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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Mar 29. 2017

‘세월호’와 ‘일베’의 시대

너희가 10대를 아느냐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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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세월호’ 리본 몇 뭉치를 받았다. 동료 활동가와 지역 학생들과 함께 세월호 사건 진실 규명과 실종자 수습 등을 염원하며 일일이 손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간절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리본을 만들었을 그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마음이 울컥했다.     


지역 학교 모두 방문해 노란 리본을 돌리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세월호에 대한 우리 사회 일각의 ‘삐딱한’ 시선이 있어 선뜻 나서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작년 4월경엔가 교사들의 세월호 계기수업을 금지시킨 교육 당국의 행태가 겹쳐 떠올랐다. 씁쓸했다.     


요며칠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그 노란 리본을 나눠주고 있다. 작년 이즈음 나눠 준 리본을 책가방에 고이 달고 다니는 학생들이 제법 있었다. 그런데도 대다수 학생들이 리본을 챙겼다. 형제자매와 부모님 가슴에 달아 주겠다며 두세 개씩 챙긴 학생들이 제법 되었다. 일가친척들에게 돌리겠다며 한 움큼 챙겨간 학생도 있었다.   


2     


‘노란 리본’은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인식 리본(Awareness Ribbon)’이다.[아래 노란 리본의 기원에 관한 내용은 인터넷 <Daum 백과사전>을 참조해 정리했다.] 특정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인식 개선이나 질병 등에 대한 관심 촉구를 위해 상징적으로 사용되는 리본이 인식 리본이다. 에이즈를 상징하는 빨간 리본, 우울증을 상징하는 녹색 리본, 유방암을 상징하는 분홍 리본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1960년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어느 전과자의 이야기가 실렸다. 1971년 저널리스트 피트 해밀(Pete Hamill)이 용서를 구하는 전과자 남편과, 그를 기다린 아내가 사람들과 함께 나무에 하얀 손수건으로 리본을 매단 이야기를 각색해 <뉴욕포스트>에 기고했다고 한다.     


리본 색깔을 노란색으로 바꾸고, ‘Going Home’이라는 제목을 붙인 피트 해밀 버전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면서 노란 리본은 ‘기다림’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1973년 토니 올란도와 다운(Tony Orlando & Dawn)이 불러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오래된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세요(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라는 노래도 그 전과자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한다.  

   

3     


재작년 9월 초, 일베 회원을 중심으로 하는 몇몇 극우 성향의 젊은이들이 광화문광장에서 ‘폭식투쟁’을 벌였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진실 규명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이자 이에 반대하는 일베 회원들이 그 근처에서 튀김통닭과 피자를 먹는 상식 이하의 행동을 저지르며 유가족을 조롱했다. 납득하기 힘들 그들의 행동에 모욕감과 분노를 느낀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날 한 50대 남성은 광장에 모여든 이들에게 피자 100판을 돌렸다. 그는 “(폭식투쟁을 한다는) 일베 게시판을 보고 피자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이 먹고 행복하게 지내고 계속 나라를 지켜달라”라며 “일베가 대한민국의 중심”이라고 일베 회원들을 치켜세웠다.      


그날의 폭식투쟁은 일베가 ‘밀실’에서 ‘광장’으로 처음 나온 일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드넓은 광장에서 웃음을 띠며 통닭을 뜯고 피자를 나누어 먹던 일베 회원들의 경악스러운 모습은 진작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희생자들을 ‘어묵’에 빗댔다.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기조차 민망한, 상식인의 시선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혐오 범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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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천 일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남해 깊은 바다에서 흐느끼던 세월호가 우리 눈앞으로 다가왔다. 찢기고 할퀴어진 세월호의 처참한 얼굴을 보며 폭식투쟁을 벌이던 3년 전 그 젊은이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여전히 “일베가 대한민국의 중심”이라는 예의 50대의 말에 박수를 보내면서 세월호를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학생들에게 노란 리본을 나눠주며 폭식투쟁 이야기를 꺼냈다. 모두 깜짝 놀라는 듯했다.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지’ 하는 학생들의 표정을 보며 말했다.     


“공동체를 유지하고 끌어가는 중요한 잣대 중 하나가 ‘상식’이라고 생각해. 그들의 행동이 상식을 벗어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겠지. 그런데 그들은 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그렇게 상식을 벗어난 사람들이 우리 사회 한켠에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몇몇 학생들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그들의 행태를 떠올리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나는 노란 리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것에는 원래의 ‘기다림’이나 감정적인 ‘추모’뿐 아니라 냉철한 ‘기억’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 그러므로 비극적인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백주에 벌인 일베 회원들의 폭식투쟁까지도 우리의 기억 창고에 쌓아두어야겠다고 했다.


여전히 일베 게시판에는 “세월호 인양에 왜 세금을 뜯겨야 하냐”, “인양했으니 광화문 방 빼라” 등등 세월호 인양과 유가족들을 폄훼하고 조롱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문득 궁금해진다. 100년 뒤 역사가는 ‘세월호’와 ‘일베’를 어떻게 기록할까. 인양된 세월호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에 따라 그 기록의 색깔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세월호’와 ‘일베’가 공존하는 아픈 시대를 지나고 있다.


* 본문의 ‘폭식투쟁’ 사진은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31023&CMPT_CD=P0001)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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