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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Aug 17. 2024

마을에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고성1리 현장 포럼 단상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호응을 해주고 참여해 줄 때가 가장 행복하다.


  나는 마을활동가로서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에 자주 참여한다. 행사의 성격에 따라서 주최자, 스태프, 방관자, 모니터로 각각의 역할도 다양하다. 목적이 다양하니만큼 참여하는 모습이나 태도도 다양하다. 그러나 항상 공통으로 느끼는 생각은 주민들의 참여율에 대한 아쉬움이다. 주로 농촌인 마을인 경우 농사일로 바쁜 하루를 마치면 몸은 천근만근이다. 저녁 시간 당장 현실적인 문제와 연결되지 않은 마을의 행사에 지친 몸을 이끌고 참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단한 열의나 참여의식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참여하는 분들에게는 항상 고마움을 표시한다.


  제주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마을에서 현장 포럼이라는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을 주민들이 참여해서 마을의 장기 발전계획을 직접 수립하는 과정이다. 직접 주민들이 참여해서 마을의 자원을 발굴한다. 발굴된 자원 중에서 대표 자원을 선정하고, 이를 활용해서 마을 주민들이 하고 싶은 사업을 찾고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과정은 퍼실리테이션 기법을 적용한다. 토론이 아닌 퍼실리테이션 기법을 적용하기에 누구나의 의견이 개진될 수 있고 결과에 반영이 될 수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진행하고 결과물로 만드는 것이 현장 포럼이다. 제출되는 결과물은 마을 장기 발전계획이다. 주민들이 직접적인 의견으로 만들어진 마을의 장기 발전계획 속의 사업들은 하나둘씩 끄집어내서 실행하는 것이 마을만들기 사업이다.


  현장 포럼에서 많은 주민의 중지를 모으기 위해서 주민들의 참여는 절대적이다. 또 가급적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해야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현장 포럼은 4회차로 나누어서 단계별로 진행한다. 차수가 진행될수록 주민들의 참여도는 용두사미가 된다. 처음에 30명, 2회차에 25명, 3회차에 20명..이런 식이다. 차수별로 주민들의 참여가 자유스럽기 때문에 참여했다가 빠지고, 새로운 주민들이 참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발굴, 정리되는 내용들이 일관성이 없거나 실질적인 참여에 한계도 뚜렷하다. 참여하는 주민들의 연령이나 직업, 선주민인지의 여부에 따라서도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결과물도 차이가 있다. 이런 여러 가지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안이 없어서 지금도 광범위하게 실행되고 있다.

   



 "지난주 고성1리 현장 포럼에 60명이나 참석했어요, 최고예요!"

다른 일정으로 참석을 못 한 고성1리 현장포럼을 두고 센터 담당자가 전화 왔다. 나는 마을의 자원을 알고 주민들의 욕구를 날 것인 상태로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기기에 내가 담당하는 마을의 현장 포럼은 거의 참석한다. 방관자가 되어 모니터링을 한다. 그런 내가 안 보여서 이상한지 센터의 담당자가 전화 온 것이다.


  2회차인 날 30분 먼저 도착했다. 교육장인 2층 대회의실을 올라가니 무슨 난리가 난 모양이다. 큰 회의실이 사람들로 그득했다. 센터에서도 센터장을 비롯한 여러 직원이 출동했다. RF들도 여럿이다. 참석자가 많다 보니 여러 테이블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번 60명 참석했다고 이번에도 60명 참석하겠느냐의 의문이다. 그러나 혹시 그럴지도 모르니 준비는 해야 해서 많이 출동했다고 한다. 현장 포럼에서 참석인원을 확정할 수 없음은 모든 마을에서 발생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10분 전부터 주민들이 삼삼오오 계속해서 들어온다. 서명하고 간식과 경품권을 받고 자리에 앉는다. 지팡이를 짚고서 총총걸음으로 오시는 어르신부터, 밭에서 금방 오신 듯 갈중이 삼촌, 머리가 짧은 동네 청년들이다.

"서명지가 부족한데요.." 데스크에서 서명을 받던 센터 직원이 하소연이다. 아마 50명 정도로 생각하고 서명지를 준비한 모양이었다. 응급책으로 A4용지를 리 사무소에서 받아다가 백지에 서명을 받도록 했다. 지난번보다는 훨씬 많은 거의 70명의 주민이 참여했다. 2021년 말 고성1리 인구가 1,200여 명이니까 전체 주민의 5% 선이다.  


 농촌에서 21시면 외부 활동이 없는 시간, 대부분 취침 시간이다. 보통 현장 포럼을 할 때 20시가 넘어가면 플로어에서 슬슬 아우성이 시작된다. 그러다가 21시가 넘어가면서는 이탈자가 발생하고, 이후에는 노골적인 불만이 터진다. " 9시면 잘 시간인디, 머리가 안 돌아가..언제 끝날꺼라." 이런 방식이다. 그 때문에 저녁 7시쯤 시작하는 현장 포럼은 9시가 거의 데드라인이다. 현장 포럼은 주어진 프로세스를 밟다보면 이 시간이 피크타입이다. 좋은 의견들에 대한 평가를 하고 결론을 내야 할 시간인데 급히 마무리하느라 용두사미가 된다.


 고성1리의 현장 포럼은 데드라인인 21시를 넘겼다. 30분을 더한 시간에 마쳤다. 아마 가장 긴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좌석에서 불만의 소리나 이탈자가 없었다. 나이가 드신 어르신들이 오랜 시간 앉아있는 게 어려워서 조금의 움직임이 있을 뿐이었다. 사실 젊은 사람들도 2시간 이상을 쉼 없이 자리에 앉아 있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군중의 심리를 자극하거나, 불평을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민도에 놀랐다.   


  제주에서는 놈이대동이라는 말이 있다. 남이 하는 것과 같이 하라는 의미다.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모나는 일을 해서 남들보다 튀어나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난 정이 돌을 맞는다"라는 격언과 일맥상통한다. 어른들이 자녀들을 키우면서 자주 하던 말이다. 그래서인지 제주인들은 적극적으로 자기의 의견이나 생각을 선제적으로 하지 않는 편이다. 제주에서 주민들의 생각을 듣고자 하는 경우에 부딪히는 난관이다.

  오늘 포럼에도 참석자들의 대부분이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 들이다. 놈이대동이라는 말을 듣고 살아오신 분들이다. 적극적인 얘기를 하는 편이 아니라서, 새로운 생각을 끄집어내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마을의 행사는 참 어렵다고 한다. 만나는 마을의 이장이나 사무장의 공통적인 얘기다. 주민들을 회의에 참석시킬 만한 유인 요인이 없다는 것이다. 본인들 하고 직간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한 참석을 하지 않는다. 이해가 가는 말이기도 하다. 요새는 마을에서 행정사업을 신청할 때 대부분이 주민들의 동의서나 회의록을 첨부하라고 한다. 주민들의 의견인지에 여부를 묻는 것이다. 필수적 요소라 주민들을 모이게 할 묘안이 필요하다.


  "뭔가를 주면, 주민들이 참여하지 않을까?" 궁리 끝에 마을에서 찾아낸 주민들의 참여 유도 방식이다. 작지만 공짜와 행운이라는 기쁨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마을의 재정은 어렵다. 매번 행사 때마다 주로 스폰을 받아서 처리한다. 아니면 이장의 개인 주머니를 털어야 한다. 이장의 부담이자 능력이라고들 흔히 얘기한다.


고성1리도 마찬가지다. 입장할 때 서명하면서 경품권을 받고, 행사 마지막에 추첨해서 상품권을 주었다. 오늘 경품권 상품은 이장의 개인 주머니를 털었다고 옆에서 사무장이 귀뜸해 준다. 소소한 일이지만 당첨에 기쁨을 누리고, 행운을 나누어 주는 것 축제의 마무리 같은 과정이다. 리더는 다재다능하고 세심해야 한다.


  4주 차 마지막 날 이벤트로 참가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현장 포럼 쫑파티를 했다. 족발과 어묵, 치킨에 막걸리를 준비했다. 고성1리 행사 때 만들어내는 어묵 맛은 일품이다. 오늘 같은 날 잔치같은 분위기로 주민들이 모일 수 있게 행사의 메이드 했다는 것에 대해서 놀랐다. 서로서로가 위해주고, 주민들이 즐겁고 행복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하는 느낌이 왔다.



  마을의 최연장자는 92세 어르신이라고 했다. 첫날부터 참석하더니 4회차까지 개근했다. 마지막에는 마을에서 당장 필요한 사업에 대한 발표도 직접 했다. 쫑파티에서는 건배사와 함께 마지막 부탁일지도 모른다는 마을을 위한 부탁의 말씀도 힘 있는 목소리로 하는 모습이 마을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현장 포럼 4일간의 주민들의 얘기는 연말쯤 보고서로 발행이 된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그 보고서안의 담겨져있는 주민들의 생각을 하나씩 발췌하면서 행정에 사업으로 신청할 수 있다. 의무 사항은 아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단지 오늘을 사는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나름의 생각을 얘기하고 정리해 두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는 역사적 자료다. 과정 자체가 마을 자치이고 마을공동체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4일간의 아주 모범적이고 부러운 마을의 모습을 보았다.     

      

직접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92세 어르신

우리는 종종 인정하면서도 자주 간과하는 게 있다.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종종 결과가 나쁠 때만 지도자를 얘기한다. 탓이다.

결과가 좋으면 자기들이 잘할 것이고, 결과가 나쁘면 지도자나 감독이 잘못한 것이다.



" 오늘도 60명 참석했고, 쫑파티까지 핸.."

" 그 마을 이장 대단한 사람이다예 "

저녁 늦은 시간 집에 와서 아내와 주고받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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