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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의 세레나데 (serenade)

아내를 만나서 의미를 알게 된 노래

by 노고록

우리는 일상의 노래를 대중가요 또는 유행가라 부른다.

대중의 노래, 유행하는 노래라는 의미다. 대중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고 대중의 희로애락의 기분을 잘 대변해 주기에 대중의 사랑을 받고 유행하는 것이다. 노랫말은 모두가 내 얘기이고 멜로디를 내 기분이다.




1980년대 하반기, 내가 서귀포 YMCA에서 곤소리라는 기타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할 때다. 클래식기타 동아리였지만 가끔은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또는 따분한 연습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 기타 합주에 맞추어서 떼창을 했다. 이때 마지막으로 부르는 떼창곡이 양희은의 <아침이슬>과 김연숙의 <그날>이었다. <아침이슬>은 모두가 아는 노래였지만, <그날>은 노래가 뜨기 전이라 아는 사람들만 부르던 노래로 가요책에도 악보가 없었다. 가수의 목소리가 좋은 건지, 멜로디가 좋은 건지는 모르지만 내가 직접 기타로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직접 녹음해서 들으면서 악보를 채보하고 코드를 붙였다. 그리고 오선지 음악공책에 그렸다. 그리고 동료들과 같이 내가 그린 악보를 보면서 합주를 하면서 떼창을 하던 시간은 세상 아무 걱정 없이 철없이 지내던 나의 화려한 그날이었다. 당시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발령이 나기 전까지 매일의 일과가 기타를 치는 일이라 노래를 들으면서 채보할 정도의 능력은 가지고 있었던 시절이다.


그즈음 해바라기라는 남성듀오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노랫말은 아름다운 시구였다. 사랑의 대서사시 같은 그들의 노래는 통기타를 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코스가 되었다. 내 기타 악보집에는 역시 손으로 그린 해바라기의 <모두가 사랑이에요>, <이젠 사랑할 수 있어요>라는 노래가 있다. 단골 연주곡이라는 얘기다. 두곡 다 노랫말이 이쁘고 서정적인 데다, 해바라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아서 잊을 수 없는 노래였다. 지금도 음악을 들을 때면 내 플레이 리스트에는 항상 해바라기의 노래가 있다. 몇 년 전부터 내 귓가를 점령한 해바라기의 노래시는 <구월에 떠난 사람>이라는 노래다.


해바라기의 노래로 사랑의 대서사시를 시작하다.

해바라기 사랑의 노래에 취해있던 1989년 5월 22일 지금의 아내와 만남을 시작했다.

사내에서 만난 지라 들키지 않게 눈치를 봐야 했기에 우리들의 활동 반경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워낙 많은 직원들이 있는 회사였기에 퇴근하고 저녁시간 시내 어디를 가던지 직원 한두 명은 만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니 제일 안전한 만남은 단둘만 만나는 게 아니라 사정을 아는 직원들과 같이 어울리는 것이었다. 때로는 당시 한참 사내에서 유행하던 볼링을 친다는 핑계로 어울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자주 하다 보니 들러리를 사주는 사람들도 불편하고 우리도 불편했다. 그때 생각해 낸 것이 시내버스 여행이다. 당시 시내에서 최고 멀리 가는 것은 지금의 함덕해수욕장이 있는 함덕리까지 가는 시내버스다. 거의 1시간 정도 걸린다. 퇴근해서 저녁을 먹고 함덕까지 가는 시내버스를 탄다. 다른 사람들은 설마 이 친구들이 시내버스를 타고 데이트를 한다고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함덕해수욕장에 내린다. 철 지난 바닷가는 아무도 없는 말 그대로 조용한 바닷가였다. 추운 날 바닷가에 앉아서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막차가 출발하는 시간까지 있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게 사내에 소문이 퍼지기 전까지의 아내와의 데이트였다. 그때 내가 가장 좋아했고, 가끔 혼자 부르던 노래가 해바라기의 <사랑의 눈동자>라는 노래다.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사랑 이 가슴에 슬픔만 남아 이제 난 당신을 알고 사랑을 알고 느꼈어요
끊을 수 없는 우리의 사랑 가슴 가득 그리움 남아 이제 난 당신을 알고 사랑을 알고 느꼈어요
그대의 사랑은 내 맘을 감싸주고 그대의 그 모습은 사랑의 눈동자여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사랑 이 가슴에 슬픔만 남아 이제 난 당신을 알고 사랑을 알고 느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얘기를 그대로 담은 노랫말이다.

속삭이듯 읊조리는 흐르는 멜로디도 가사를 닮았다.


아내의 답가는 정태춘과 박은옥이 <사랑하는 이에게 >라는 노래다.


"그대 고운 목소리에 내 마음 흔들리고 나도 모르게 어느새 사랑하게 되었네

깊은 밤에도 잠 못 들고 그대 모습만 떠올라 사랑은 이렇게 말없이 와서 내 온마음을 사로잡네

음 달빛 밝은 밤이면 음 그리움도 깊어

어이 홀로 새울까 견디기 힘든 이 밤

그대 오소서 이 밤길로 달빛아래 고요히

떨리는 내 손을 잡아주오 내 더운 가슴 안아주오"


사랑이라는 것을 하면서 느끼는 풋풋하고 싱그러운 마음, 설레는 기분을 노래 속에 담아서 대신 전했다.

서로가 자기 노래를 부르면, 따라 불러주곤 했다.


지금도 이 노래들을 들을 때면 우리가 처음 만나 긴장감을 갖고 서로를 쳐다보던 그때가 소환된다.




마음 따라 기분 따라 불러야 하는 게 대중가요고 유행가다.

만나서 결혼을 결정하기까지 1년여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내가 좋아하던 노래도 장르와 깊이를 달리할 때도 있었다.


처음 만나서 좋았을 때는 <사랑의 눈동자>와 <사랑하는 이에게>를 부르면서 시작을 했다.

서로의 관계를 놓고 갈등을 할 때는 강승모의 <무정 부루스>가 애창곡이었다.

어떤 날은 전화기에 대고 내가 윤시내의 <열애>를 불렀다고도 한다.


당시는 노래방이 없던 시절로, 반주에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은 단란주점과 스탠드 바가 전부였다. 그러니 노래를 부른다기보다는 주로 듣던 시기라 레스토랑이나 음악다방을 찾았다. 목신의 오후, 은모래, 소금창고와 같은 음악다방 미리내와 숲 속의 빈터와 같은 레스토랑이 안식처였다. 말이 없어도 노래로 마음을 전할 수 있었던 낭만이 가득한 시대였다.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이듬해인 1990년 12월 8일 우리는 결혼함으로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만난 지 1년 하고도 6개월 여가 지난 때다. 고3이던 막내 동생이 친구와 같이 결혼 축가를 불러준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축가를 부르는 경우가 흔치 않았던 때라 조금은 어색하기도 했지만 머뭇거리지는 않고 승낙을 했다. 무슨 곡을 불러줄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당일까지 미공개였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평소에 내가 해바라기 노래를 자주 부르는 것을 알았는지 해바라기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당시 한참 떠오르던 <사랑으로> 기타 연주로 불렀다. 내가 무척이나 기타를 치면서 불러보고 싶었으나, 직접 하지는 못했던 곡으로, 아내에게는 반드시 들려주고 싶었던 노래이기에 너무나도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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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바라기 노래로 시작했던 나의 사랑은 해바라기 노래를 들으면서 결실을 맺었다.


지금도 해바라기의 노래를 매일 듣는다.

그들이 전해주는 노래 속 사랑의 감정은 나에게 마음의 평정과 힘을 가져다준다.

처음 아내에게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 순간 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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