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이는 달리기가 싫다.

by 제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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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의 오빠는 달리기하다 죽었다.


자기 몫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고 참여한 풀코스 대회가 화근이었다. 5년 전 춘천 마라톤, 32km가 지나는 지옥의 업힐로 불리는 코스였다. 당시 절친이던 민수에게 사점이 온 거 같다고 말하면서,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무작정 다리를 끌었더랬다. 대회중 부상이나 호흡곤란은 빈번한 일이지만 사망한 사건은 그해 지영의 오빠가 처음이었다.


“그깟 완주 메달이, 기록이 인생에 승부수가 될 거라고 믿었나 봐 오빠는..”

“가자 이제.” 무표정한 얼굴로 오빠의 사진을 빤히 쳐다보던 엄마가 처음 내뱉은 말이다.


지영은 러닝 열풍이 불편했다. 열정과 끈기, 건강으로 잘 포장된 스포츠 브랜드들의 마케팅도 거북했고, 주변 친구들이 10km 대회를 뛰고 나서 올리는 인증 사진을 보는 게 달갑지 않았다. 시즌이니 뭐니, 봄가을만 되면 꼴값들이란 생각을 했다. 신발 마트에 들어가는 일도 쉽지 않았다. 입구에서부터 원색의 러닝화를 신고 있는 검은 마네킹, 선반에는 30만 원이 넘는 카본 화가 모셔졌다. 하나는 사선으로, 다른 하나는 옆면이 잘 보이게 진열된 것에 족히 다섯 사람이 둘러싸서 구경한다. 첫 번째 그룹이 구경을 마치면 곧장 기다리던 다음 사람들이 또 둘러싸기를 반복한다. 망할 러닝화.




2년 후 지영은 34살이 됐고, 지영의 엄마는 오빠의 옆자리로 자신의 거처를 옮겼다. 속이 더부룩하다느니, 구토를 몇 번 하고서 병원에 갔을 때 이미 췌장암 말기가 진행됐었고, 3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오빠를 만나러 갔다. 20년 전 이혼한 아빠는 다행히 상주 자리를 지켜주었고, 장례의 전체 절차를 함께해 주었지만, 돈은 내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의 사망 보험에 대해서 몇 차례 지영에게 묻자, 그녀는 경멸적인 심정이 치솟았다. 지영이 훑어보며 침묵으로 대응하자, 꼭 그런 뜻은 아니라며 손사래 쳤고, 영정 사진 뒷방으로 피곤하다며 엉덩이를 내뺐다. 지영은 철저히 혼자가 된 기분을 느꼈다.





이후 3주 동안 회사에 나가지 못했다. 주어진 연차를 다 쓰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가기가 어려워지자, 사표를 써냈다. 며칠간 샴푸도 양치도 하지 못해 역겨운 입냄새가 풍겼다. 왠지 인생이 망가진 거 같고, 누가 앞길에 지뢰를 심어둔 것처럼 참을 수 없이 불안했다. 때때로 아빠라는 사람이 연락해서는 다시금 보험금 얘기를 꺼냈고, 힘들게 전화를 끊고 나면 텅텅 비어버린 김치냉장고에서 눅눅해진 오이김치를 꺼내 먹었다. 스트레스 탓인지 위장에는 2주째 탄수화물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오로지 오이김치만 받아들이는 게 가능했다. 그래서 굶어 죽기 직전까지 누워있다가 다 쉬어버린 김치를 겨우 목구멍으로 밀어 넣는 행위가 일과의 전부가 됐다. 멍하니 소파에 앉아 다음 차례만 기다리는 사람마냥 늘어져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가스 검침이거나 전도사일 것이다. 지영은 대꾸하지 않았다.


“지영아! 민수 오빠야. 문 좀 열어봐.”


민수 오빠였다. 그는 오빠가 죽은 이후로 죄책감에 우리 가족과 연락을 끊었었다. 쓰러진 오빠 옆을 덜덜 떨며 겁먹은 채로 지켜주었지만, 대회에 같이 나가자, 등 떠민 게 자신이라 생각해 병원에서 본 게 마지막이었고, 오빠가 봉안당에 안치될 때도 오지 않았다. 종종 유골함에 꽃이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던 걸 생각하면 민수 오빠가 다녀간 게 아닐지 상상하긴 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소식을 전화번호부 문자로 전부 보내다 보니 민수 오빠도 알았을 것이다.


“지영아, 안에 있지? 전할 물건이 있어. 진영이 신발.. 그날 병원에서 간호사가 신발 벗기라고 해서 내가 들고 있다가 진영이 죽고서 들고 왔거든. 신발이라도 들고 있어야, 진영이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나 봐. 나 진짜 힘들었거든? 진영이 그렇게 되고 나서 말이야. 녀석에게 갚아줄 게 많았는데, 맨날 내가 걔보다 느렸잖아. 그날은 진짜 내가 더 빨랐거든 약간이지만. 그래서 대회 끝나고 실컷 놀려줄랬는데.. 미안해 어머니 장례에 못 가서. 차마 갈 수가 없더라.”


지영은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아서, 입을 양손으로 꾹 막았다. 그러나 먼저 울음이 터진 건 민수 쪽이었다. 그는 절규 직전의 목소리였다.


“진영이가 꿈에 나왔어. 이거 이제 너한테 돌려주라더라. 그리고 앞으로 너 잘 챙겨주라고 하면서, 대신 꼬시면 죽여버린대. 별소리를 다 하지? 납골당 더 자주 오래. 결혼도 안 한 놈이 시간 날 때마다 오라면서 말이야.. 어쨌든 현관문 앞에 두고 갈게.. 그리고 지영아 미안해…”


그녀는 민수의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투명한 플라스틱 케이스에 지영의 오빠가 매번 대회 때마다 신었던 빨간 러닝화가 들어 있었다. 7년이 지났지만, 전혀 부패하지 않았다. 지우려고 노력한 과거가 쓰나미가 되어 지영의 머리를 집어삼킨다. 가끔 대회장에서 깜짝 오빠를 놀래켜주거나, 간식을 사서 기다리곤 했던 기억. 진영, 민수, 지영 셋이서 단거리 우중 대회를 마치고 먹었던 미나리 삼겹살. 유난히 더웠던 어느 9월에 잿빛 얼굴로 대회를 끝마치고 선크림 좀 바르라며 잔소리했던 아주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지영은 거실로 유품을 가지고 왔다. 왜 민수가 그렇게 말했는지 이해가 됐다. 신발을 보자, 지영은 그가 영원히 사라진 게 아님을 느낀다. 신발을 신어봤다. 발볼을 아늑하게 감싸는 게 사이즈가 딱 맞았다. 진영은 유난히 발이 작았고, 지영은 발이 큰 여자였기에 운동화를 때때로 공유하곤 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신발도 지영에게 딱 맞았다. 밑창 옆면에는 하얀 매직으로 쓰인 글귀가 있었다.


‘인생의 승부수, 02:34:16’


춘천 대회가 있던 해 나갔던 고양시 마라톤 대회 기록일 것이다. 이날부터 일주일 넘도록 이 기록을 지영에게 자랑하고 다녔으니, 그녀는 대번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병신.. 인생의 승부수라고…? 머저리처럼 그깟 오래달리기가 뭐라고.. ”


원망과 그리움이 뒤섞였다. 지영은 아직 신지 않은 반대 발 러닝화를 조준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집어 던졌다. 소파 위 벽면에 맞고 튕겨서 다시 지영의 발 앞으로 떨어졌다. 그 신발 밑창 옆면에 무엇인가 쓰여 있었다.


‘With my family! 02:29:00까지’


지영은 반대 신발도 신었다. 제자리에서 무릎을 들어 잠깐 뛰는 척을 해본다. 오빠가 죽은 이후 달리기라면 치를 떨었건만 왜인지 이게 자기 삶의 마지막 숙제처럼 느껴졌다. 2시간 29분, 그 기록을 달성하는 것. 과호흡으로 죽든, 종아리가 터져서 죽든 그래야만 했다. 해낸다는 긍정의 느낌보다는 지금의 절망감을 더 지옥으로 만들고픈 멸망에 가까운 묵시록이었다.


‘그래, 그 빌어먹을 기록 내가 해줄게. 난 언제 죽어도 상관없으니까.’

지영은 평소 먹는 양보다 두 접시의 오이김치를 더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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