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니가 망할 줄 알았어
2020년 봄.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제주뿐만 아니라 육지 지인들까지 많이 방문해 주었다. “개업했으니까 팔아줘야지~ 선물 할만한 게 뭐가 있나~” 하며 좁은 매장을 돌고 또 돌았다. 육지에는 흔한 꽃집도 이 시골에선 귀한 존재인데 부랴부랴 동네 분재상에서 산 개업축하 화분을 품에 안고 와준 지인들은 감동이었다.
나는 대책이 좀 없는 사장이기도 했다. 제주바이브에 본인들의 자식과도 같은 창작물을 맡긴 작가분들, 자영업자 지인들, 가족과 친구들 모두가 말렸음에도 365일 매장을 지킬 것처럼 굴었다. 매일 파이팅 넘쳤고 손님들에게 설명을 적극적으로 하는 ‘E’ 100%의 사장이었다.
열심히 일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잘 쉬는 것이다. ‘낄끼빠빠’란 말처럼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딱 그거. 사람은 모름지기 일할 땐 일하고 쉴 땐 쉬어야 한다. 그러나 제주바이브에는 약간 상기된 얼굴의 그녀가 늘 출입문을 활짝 열어 두고 있었다. 그렇다 그녀는 나였다.
처음 반년 정도는 오전 10시 오픈, 저녁 6시 마감을 했고 해가 긴 여름에는 7시까지 했다. 슬레이트 지붕 한 장이 가림막의 전부인 허름한 돌창고에서 에어컨을 아무리 돌려도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카운터에 앉아 있으면 자외선을 바로 쬐는 느낌이 들 정도로 뜨거웠고, 선풍기까지 풀가동 해도 가끔 손님들께 죄송하다는 인사를 할 정도로 한증막 같았다. 제주도 습도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나는 매일 마당 수도꼭지에 긴 호스를 연결해 지붕 위 열을 식혔다. 때론 그 찬물을 내 몸에 끼얹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다.
처음엔 영업시간이 길수록 손님들이 방문하기 편하기 때문에 덩달아 구매 확률도 높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제주도라는 관광지 특성상 대다수의 업장들은 화, 수 휴무를 선호하니 그럴 때일수록 나는 부지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막 시작했으니까. 자영업 경험도 없고 타인의 사례만 참고하기에는 나의 세상은 따로 존재한다 생각했으니까. 남이 쉴 때도 일하고, 남이 일할 때도 일하고. 그럼 내 통장도 지금보다 더 두둑해지겠지. 그렇게 몇 달이 흐르니 결국 내 일상에 지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단 평생 겪은 적 없던 위장장애가 생겼다. 불규칙한 식사 때문일까?급기야 역류성 식도염 증세가 심해져 서귀포의료원에 내시경을 받으러 갔다. 그런데 내 걱정이 무색하게도 식도부터 위장까지 깨끗하다 말씀하는 의사 선생님 때문에 멋쩍은 웃음만 지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분명 가슴이 타는 듯한 통증과 신물이 넘어오는 증상을 동반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민망하다.
집안일도 쌓여가고 수면시간도 줄었다. 퇴근을 해도 일과 분리되지 못하고 하. 하. 하루종일. 가게 생각. 뿐이야. 뿐이야. 뿐이야가 계속되었다. 전 직장 동료들을 만나도 자영업자의 삶을 얘기하고, 다른 사장님들을 만나면 고충이나 조언을 하나라도 더 들으려 애썼다. 하루의 공백도 없었다. 그러다가 사정상 한 두 번씩 문을 닫고 급하게 처리할 업무를 몰아서 해결했다. 하루도 쉬어 보고 이틀도 쉬어 보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에게 이 말을 건넸던 그 사장님의 한마디를.
“너 이러면 1년도 못해. 금방 지쳐서 문 닫을 거야. 그전에 쓰러지지 않으면 다행이지”
2023년 5월 현재. 2020년보다 하루 영업시간은 반으로 줄었으며, 주말만 주중보다 길게 조정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최소 1일의 휴무를 지키고 있다. 매주 화요일 정기휴무를 몇 달에 한 번씩 다른 요일로 옮기는 것도 영업스킬이다. 그리고 손님들의 방문 패턴이 나만의 확률 데이터로 정리가 되면 영업시간이 아무리 짧아도 무작정 길게 유지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점도 깨달았다. 사장이라 불안할 때도 있지만 내가 사장이라 의사결정권을 쥐고 있다는 점이 이럴 때 속 시원하다. 물론 결과도 내 몫!
마지막으로 잊지 말자. 영업시간과 휴무 일정은 반드시! 아무리 바빠도! 실시간으로 공지해야 한다. 네이버와 인스타그램은 필수! 이것만 잘 지켜도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한 돌발휴무나 조기마감에 대한 손님들의 항의와 불만이 가득한 리뷰를 마주할 일이 사라진다. 어디까지나 경험치이지만 자신 있게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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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바이브 개업하면서 스스로 세운 철칙 하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휴무공지는 재깍재깍이었다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불평, 불만 중 하나는
“제주도 가게들은 왜 이렇게 영업, 휴무일이 들쑥날쑥 해?”인데
막상 내가 제주도에서 자영업을 해보니 그 사정도 조금 이해된다
아무튼 자세히 설명하고, 미리 양해를 구하고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
대부분의 손님은 이해해 주시고 때론 칭찬까지 해주셨다
역시 진심과 진실성은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