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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바이브 Sep 16. 2023

1인 N역, 사장은 곧 아르바이트생

나는 니가 망할 줄 알았어 


출근.


출입문을 열자마자 천장 조명부터 진열장 위 작은 스탠드까지 빠짐없이 ON! 먼지 털고 청소기 돌리고 재고를 채운다. 카드결제 단말기와 시재를 확인하고 SNS 오픈 공지를 한다. 손님을 응대한다. 열심히 설명하고 틈틈이 수다도 떤다. 제주여행 팁이나 정보도 알려드린다. 인스타그램 알람이 울려서 보니 DM 주문 건이다. 아, 기념품 업체의 입고 제안 문의도 들어와 있네. 전화가 울린다 “영업하시는 거죠?주차는 어디에 해요?” 시계를 보니 벌써 4시가 넘었다. 5월은 종합소득세 신고를 해야 하니 필요한 자료를 수집한다. 담당 세무사에게 전달하고 납부 고지서를 전달받았다. 꽉 쥔 손에 있던 고운 모래가 바닥으로 쏟아지는 기분이다. 이 모래들이 온전히 내 것이길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아무튼 어김없이 혼자 N역을 하고 나니 또 하루의 끝이 보인다.


난데없이 비가 쏟아지거나 여름, 가을 태풍이 예고되면 내 머릿속도 회오리 친다. 자연재해에 취약한 제주살이. 기후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난생처음 직격타로 맞은 것도 제주에서 살면서부터다. 이럴 땐 할 줄 아는 것 크게 없지만 문제가 생기기 전에 최대한 대비를 하고 일이 터지면 발 벗고 달려가는 경비원이 된다. 물론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의 태풍이 왔을 땐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나서야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차 시동을 걸었지만… 제주바이브와 나란히 붙어 있는 카페 만감교차 사장님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정말 고마워!


회사 다닐 땐 팀원들의 업무 분장이 명확했고, 부서별로도 업무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기한 내에 필요한 것들만 잘 챙겨주면 알아서 착착 정리되고 진행됐는데 자영업은 A부터 Z까지 다 나의 몫이다. 물론 전문가나 타업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나의 발품, 에너지, 노력, 때론 잠 못 드는 밤까지 옵션. 패기 돋는 초짜 사장일 때에는 주 7일 풀근무를 해냈으니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2023년 종합소득세 신고는 제주소상공인경영지원센터의 지원사업 연계로 좋은 세무사님을 만나 무료로 맡길 수 있었다. 하늘에서 보내준 수리영역 1타 강사 같은 분. 시킨 대로 열심히 했더니 처음 예상한 숫자보다 훅 줄어들었다. 모의고사 매번 3등급 받다가 2등급 받아 대학 간 기분. 탈세는 하면 안 되지만 절세는 더 공부해야지! 매번 다짐해 보지만 내년 5월에 다시 보자 종소세야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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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재료가 된다

자투리 나무, 합판에 글씨를 쓰고 페인트로 색칠을 한다거나

글씨를 따라 못을 박고 털실로 감아 연결하면 입체감 있는 간판 완성!

고장 난 티비를 주워다 화면에 글씨를 쓰면 이색적인 포인트가 되고

기다란 나뭇가지를 주워다 천장에 매달고 고리나사를 꽂으면

예쁜 모빌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을 수 있는 장식봉이 된다

 값비싼 재료로 만든 것들은 아니지만 

제주에서 쉽게 보고 접할 수 있는 소재로 만들면 반응이 좋았다

완벽하진 않아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을

그때그때 해내고 나서 느끼는 보람은 해본 사람만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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