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니가 망할줄 알았어
평생 직장은 없다. 요즘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평생 직장은 없어도 평생 이 일은 할 생각이었다. 자신도 있었고 다시 생각해 보아도 당시 내 적성과 제법 맞았다. 이직을 하더라도 업무는 변함없을 것이라 자신했다.
광고홍보학을 전공한 나는 대학 시절부터 광고보다 홍보가 좋았고, 결정적으로 진로 설정에 영향을 주신 훌륭한 교수님도 만났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내로라 하는 종합홍보대행사의 인턴쉽에 합격했다. 6개월 근무 후 평가를 통해 정직원이 되었다. 2011년 입사 2016년 퇴사. 그렇게 약 5년을 근무했다. 전공자의 흔한 취업 과정이었다.
나의 퇴사는 근무 중 받은 전화 한통에서 시작되었다. 엄마의 입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분명 며칠 전까지 습관처럼 엄마와 카톡을 하고 통화도 했다. 아무런 낌새도 느끼지 못했던 눈치 없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자식들이 걱정 할까봐 아빠까지 쉬쉬하다 결국 크게 터져버렸다.
엄마의 연세에 완경은 자연의 이치였다. 하지만 이로 인한 불안장애, 우울증 등의 정신적 문제가 동반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와 아픔의 강도가 남들보다 커서 몸과 마음이 동시에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보호자의 세심한 관찰과 챙김, 꾸준한 병원 치료가 요구되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내린 가장 시급한 처방이자 진료 결과는 엄마와 늘 함께 하기. 다시 말해 엄마를 혼자 두지 말라는 것이었다.
내가 회사에 퇴사를 통보한 소식을 듣고 동료들과 지인들은 적잖이 놀랐다. 너무나 멀쩡히 근무하던 사람이 퇴사를 서두른다 소문이 퍼지니 사람들마다 이유를 궁금해 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엄마 걱정을 해주었고, 아빠는?동생은?이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 사실 퇴사와 퇴사 이후의 시간 속에서 아빠와 동생에 대한 내 감정을 정리하자면 더 많은 문장이 필요하지만 이미 지난 일 굳이 꺼내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나의 선택이었고, 모두를 위한 최선이었다. 그 당시의 나도 클라이언트 때문에 직장생활의 가장 큰 위기를 겪고 있었고, 스트레스와 고민이 정말 많았다. 결과적으로 엄마의 보호자이자 그림자로 살았던 약 6개월의 시간들이 내 인생에 큰 변환점의 계기가 되어 주었다.
괜찮아 다 괜찮아. 그리고 이 딸은 2023년 현재의 엄마가 많이 나아졌고 몸도 마음도 편안해져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자연의 이치인 노화를 잘 받아들이고 극복해 가는 과정도 우리 삶의 필수 코스가 아닐까. 한 개인과 그 가족이 함께 겪고 이겨내야 할 이벤트 중 하나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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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리엄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