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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바이브 Sep 07. 2023

누군가에겐 로망 나에게는 현실 - 제주살이

나는 니가 망할 줄 알았어



제주바이브의 주 고객층은 역시 2030 여성이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예쁜 소품에 진심인 데다 일명 ‘내돈내산(내가 벌어서 내가 구매한다)이 가능한 나이대. 손님들이 꺅꺅 환호성을 내지르며 매장에 들어올 때마다 참으로 반갑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이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상품들이 “어서 오세요~ 저 좀 데려가 주세요~” 속삭이는 공간이 나의 직장인데, 멀리서 보면 동화처럼 아름답고 이상적이며 탐나는 공간임이 틀림없다. 


또래 손님이 오면 나도 모르게 내적 친밀감이 생기고, 눈치껏 한두 마디 건네다 보면 자연스럽게 짧은 대화를 나눌 때가 있다. 오가는 문장 속에 관심사나 현실적인 고민들이 비슷한 경우도 많은데 그 대화의 끝은 항상 ‘남의 떡이 커 보인다’로 끝난다. 그들은 ‘제주도에서 소품샵을 하는 사장’인 나를 매우 부러워한다. 직장인이라면 가슴속에 늘 품고 다니는 사직서를 시원하게 날리고 제주도로 훌쩍 떠나 나처럼 아기자기한 공간에서 내 마음대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는 이거다. 

“돈을 쓰러 온 제주도와 돈을 벌어야만 하는 제주도는 정말 달라요.”


손님들이 날 부러워하는 포인트는 무엇일까. 결국은 그들에게는 제주도가 힐링, 여행, 로망, 휴식, 사랑과 같은 존재였고, 나에게는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나도 돈 좀 있던 백수 시절이나 시간과 공간에 구애를 받지 않던 프리랜서 때에는 제주도가 신나고 즐겁고 아름다운 <행복 그 자체의 섬>이었다. 적게 벌어 적게 쓰는 게 평생 가능했다면 계속 그렇게 지냈을까?젊음은 영원하지 않아 슬프다는 생각까지 흘러간다.


혼자 영업하는 나의 현실에는 정해진 밥시간도 없고, 늘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야 하며, 끝없는 상품 기획과 준비, 패키징, 진열, 판매 등의 미션이 기다리고 있다. 통장이 채워지는 속도보다 각종 세금과 거래처 정산일이 더 빨리 다가오는 듯한 느낌. 퇴근을 해도 청소 포함 사소한 정리부터 매출 고민, 홍보(SNS) 관리, 계절이나 특정 시즌에 맞는 상품 입출고, 재고 파악 등등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다.

항상 많이 벌면 좋겠지만 사실상 고정 월급이 없기 때문에 불과 몇 년 전에는 하지 않았던 생계형 고민들도 추가된다. 내일 당장 폐업을 한다면?퇴직금도 없구나. 역시 나 또한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껍데기만 사장에 불과한 것 같다. 한 번씩 현실 자각의 시간이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 선택의 기로에 선다 해도 제주바이브 사장의 삶을 택할 것이다. 미래에는  이 마음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직장인 또는 자영업자인 나를 두고 선택하라 한다면 지금으로선 후자다. 그동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황에서 더 긍정적으로 발현되는지, 인생의 가치는 어떤 것에 더 비중을 많이 두는지 등등 무수한 생각과 경험을 해본 끝에 현재의 내가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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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 한편에 있었던 나의 작업실>

제주바이브 오픈 후에는 매장 운영에만 집중했지만

사장님이 되기 전 프리랜서 신분이었던 나는

시간대별로 일을 나누어 알차게 살았다


(아침) 재택 알바 (낮) 소품샵 매장 알바, 귤 구매 관리

(밤) 납품용 소품 제작 (종일) 게스트하우스 예약 및 홍보 관리 


매달 통장에 꽂히는 숫자는 회사 다닐 때와 비교가 안 됐지만

낯선 곳으로 건너와 이곳에 맞는 생활양식을 스스로 터득하고

정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 모습이 기특했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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