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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juGrapher Jan 29. 2018

한파가 몰고 온 제주 풍경

2018, 그해 겨울 또 한 번의 눈이 내리고...

최강 한파가 다시 한반도를 덮쳤습니다. 서울의 기온은 영하 17도를 밑돕니다.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경험하기 힘든 한파가 제주도를 감쌉니다. 아침 출근길에 수은주가 영하 6도를 찍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이 중산간 해발 300m 근방이라서 조금 더 추운 거지만, 제주에서 영하의 기온이 흔한 것은 아닙니다. 2주 전의 한파주의보 때는 판교에 출장 갔었는데 이번에는 운 좋게 제주에 머물렀습니다. 수요일에는 휴가를 내고 집 근처를 배외했고, 목요일에는 골목길에서 차를 빼내기가 힘들 듯해서 오전 반차를 내고 늦게 출근했습니다. 다음은 수요일과 목요일 오전의 눈 온 풍경입니다. (공개 시점을 놓쳐서 주말 사진 포함)


수요일.

날씨도 매우 춥고 눈도 생각보다 많이 내린 것 같지가 않아서 그냥 따뜻한 방에서 잠이나 잘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리고 너무 많이 돌아다니면 어쩌면 갈지도 모를 주말 등산이 불가능해집니다), 눈 오는 제주를 경험하고 사진을 찍겠노라고 판교로의 이사도 미뤘는데 방에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두 번의 눈길 트래킹은 단순히 516도로를 따라서 비자림로까지를 왕복했던 거라서 그냥 집 주변의 소소한 풍경을 담을 생각이었습니다.

산천단 곰솔
산천단 제단

막상 산천단을 돌고 나오니 버스 정류장에 사람들이 줄 서 있습니다. 버스가 다닌다면 성판악까지 가서 516 숲터널을 다시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성판악을 통과하는 버스는 또 결행입니다. 다행히 20여분 뒤에 210번 버스가 온다기에 그냥 오늘도 비자림로에 갔다가 걸어오자는 생각으로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전광판의 안내문구를 잘 보니 210 버스는 516도로-비자림로를 경유하지 않고 아래쪽에서 우회 운행을 하는 걸 알게 돼서 그냥 처음 계획대로 제주대학교를 한 바퀴 도는 걸로 변경했습니다.

평소에 봐뒀던 동백나무에 눈이 덮였다.
제주대학교 앞 벚나무길
제주대 교정의 먼나무에도 눈이 쌓였다.

대략 6km 정도를 걸어서 제주대 교정을 한 바퀴 돈 후에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직 채 12시도 안 된 시간이라서 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도 심심하고 뭔지 모를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냥 짧게 제주CC까지 걸어가서 골프장 사진을 찍고 돌아오자는 마음으로 다시 중무장해서 길을 나섭니다. 골프장까지는 왕복 10km 정도니 운동하기 적당한 거리입니다.

제주CC 입구의 소나무숲... 이때 찍은 대부분의 사진이 흔들려서ㅠㅠ
골프장 안의 나무... 전보다 조금 더 과감하게 (물론 잔디밭 밖만 배회했지만)

막상 제주CC까지 걸어오니 또 욕심이 생깁니다. 돌아오는 길에 대한 걱정은 일단 접어두고 마방목지나 비자림로까지는 가보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또 걷습니다.

마방목지 주변의 나무에 상고대가 폈습니다.
마방목지의 소나무

또 걸어서 비자림로까지 갑니다. 비자림로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다 보니 뒤쪽에서 버스가 지나갑니다. 아직 성판악을 경유하지는 못하지만, 아침에 우회 운행하던 비자림로 통과 버스들이 운행을 재개한 듯합니다. 버스를 타고 돌아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이제 조금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눈덮인 비자림로
비자림로와 눈 덮인 오름

2주 전에 많은 사진을 찍었고 또 지금은 도로에 눈이 없어서 이미 많은 렌터카들로 비자림로가 채워졌습니다. 그래서 대강 몇 컷만 남기고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더 많은 사진은 2주 전 포스팅으로 대체: https://brunch.co.kr/@jejugrapher/185) 그런데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습니다. 핸드폰은 낮은 기온으로 이미 방전 (저전력 모드)돼서 실시간 운행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걸어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기에 기약 없이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다행히 버스가 도착해서 갈 때는 걸어서 2시간 걸렸는데 차 타고 10분 만에 집에 돌아왔습니다.


목요일.

수요일 밤에 더 많은 눈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화요일 밤에 차를 집 근처 골목길에 세워뒀던 것이 패착입니다. 큰길은 제설이 어느 정도 이뤄졌지만 동네길은 그냥 얼어있습니다. 날씨도 춥거니와 무리해서 출근하면 더 위험할 듯해서 그냥 반차를 내고, 조금 늦은 시간에 집을 나왔습니다. 막상 차를 운전하니 또 평소에 가기 힘들었던 곳으로 가고 싶어 집니다. 카카오맵에서 CCTV로 도로 상황을 확인하고 새별오름 나홀로나무 사진을 찍으러 길을 나섰습니다. 몇 해 전에도 어렵게 사진을 찍었지만 그냥 제주를 떠나기에는 아쉬움이 가득한 곳입니다. 그래서 길을 나섰는데 평화로에 눈발이 날리고 차들은 거북이 운행이라 괜히 왔나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그런데 중간에 차를 빼서 돌아오기도 힘들어서 일단 계속 갔습니다.

새별오름 나홀로나무

이젠 내비에도 장소가 표시돼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목장주가 사람들의 출입을 금한 이후로는 안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지 않았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사진을 찍을 기회가 흔치 않아서 미안하지만 몇 년만에 도랑을 넘어가서 사진을 찍고 돌아왔습니다. 뒤에서 부는 서풍만 됐어도 더 많은 사진을 찍었을 텐데 앞에서 불어오는 거센 눈바람에 급하게 사진을 찍고 돌아왔습니다. 출근한다는 생각으로 나왔던 거라서 장갑도 챙기지 않았기에 밖에서 1분 2분을 보내는 것도 참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차 내부 온도에 녹아서 창으로 흘러내렸던 물이 잠시 정차했던 5-10분만에 이미 얼어있었습니다.

제주까지 모처럼 여행을 왔겠지만 이런 날씨에는 위험하니 잘 모르는 외지는 돌아다니지 않는 게...

차를 돌려서 다시 평화로를 타고 돌아오기는 힘들어 보였습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몰랐었는데,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평소에 차가 많이 다니지 않은 작은 길은 바닥이 꽁꽁 얼어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쪽으로 내려와서 애월의 항몽유적지를 경유해서 출근했습니다.

항몽유적지 토성의 나무
늦가을에 빨간 낙엽이 아름다웠던 나무밭에 흰 카펫이 깔렸다.

토요일.

금요일에는 정상 출근해서 점심시간에 짧게 눈썰매를 탔지만 사진을 찍어두지 않았습니다. 동영상이 하나 있지만 공유하기에는... 토요일이 돼서 나홀로나무를 다시 찍으러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길을 나섰습니다.

산록도로에서 보는 한라산
어승생악오름

길을 가다 보니 1100도로 통제가 끝나서 우발적으로 일단 1100도로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겨울에 1100도로/고지를 많이 갔지만 가장 아름다웠던 날로 기억될 듯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번에는 사진을 제대로 찍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정차하던 장소에 이미 많은 차들을 세워놔서 아쉽지만 그냥 눈으로 감상하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1100도로 (운전 중에 보지 않고 찍은 유일한 1100도로 사진)

1100도로를 넘어가서 서귀포의 녹차밭에서 백록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고도 했지만 남쪽에는 구름이 많이 껴서 백록담이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근처 주유소에서 주유 후 바로 나홀로나무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눈이 많이 녹거나 바람에 날려갔고 용케 찾아온 관광객들이 여럿 보여서 길가에서 몇 컷만 찍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산록도로 옆의 목장과 청아오름
눈썰매장 뒤로 보이는 풍경

일요일.

그냥 사무실에서 논문을 읽으러 갔는데 살짝 아쉬워서 오랜만에 삼다수목장에 갔습니다. 지금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울타리 밖에서 몇 컷만 급하게 찍고 돌아옵니다.

삼다수목장

일요일 오후에도 눈발이 살짝 날리고 오늘 오전까지 또 눈 소식이 있었는데 다행히 새벽/아침에 눈이 더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아직 중산간은 영하의 날씨고 눈구름이 사라진 건 아닐 테니 근무 중에 또 펑펑 (제주에서는 펑펑이라는 표현이 안 맞음) 내릴 듯합니다. 온도계는 3~4도 더 높다는데 오늘 출근길이 지난 주보다 더 추운 건 근냥 기분 탓이겠죠?


T: http://bahnsville.tistory.com/

F: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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