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에서 갑자기 매스컴을 타면서 유명해진 마을이 있다.
애월읍 소길리다. 소길리라는 마을 이름보다는 이효리가 살던 마을이라고 해야 더 알 수 있을 것이다.
애월읍 소길리는 중산간 마을이다.
일주서로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5KM 올라간 곳에 위치한다. 사람들은 주고 밭농사를 짓고 살았다. 중산간 마을로는 토질이 비옥하여 금비 사용이 없던 때에는 다른 마을에 비하여 농작물이 잘 자라서 소득도 높았다고 한다. 해안가 마을에 비하여 교통이 편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식주를 거의 자급하는 형태의 평범한 농촌마을이었다.
중산간 마을이기에 4.3의 피해가 심했던 곳이다. 마을이 소개되었다가 다시 복원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마을에 유명한 관광지나 특이한 자원은 없다. 그러기에 외부인이 들락거림이 없이 조용한 마을이다.
작은 중산간 마을의 특성상 몇 개의 성씨들이 모여사는 주민들이 마치 괸당 같이 어울려 사는 마을이다.
1978년에는 제주도 최초로 범죄 없는 마을로 지정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그 표석은 마을 내 아름드리 팽나무 아래에 있다.
지금은 마을 앞을 횡단하는 몇 개의 도로가 생겨서, 교통이 원활할 뿐만 아니라 하루에 몇 차례 씩 대중교통인 버스가 다니는 접근성이 좋은 마을이다.
소길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구엄리, 중엄리 사람들이 제5소장 목장으로 소를 몰고 다니던 길인 ‘쉐질’이 이 마을에 있었다는데서 유래한다. 처음에는 마을 이름을 쉐질마을, 우로촌(牛路村), 우로리 또는 인근마을과의 교류를 표현하는 신덕리, 동정리라고 부르다가, 18세기초에 쉐질의 한자음을 따 소길(召吉)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길운을 부르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마을 안에는 크고 작은 쉐질들이 비교적 원형을 유지한 체 그대로 있다. 그 뒈질 입구에 있는 안내판의 내용이다.
소길리를 구성하는 자연마을은 본동 하나다. 본동은 마을회관 주위에 있는 민가를 말한다.
4.3으로 없어진 마을인 원동(윤남동)이 있었다 하나, 이곳은 대부분이 상가리 지역이다.
장전과 유수암, 소길리를 연결하는 원형로터리를 지나서 시골스러운 마을 입구로 들어서면 우뚝 선 현대식 건물이 보인다. 마을회관이다. 아마 이 마을에서는 단일 건물로는 제일 크고, 높은 건물이다. 어떤 생각으로 무슨 컨셉으로 마을의 상징인 마을회관을 이렇게 지었는지는 모르겠다.
마을회관입구에는 조그만 버스정류장이 있다. 공영버스가 가끔씩 들르는 곳이다. 정류장 안에는 피아노가 있다. "음악이 흐르는 버스정류장"이라는 컨셉이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건반을 눌러볼 수 있다는 것도 흔치 않은 경험이다.
버스정류장 옆에는 녹색농촌체험관이란 팻말이 붙은 아담한 2층 건물이 있다. 지금 마을회관이 생기기 전까지 사용했던 마을회관이다. 2011년 녹색농촌체험마을 지정이 되면서 1층은 체험관, 2층은 체험객의 숙박장소로 이용했던 곳이다. 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는 듯하다. 문도 닫혀 있고,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없다.
여기는 삼거리다.
예전 마을회관이 있었고, 그 앞에는 마을에 관련된 사람들의 추모비가 있었다. 흔히들 마을입구에 있는 비석거리다. 지금 비석이 있던 자리는 텅텅 비어있다. 비석들을 모두 마을회관 부지 내로 옮겼다.
섬거리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좌우를 살피면 본동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야를 가리는 높거나 큰 건물들이 없기에 마을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차선이 없는 마을 안길, 낮고 울툴불퉁한 돌담들이 경계다. 낮고 오래된 구옥사이로 가끔은 리모델링 한 집들, 구옥인데 마당과 텃밭이 정결하게 정리된 집들이 눈에 띈다. 큰길에서 좌우로 깊이 들어간 집들이 많다. 올레를 걸어야 들어갈 수 있는 집들이다. 올레는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오가는 자동차도 없는 길, 천천히 걸어가면서 좌우를 살필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지나가다가 멈칫 멈칫 선다. 한참을 쳐다보다가 눈에 담기에는 부족한 듯 카메라를 꺼내서 담아야 다음 걸음을 재촉할 수 있다.
조금을 걸어가면 다시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을 마을입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삼거리에는 300년 수령을 가진 노거수인 아름드리 팽나무가 있고, 맞은편에는 경로당이 있다. 대각선을 보면 좀 특이한 원형 시멘트구조물이 있다. 겉에 끼어있는 이끼와 낡은 상태를 봐서는 꽤나 연륜을 가졌을 법한 구조물이다. 마을의 식수인 공동수도 물탱크다. 1966년 상수도 시설이 없던 시기 소길리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기 위한 공동 수도시설(물통)이다. 여기에 물을 채워놓은 다음, 아래에 달린 수도꼭지로 물허벅에 물을 담아다가 가정에서 먹었다고 한다. 물은 인근마을인 유수암천의 물을 끌어다 먹었으나, 유수암에서 자주 막아버려서 1년도 사용 못했다고 마을주민은 서러움을 얘기했다. 그 때문인지 3개의 물탱크 중 2개는 도로확장을 하면서 전부 없애버리고, 지금 1개만 원형이 보존되고 있고, 철거하다가 남긴 공동수도터 하나는 광성로를 지나는 버스정류장에 남아있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집집마다 돌담 울타리에 의지한 체 자라고 있는 토종 풋감나무가 보인다.
제주에서 풋감나무는 가정의 큰 재산이다. 제주의 노동복인 갈옷을 만드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산간지역에 위치해서 자급자족을 해야 하는 마을인 소길리에서 풋감나무는 가정의 필수품이었다. 이런 향토자원으로 인해서 소길리는 "정감이 흐르는 풋감마을"이라는 브랜드로 일찍부터 마을사업을 시작했다.
2008년에는 농어촌지역 특화사업마을, 2009년에는 녹고뫼권역 사업(유수암, 장전, 소길), 2011년에는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이 되었다. 녹색농촌체험마을은 친환경농업, 자연경관, 전통문화 등 부존자원을 활용해 농업의 부가가치를 증진시켜 농가의 소득향상 및 농촌 지역 공동체를 형성·복원, 도시민의 다양한 수요에 맞는 체험·휴양공간을 만들어 농촌체험관광 및 도·농교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사업이다.
이때 시작된 소길마을의 풋감천연염색체험은 아직도 유명하다. 마을의 동쪽 장소로의 가로수는 제주 토종 풋감나무다. 마을에서는 체험용 풋감확보를 위해서 토종 풋감나무를 별도로 재배하고 있고, 착즙을 하는 기계도 구비했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의 집집마다에는 마을의 수호목인 듯 토종 풋감나무들이 울담을 지키고 있다.
제주형 마을 만들기 사업으로 2023년에는 마을카페를 만들었다. 소길 팡이라고 한다 마을의 아픈 자리였던 4.3 당시 경찰파견소터를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만들었다. 마을의 주민들이 모여서 만든 조합에서 운영하는 카페는 주민들의 휴식처일 뿐만 아니라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옆에는 주민들이 모여서 회의도 하고, 간단한 행사도 할 수 있는 돌창고라는 소통공간을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이 공간에서는 아름답게 꾸민 정원이 일품이다.
다음이야기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