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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Jan 22. 2024

 매화는 항상 그대로다, 때가 되면 핀다

우영팟에 일찍 핀 매화를 보면서

겨울은 이름만으로도 오몽(*제주어 : 몸을 움직이다)하기가 싫은 계절이다.

두툼하게 겨울옷을 챙겨 입어야 하니 귀찮고, 얼굴을 스치는 찬바람을 마주해야 하는 것도 싫다.

자연스레 행동반경을 최소화하고 외출을 자제하게 된다. 그래서 겨울은 방콕의 계절이다.


한때 부지런히 드나들던 유심재를 이런저런 핑계로 다녀온 지가 오래다. 어떤 날은 피곤해서, 어떤 날은 너무 늦어서, 어떤 날은 할 게 없어서.. 등등의 이런저런 핑계로 유심재에 가는 일을 잠시 잊고 있었다. 하긴 겨울이라 우영팟에도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 뚜렷하게 가야 할 명분은 없다.



하나로마트에 장 보러 가는 길이다. 집에서 하나로 마트 가는 길 5분, 여기서 다시 10분을 더 가면 유심재다.


"마트 보고 촌에나 갔다 올까?" 여기서 촌이란 유심재를 얘기한다. 아내가 유심재 상황이 궁금했는지 넌지시 건넨다.

"그럽시다.. 특별히 할 거는?? "

"터널 안에 있는 쌈 채소도 둘러봐야죠.."


사실 우영팟 터널 안에는 상추, 아삭이.. 등등 쌈 작물 6가지를 심었다. 겨울철 삼겹살을 먹기 위한 쌈 채소다.    


유심재 입구 붕어빵가게는 오늘도 영업 중이다. 젊은 사장님은 오늘도 부지런히 붕어빵을 만들어 내고 있다.  

겨울철 필수템인 어묵과 핫도그로 사세 확장도 했다. 메뉴상으로는 지금이 한창 제철이건만 단골인 학생들이 방학인 관계로 가게 앞은 썰렁하다.  

마을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는데 인근에 애들이 마땅히 군것질할 곳이 없다. 학기 중에 애들이 학교가 끝나는 시간에는 대기 번호를 타야 할 정도로 꼬마 손님들이 북적거렸다. 재료소진으로 일찍 문을 닫는 운수 좋은 날도 있다.


유심재의 긴 올레길을 지나 들어선 마당은 역시 썰렁하다. 한여름 내 풍성했던 푸르름은 없다.

매실나무는 앙상함만이 남아있었는데 웬 분홍 꽃이 얹어있다.

우영팟 한쪽 가에 있는 앙상한 매실나무에 벌써 봄의 전령사가 신호를 보내고 있다.

꽃이 피었다. 철 모르는 꽃이다. 그동안 따스함을 보여주던 날씨를 봄날로 착각해서 꽃을 피운 모양이다.


철을 잊은 따뜻한 겨울 날씨가 매화에게 피어나도 됨을 알려주었던 모양이다.

우영팟에서 때 이른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꽃


기상청에서 매화 공식 개화 기준은 한 가지당 세 송이 이상의 꽃이 활짝 피었을 때를 말한다. 우영팟 매화나무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이 꽃이 피었다. 예년에 비해서 한 달 빠른 개화라고 한다.


예로부터 매화는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세한삼우라고 일컬어진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세 벗이라고 하여 시인 묵객들이 앞을 다투어 노래하고 화폭에 담았다.

세한삼우를 완상(賞, 즐겨 구경함)하고 노래하는 것은 조선 선비들의 정서이자 풍류였다.


매화는 이름도 여럿이다. 눈 속에 피면 설중매(雪中梅), 달 밝은 밤에는 월매(月梅). 비 오는 날이면 우중매(雨中梅)가 된다. 지역에 따라 이름을 붙이기도 하는데, 화엄사에 일찍 피는 매화를 화엄매, 통도사 홍매가 유명하다.

매화는 절개를 상징하여 ‘매(梅)’자를 아호로 쓴 선비들이 많다. 사육신의 한 분으로 끝내 절개를 지킨 성삼문의 아호는 매죽헌(梅竹軒)이다.


매화는 겨울철 대지의 기나긴 동면을 깨면서 새로운 기운을 알린다.

세상이 변하건, 날씨가 변화 건 매화의 본색은 그대로다.

본연의 모습을 잊지 않고 다시 꽃망울을 터트려주는 매화를 보면서 잠시나마 추위를 잊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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