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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Aug 21. 2024

결과는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블루베리 나무가 말라죽은 날..

유심재 텃밭에는 블루베리 나무 2그루가 있다.

몇 년 전 인근 농협에서 구입해서 심었다. 텃밭은 오가는 길에 하나둘씩 따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심은 다음 해부터 열매가 제법 열렸다. 텃밭과 잔디밭 사이 경계선에 있는 블루베리 화분은 오가는 길에 반드시 들리는 즐거움의 대상이 되었다. 올해 초에는 화분이 작은 듯해서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기를 놓쳤다.


유심재를 오는 날이면 제일 먼저 텃밭을 한번 휘이 둘러본다. 동선의 마지막은 계절에 따라 다르다. 토마토가 열릴 때는 토마토 옆을, 오이가 열릴 때는 오이 옆을, 블루베리가 열리는 계절에는 블루베리 화분 옆을 지나서 나온다. 잘 익은 블루베리 몇 개를 따서 손으로 문지르고는 입에 넣는다.

“ 씻지도 않고 먹으면 어떡 합니까? ” 항상 그 모습을 보는 내의 투박이다. 



올해는 날씨가 유난히도 심술을 부린다. 제정신이 아닌 정도가 아니다. 거의 재해 수준이다. 제주는 36일째 열대야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역대 3위라는데 며칠만 지나면 44일의 역대 최장 기록을 경신하고 말 기세다.

밤낮으로 내리쬐는 햇빛에 요즘 밭에 나간다는 것은 자살행위다. 열사병으로 실려 오는 사람 중에는 밭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가장 많다는 얼마 전의 언론 보도도 있었다. 일단 사람이 살고 봐야 한다.


예전 같으면 더운 여름 농촌에서는 늦은 오후 시간 밭으로 출근했다. 한낮 강렬한 햇빛을 피해서 일을 하다가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시간 성질 급한 별들을 보면서 집에 돌아왔다. 수돗가에서 등목하고 막걸리 한잔을 하는게 우리 아버지 시대 더운 여름날 농촌의 일상이었다. 

이젠 이런 일이 말 그대로 우리 아버지 시대 얘기가 되어버렸다. 요새 더위는 밤낮을 가리지 않으니 오후 늦은 시간에도 밭일할 수 없다. 낮에 대지를 달구었던 더위가 아직 남아있다. 그렇다고 저녁 바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탁 트인 야외 공간이라고 하지만 텁텁한 날씨에 꽉 막힌 듯한 기분은 따뜻한 온돌방에 앉은 기분이다. 그래서 요즘 농사일, 밭일은 방학이다. 

    


찌는 듯한 날씨에 이런저런 일이 겹치다 보니 아주 오랜만에 유심재에 들렸다. 들어가는 올레부터 마당 안까지 잔디는 모두 삐쭉삐쭉 영구 머리같이 장발이 되어 있었다. 모퉁이를 돌아서면서 텃밭을 보는 순간 멈칫했다. 안 보이던 모습이 보여서다. 애지중지하던 블루베리 화분의 모습이 안 보였다. 유심재의 문도 열지 않은 체 얼른 다가가 보니 블루베리 나무의 잎이 모두 누렇게, 아니 거무스레하게 변해있었다. 파란색이 전혀 없었다. 잎을 만지는 순간 모두 부스스 부서졌다. 나뭇가지를 꺾으니 뚝 소리 내면서 꺾인다. 2그루가 모두 그랬다. 용기에 심은 데다, 가뭄이 심하고, 햇빛이 강하다 보니 타버린 모양이다. 때아닌 가을 단풍나무가 되어버렸다. 방송에서 강한 햇빛과 가뭄에 작물이 타버리고 있다는 얘기를 종종 접했으나 이렇게 실제로 당하니 황당한 일이다.

봄철 파랗던 블루베리 나무가 여름 햇빛에 타버린 모습

나는 화분에 식물을 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항상 관심을 두고 물을 주거나 캐어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나고 자라는 식물을 화분에 심느냐는 것은 본인만의 그릇에 담아서 본인만이 즐기고 싶은 인간의 욕심이다. 식물은 물과 수분이 있어야 생을 유지한다. 화분에 심었는데 지속적으로 물을 공급해 줄 수 없다면 생명수를 끊은 것이다. 비도 오지 않는 요새 같은 날씨에 식물이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블루베리는 일반토양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물 빠짐이 좋고 부드러운 산성의 블루베리 토양에 심어야 한다. 블루베리는 대부분이 화분이나 블루베리용 용기에서 재배한다. 이런 리스크가 있기에 화분 재배를 꺼리면서도 블루베리는 화분에 심을 수밖에 없었다. 올여름 비가 오지 않고, 찌는 듯한 날씨가 지속되다 보니 수분공급이 문제였다. 거의 방치한 수준이 되어버렸으니 예민한 블루베리가 견뎌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아쉬움을 가득 담은 체 블루베리 화분을 수돗가로 옮겼다. 혹시 수분공급을 충분히 해준다면 다시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물에 며칠을 담갔다. 며칠이 지나서 수돗가를 찾았는데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할 수없이 폐기처분을 할수 밖에 없었다.

이젠 텃밭에서 오동통통하게 잘 익은 블루베리를 먹을 수 없다. 유심재를 찾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사라졌다. 

     



우리는 종종 핑크빛 결과만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결과를 얻는 것이 목표다. 과정에는 관심이 없다.

핑크빛 결과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은 간과한 체 말이다.

과정 없는 결과는 없다는 글귀가 문뜩 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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