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회상

첫눈 온 날 가을을 정리하다

by JejuGrapher

제주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육지 생활을 기대케 한 것은 제주와는 다를 가을 풍경에 대한 일종의 동경이었다. 어느덧 반년이 흘러 가을이 왔다. 시작은 좋았다. 일전에 TV에서 봤던 홍천 은행나무숲부터 우선 찾아 나섰다. 10월 두, 셋째 주가 가장 좋다기에 긴 고민 없이 주말에 바로 나섰다. 지도에서 길찾기를 하니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멋진 풍경을 보고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이 정도는 투자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주말에 다소 늦게 집을 나서니 고속도로는 이미 차가 몰렸고 배에서는 이상 신호가 온다. 어쨌든 3시간을 더 운전해서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한참 전부터 내 앞을 달리던 자동차의 목적지도 나와 같았다. 이 말인즉슨 이미 은행나무숲을 찾은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좁은 주차장은 몰려든 차를 제대로 수용할 수 없었다. 양쪽으로 거진 수백 m씩 이미 주차된 상태였다. 가장 끝에 차를 세우고 그래도 가볍게 숲으로 향했다.


실망. 기대가 너무 컸었다. 그냥 TV에 나왔던 장면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전문가들이 가장 좋을 때 찍어뒀던 사진과 바로 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다소, 아니 많이 차이가 났다. 그래도 숙제를 하나 끝냈다는 생각에 홀가분함은 있다.

홍천 은행나무숲. 색과 나무 상태가 기대치를 충족시키진 못했다.

그다음 주말인지 아니면 다다음 주말인지 토요일에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남한산성도 보고 싶었고 가을 풍경도 보고 싶었지만 무엇보다도 산성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야경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여름 내내 한번 정도 찾아왔더라면 감이라도 있었을 텐데 계속 미루다가 가을에서야 찾았다. 그런데 남한산성은 봄과 가을, 특히 가을이 성수기라고 한다. 불과 2km 되는 거리를 수십 분을 보내고서야 겨우 도착했다. 초행길에 그리고 다소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단풍은 미쳐 사진에 제대로 담지도 못하고 수어장대로 올랐다. 용케 일하시는 분의 안내로 짧은 코스로 올랐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 미세먼지가 없는 아주 맑은 날은 아니어서 다소 실망이었지만 다음을 기대케 하는 첫 방문이었다.

수어장대로 오르면서 뒤돌아보면 찍은 남한산성의 초가을

서울이란 곳은 이런 곳이구나를 두 번에 걸쳐 뼈저리게 느꼈다. 날이 좋은 날이면 이름난 곳은 사람들이 매우 많이 몰려온다는 것을... 사실 언제 어디를 가야지 예쁜 가을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겨우 인터넷에 보이는 유명한 곳들은 차로 최소 2~3시간은 가야 하는 곳이고, 또 막상 찾아가더라도 사람과 차에 치여서 피곤만 할 것 같았다. 핑계지만 그래서 주말이 다가와서 선뜻 길을 나설 수가 없었다. 남은 가을은 그냥 집 주변을 돌며 겨우 가을 색만 즐겼다.


나는 신축 아파트에 입주했지만 바로 옆에 조금 오래된 단지가 있다. 오래된 단지는 조경이 완성돼있어서 그건 좋다. 멀리 가지는 못하더라도 옆 단지의 붉은 단풍과 노란 은행이라도 즐길 수 있다는 건 행운행복이다.

비온 뒤에 떨어진 은행잎
햇살을 머금은 노란 단풍
붉게 물든 단풍나무
낙옆진 단풍잎

집 주변만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멀리까지 가고 싶은 욕구도 없었다. 그래서 그나마 집에서 가까운 경안생태습지공원으로 향했다. 초여름에도 한번 찾아갔던 곳인데 가을이 조금 궁금했었다. 그전에... 아산의 은행나무길이 유명하다길래 전날 찾아가 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른 아침에 풋살을 한 후에 떨어진 체력만큼이나 찾아가려는 의지가 급격히 떨어졌다. 그래서 올해는 그냥 포기하고 우선 주변에서 만족키로 했던 거다.

저수지 너머로 붉은 단풍나무
경안천의 가을
메타세콰이어나무

다시 주말이 찾아오고 여전히 집 주변을 서성인다.

슬레이트지붕에 떨어진 은행나무잎
무 시래기... 아파트에 살지만 이런 걸 보면 지금 시골에 살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오늘 첫눈이 내렸다. 지난 며칠 동안 아침 출근길이 춥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늦은 가을이라고 혼자서 우겼지만 지난밤에 내린 눈은 '넌 틀렸어. 지금은 겨울이야'를 말하듯 나의 가을에 대한 미련에 종지부를 찍었다.

중대물빛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