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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바이브 Sep 29. 2023

제주도에서 뭐하고 먹고살지?

나는 니가 망할 줄 알았어



2017년도 한 해 동안 나는 7번 이상의 제주여행을 했다. 그중 2번은 성산에서 한 달 살기, 협재에서 두 달 살기를 포함한 횟수다. 제주도에 숨겨둔 남자친구가 있다는 의심을 받을 정도로 틈만 나면 항공권을 검색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특히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텝살이를 하며 장기 여행자로 지낸 시간들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제주 입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잠깐 왔다가 훌쩍 떠나는 단기 여행자가 아니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를 실천하는 사람으로 살아 보니 환상의 섬 제주도가 새로운 시선으로 보였다. 나의 제주집과 우리 동네라는 마음으로 생활하고,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고,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마음 편히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기다리며 지냈더니 어느 순간 나에게 정착을 권유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내가 제주도랑 잘 어울린다나 뭐라나ㅎㅎㅎ 칭찬이지만 그 당시에는 와닿지 않던 문장이었다.


2016년 봄 퇴사 이후 부모님 댁에서 지냈다. 엄마의 매니저이자 친구, 보호자, 때론 부모님의 귀여운 ‘큰 아기’. 그렇게 8개월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퇴사 결정은 엄마의 영향도 있었지만 일에 지쳐 쉬고 싶었던 나의 의지도 있었다. 엄마가 점차 안정을 찾아가면서 나도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때가 겨울. 그제야 조금 아쉬운 마음이 생겼다.


유럽을 갈까?아니야

동남아로 호캉스는 어때?아니야 

전국일주를 할까?너무 추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무심코 열어본 페이스북에서 제주 한 달 살기 게시물을 보고 이거다! 했던 것이 2017년 초. 그렇게 흘러 흘러 2018년 제주도 입도까지 딱 1년이 걸렸다. 폭설이 내린 2월, 서울을 뒤로하고 제주로 건너왔다. 걸을 때마다 내 발목보다 더 높이 푹푹 빠지던 눈길을 헤치고 서귀포 성산에 도착했던 날은 잊을 수가 없다. 입도하자마자 무려 3일간 고립되었다.


일단 백수는 신나게 놀았다. 엄마가 ‘백수가 과로사한다’라는 우스개 소리를 할 정도로 제주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돈 걱정은 안 했다.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스텝살이는 대부분 기본 숙식이 제공된다. 쇼핑을 할 백화점도 없고 출퇴근을 안하니 갖춰 입을 옷도 필요 없다. 캔맥주 하나 사들고 나가면 어디든 나들이가 되는 이 환상의 섬은 돈이 많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했다. 소비를 하지 않아도 양껏 즐기고 행복해지는 길이 있는 제주도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물론 숨만 쉬어도 나가는 지출이 매달 있으니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N잡러의 시작. 일단 나는 전 직장 동료들의 급한 불을 꺼주는 외부인력이 되어 꽤나 짭짤한 용돈벌이를 했다. 새벽까지 마시고 떠들고 놀아도 잠깐 쪽잠 자고 일어나 한두 시간 일을 하고 다시 잤다. 이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씻고 옷 갈아입고 대중교통 이용해  출근 안 하는 게 어디야! 시간 약속 잘 지키면 오케이! 재택알바 최고!


그리고 지인이 소개해준 농원 사장님을 도와 귤, 만감류 판매를 돕고, 수익금의 일정 수수료를 받았다. 덕분에 나의 지인들은 맛있는 귤과 한라봉, 레드향 등을 산지 직송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몇 년째 나는 귤 파는 아가씨가 되어 때마다 러브콜을 받고 있다.


또, 게스트하우스 스텝일에 피해가 가지 않는 시간대에는 가까운 선물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마 이때부터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앞으로 하고 싶고,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던 것 같다.


아,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퇴직금을 통장에 그대로 모셔 둔 과거의 나에게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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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면 노지귤이 출하된다

올해도 손 노랗게 될 때까지 귤 까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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