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니가 망할 줄 알았어
일명 ‘털 동생(반려동물)’이 없는 나로서는 문밖만 나서면 동물의 왕국 같은 제주도가 신기했다. 한편으론 적응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분명 주인이 있는 개들이 골목, 도로에 무법자처럼 무리 지어 돌아다니고, 그냥 지나가면 될 터인데 굳이 가까이 다가와 나를 긴장하게 했다. 작고 귀여운 아이들이 아니라 대부분 시골개, 들개들이다. 무서워서 가던 길을 뒤돌아 뱅뱅 돌아간 적도 많다. 노랑 깜장 하양 고양이들은 담벼락을 쉭쉭 넘나들고, 가뜩이나 가로등이 많지 않은 밤거리에서 어둠을 밝히는 눈동자 두 개와 마주할 때면 또다시 나는 후들후들… 앙칼지게 울어댈 때면 두 팔에 돋는 소름을 쓰다듬던 시절이 있었다.
그랬던 내가 제주 입도 몇 개월 만에 오구오구 고양이 엄마가 되었다. 냥이에게 처음 정을 붙이게 된 건 내가 살았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쉬리’ 때문인데 이렇게 애교 많고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난생 처음 깨달았다. 쉬리와의 짧은 만남, 눈물의 이별 직후에는 길가에 지나가는 치즈냥(노란색 고양이)만 봐도 가슴 한쪽이 찌릿찌릿 했다. 지금쯤 쉬리는 고양이별에서 친구들과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겠지?보고싶다. 우리아가 쉬리.
쉬리를 떠나보낸 후에는 동네 길냥이들을 챙겨주면서 허전하고 슬픈 마음을 많이 치유했던 것 같다. 치유받았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지. 정 주지 말걸. ‘털 동생’한테 정들면 안 된다는 엄마 말씀을 못 들은 척 틈만 나면 품에 안고 부둥부둥 대다가 결국 남겨진 나만 힘들었다.
소품샵 창고에는 대용량 고양이 사료를 늘 구비했다. 한 그릇 크게 퍼서 물과 함께 놔두면 시시때때로 아작아작 씹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끔 두세 마리가 동시에 왔을 때는 내 영역 건들지 말라는 듯 갸릉갸릉 일촉즉발의 위기가 느껴져 후다닥 나가 교통정리를 하기도 했다. 약육강식의 세상. 야생의 세상은 밥 동냥을 다니는 냥이들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손님들은 사장님이 키우시는 고양이냐고 자주 물어왔지만, 한 생명을 책임지기에는 과거의 슬픔과 쉬리를 통해 배운 책임감 같은 것들이 떠올라서 쉽지 않았다. 대신 출석 도장을 찍는 냥이들에게 돼지, (애)간장, 못난이 등등의 나만의 이름을 지어 엄마처럼 밥도, 잔소리도 두둑이 챙겨주게 되었다.
제주바이브 인스타그램에 냥이들의 사진과 영상을 틈틈이 올렸더니 츄르 같은 냥이 간식을 챙겨 오는 손님들이 꽤 있었다. 따뜻하고 훈훈한 세상! 냥이들이 늘 마당에 머물지는 않아서 대부분 간식만 맡기고 가셨지만 덕분에 틈틈이 특별식 파티를 했던 고양이들 대신 이 기회를 빌려 인사 드리고 싶다.
맛있는 거 많이 챙겨 주셔서 정말 고맙다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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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매서 애간장, 수염 때문에 찰리, 통통해서 돼지
내 마음대로 이름 지어 불러주었던 사랑스러운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