 너머의 오름 사진을 찍기 위해서 여러 곳을 돌아다녔던 노력의 보상이라 이 또한 소중한 경험이고 사진입니다.

신흥리의 동백꽃

동백은 겨울 꽃으로 알려졌지만 제주도에는 봄까지 붉은 동백을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잘 알려진 위미리의 동백군락지는 12월이 절정이어서 지금은 꽃이 다 떨어졌지만, 나무마다 꽃이 피는 시기가 다 달라서 제주의 곳곳을 누비다 보면 늦은 봄에도 아름답게 핀 또는 낙화한 동백을 볼 수 있습니다.

유채의 시간을 보내고 더디어 벚꽃이 찾아왔습니다.

대흘리 (04.02)

순서대로 제주대학교 교정 (04.07 아침), 제주대 앞길 (04.07 아침), KCTV 앞길 (04.05), 전농로 (04.04), 제대 앞, KCTV 앞, 제대 교정 (04.07 저녁), 제대 앞 (04.07 점심)입니다. 4월 7일은 제주대를 아침, 점심, 저녁으로 3번이나 찾아갔습니다. 제주시에서 나름 벚꽃이 일찍 피는 대흘리에도 4월 2일에서야 겨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이후로 전농로와 제주대학교 등으로 벚꽃이 만개했습니다. 전농로는 왕벚꽃축제가 열리는 대표적인 장소인데, 올해에는 축제일에 맞춰서 꽃이 피지 않아서 망했습니다. 교통을 통제한 주말 낮도 도로를 활보하면 꽃구경하기에 좋지만 밤에는 양 옆으로 소원을 담은 청사초롱을 켜놔서 또 다른 운치를 더합니다. 작년에는 제주도 전역의 벚꽃을 감상했는데 KCTV 앞길의 벚꽃 사진을 찍지 못해서 1년을 기다려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대신 상춘객들이 몰린 제주대와 녹산로의 사진은 예년에 비해서 거의 찍지 못했습니다.

일몰의 벚꽃 (제주대학교 교정, 04.07)

브런치에 세로로 찍은 사진은 처음 올립니다. 평소에는 그냥 한 장씩 나열하다 보니 가로 사진이 보기 좋았는데, 이번 글에는 세로 사진을 몇 장 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의 두장은 제주대학교 교정에서 밤에 찍은 벚꽃 사진이고, 세 번째 사진은 제주도에서 대표적인 봄 관광지인 가시리 녹산로입니다. 녹산로는 벚꽃이 피기 전에도 몇 차례 지나가면서 올해는 살짝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다행히 벚꽃이 피는 시기에 유채도 함께 만개해서 좋은 뷰를 만들었습니다. 불행인 점은 이제 녹산로가 많이 알려져서 한적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위의 사진은 그나마 오전에 사람들이 조금 덜 붐빌 때 찍은 것인데, 오후에 돌아오는 길에 다시 찍은 사진에는 사람과 차로 가득 찼습니다. (녹산로: 04.08) 평소 같으면 출근 전 이른 아침에 잠시 다녀왔을 텐데, 이번 주에는 출장이 잡혀있어서 아쉽지만 녹산로의 봄과도 작별을 고해야 합니다.

유채밭에 울려퍼지는 피아노 선율 (가시리, 04.08)

벚꽃이 필 무렵이면 제주도에는 비가 자주 내립니다. 제주에서는 이무렵 내리는 봄비를 고사리 장마라고 부릅니다. 4월 초에 비가 내리면 들녘에 어린 고사리가 자라기 시작하고 그러면 4월 말, 5월 초에 사람들이 고사리를 따러 나갑니다. 그래서 4월 초에 내리는 비를 고사리 장마라고 합니다. 예년 같았으면 고사리 장마에 벚꽃이 다 졌을 텐데, 올해는 개화 시기가 조금 늦어서 비 온 후에도 벚꽃이 그대로입니다. 4월 초에는 날씨가 흐리기도 하지만, 요즘은 미세먼지가 심해서 봄에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벚꽃 사진이 점점 귀해집니다. ㅠㅠ 제주대학교는 제주에서도 대표적인 벚꽃놀이 장소입니다. 보통 제주대 앞 큰길과 중앙의 너른 잔디밭 주변에서 꽃놀이를 즐기는데, 개인적으로는 공대 쪽의 벚꽃이 좋습니다. 어느 종합대학교를 가더라도 공대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서 공대 건물은 많이 낡은 경우가 많습니다. 덕분에 공학관 주변의 수목들의 연한이 커서 크고 울창합니다. 그래서 제주대학교의 공학관 주변의 벚꽃이 좋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유채꽃이 그리고 요즘에는 벚꽃이 대표적인 봄꽃이지만, 어릴 때는 봄꽃의 대표 주자는 개나리였습니다. 어릴 적에 살던 고향 마을 (본가)에서 초등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경부고속도로를 관통해야 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넘어가는 도로 양 옆으로 개나리 군락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도로를 확장하면서 모두 제거해버렸습니다. 고향에 내려가서 교회를 가기 위해서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데, 매번 그 길을 걸을 때마다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지금처럼 카메라/스마트폰이 없던 그 시절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두지 못했으니 그저 기억으로만 남은 그 모습이 늘 아련합니다. 제주도 같은 유명한 관광지는 그나마 여러 사진이 많아서 예전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아무것도 아닌 시골의 마을 풍경을 온전히 사진으로 남겼을 리가 만무합니다. 유채와 벚꽃이 있지만 그래도 노란 개나리가 여전히 저에게 봄꽃 1순위입니다. 조팝나무도 꽃을 예쁘게 피웠고, 목련은 이제 힘겹게 가지 끝에 달려있습니다. 유채꽃과 벚꽃으로 화려하지만 제주도는 아직 싱그러운 녹색이 아닙니다. 하지만 연한 새삭들이 몽글몽글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아침은 날씨가 꽤 쌀쌀합니다. 길가에 핀 꽃이 없다면 마치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걸로 착각할 정도입니다. 꽃이 피고 새삭이 돋는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이 아닙니다. 봄이 없으면 여름도 없습니다. 2017년의 봄... 오래 기다렸지만 이제 또 보내렵니다. 촛불의 염원이 대한민국에 봄을 가져왔지만, 봄을 보내지 않으면 결실을 맺는 여름이 올 수 없습니다. 한 달 남은 장미 대선... 간절함이 결실을 맺길 바랍니다. 옳은 선택을 기원합니다.


2016년의 벚꽃엔딩과 유채엔딩

https://brunch.co.kr/@jejugrapher/99

https://brunch.co.kr/@jejugrapher/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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