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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Nov 25. 2020

누구나 쉽게 가는 출장 시스템을 꿈꾸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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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학교 밖으로 발길을 나서거나 눈길을 주는 일은 자신을 객관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학교교육을 가능하거나 불가능하게 만드는 토대, 요인, 배경은 학교 밖을 둘러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우리는 여기서 굳이 학교가 교육의 자장권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학교 밖 현실을 이해하는 데 유효한 수단이 교사 공동체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각종 교과 모임, 교사단체, 교육(시민)운동단체, 교원노동조합의 회원이나 구성원, 조합원으로 활동하는 일이 모두 그에 해당한다. 이들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교사들은 학교교육을 둘러싼 제 주체들 사이의 역학 관계나 실제 작동하는 방식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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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에 서지 않고도 학교 안팎의 현실을 깊이 있게 살피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전문적 학습 공동체’가 있다. 흔히 줄여서 ‘전학공’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최근 수년간 전문적 학습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는데, 교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공부하는 일이 유행처럼 퍼진 현상은 나쁘지 않다.


문제는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전문적 학습 공동체 활동의 질적 수준이 원래의 운영 취지에 걸맞을 정도로 일정하게 담보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전문적 학습 공동체가 학교 내 제2, 제3의 친목 모임처럼 운영되는 경우가 없는가. ‘좋은 게 좋은 거지’가 지배하는 교무실 분위기, 교직 특유의 학교급 간, 교과 간 칸막이 문화 들로 인해 전문적 학습 공동체 활동이 질적 제약을 받는 측면도 있다. 활동 내용, 범위, 양상, 태도 등이 ‘학습’이라는 말에 이끌려 지나치게 협소하거나 소극적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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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보고서에서는 전문적 학습 공동체라는 말 대신 ‘교사 연구 공동체’라는 표현을 썼다. ‘학습’과 ‘연구’의 차이에 대한 연구자들의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나 또한 수년 전부터 비슷한 취지의 이야기를 해 오고 있어서 크게 공감이 갔다. 참고로, 2년 전 브런치 사이트에 올린 글 <나는 자발적인 교사 연구 결사체가 좋다>의 일부를 인용한다.(https://brunch.co.kr/@jek1015/300)


학교학회는 ‘교사 집단 연구 모임’이다. 바로 앞 문단 첫 문장에서는 ‘교사 결사체’라고도 했다. 굳이 이런 말을 쓰는 이유는 최근 몇 년 사이 온나라 학교들에서 우후죽순처럼 번지고 있는 ‘전문적 학습 공동체’라는 말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내 눈에는 ‘전문적’과 ‘학습’의 결합이 엉뚱해 보이고, ‘공동체’라는 아름다운 말이 전문적 학습 공동체를 강조하는 교육 당국의 삿된 욕망을 분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전문적 학습 공동체의 질적 전화가, 공동체의 주요 활동이 ‘학습’보다 ‘연구’에 초점이 맞춰질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학습하는 사람과 연구하는 사람 사이에는 (학습과 연구의) 대상 선정, 방법, 과정, 결과 처리 차원들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학습만으로 학교 안팎의 교육 현실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나는 교사들의 시선이 주로 학교 안에 머무르는 현재와 같은 전문적 학습 공동체 활동의 기조가 학교 밖 범위로까지 확대되었으면 좋겠다. 교사 연구 모임이나 교사 연구 공동체로의 질적 비약을 바탕으로 구성원, 활동 내용이나 범위 등의 측면에서 학교 간, 지역 간 교류와 소통이 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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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올려 본 대안은 이렇다. 1 교사 1 연구 집단 의무 가입하기, 연구 집단 간 네트워크화.


이때의 교사 연구 집단은 대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학회와 유사하지만, 활동 영역이나 구성원의 근간이 초중등학교의 공교육 현장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대학 중심의 학회와 다르다. 한편 교사 연구 집단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참교육실천대회 운영 시스템의 한 근간인 교과 모임이나 주제 분과와 그 성격이 비슷한데, 교육당국(교육부, 교육청)의 지원(관리) 체제 아래 있다는 점에서 전교조의 자율적인 교과 모임이나 주제 분과와도 구별된다.


현재 전문적 학습 공동체 활동은 순수하게(?) 교사 자율 결정에 따라 이루어진다. 나는 이를 교사 연구 집단 의무 가입 체제로 전환했으면 한다. 그렇게 하려면 학교 내에 교사 연구 집단이 최소 1개 이상 만들어져 운영되어야 한다. 교사 수가 극소규모 학교라면 인근 학교 연구 집단과 연계해 활동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연구 집단 간 네트워크화는 현재 많은 교육청에서 도입해 운용하고 있는 ‘배움의 날’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구체화할 수 있다. 학교 소재 지역이나 광역 단위 내의 교사 연구 집단이 참여하는 집담회, 연구 발표 대회 등을 통해 시야를 확대하고 심화하는 계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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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연구 집단 활동이 실질적이고 전면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사들이 가용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교사가 이런저런 학교 밖 모임에 참석하려면 해당 요일의 수업 교체나 학급 관리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출장을 신청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몇 번 어려움을 겪고 나면 학교 밖으로 나서는 일을 지레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교육청이나 교육지원청에서 교사 업무를 지원하는 보조인력 풀 시스템을 수립해 운용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임용시험 합격 후 미임용된 예비교사들, 교대나 사대 교육실습 학년 학생들, 퇴직 교사들을 활용하면 될 것이다. 미임용 예비교사들이나 교․사대 학생들에게는 교사들의 주요 업무(수업, 학생지도)를 미리 경험시킴으로써 교육자로서의 역량과 자질을 기르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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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출장 시스템은 주로 학교 (행정) 업무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학교폭력 연수를 가면 학폭 처리 절차나 법적 문제 들을 살피는 일이, 학생 지도와 교육 문제를 성찰하는 일을 압도한다. 성적 처리와 관련한 출장 자리에서 평가나 성적의 교육적 의미를 살피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학생, 학부모의 민원 문제를 예방하고 적절하게 조치하는 방법을 숙지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나는 교사들이 출장이나 연수에 가기를 꺼려하는 까닭이, 예컨대 어렵게 수업을 바꾸면서 동료에게 아쉬운 말을 해야 하는 데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사들이 그들 본연의 일(수업, 생활지도)을 함께 실천하고 고민하면서 깊이와 넓이를 더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행정 업무 중심의 학교 운영 풍토 때문이 아닐까. 학교와 학교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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