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지난봄 삼 년 전 심은 살구나무에 열매 두 개가 맺힌 것을 보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시골 갈 때마다 밭으로 쪼르르 달려가 녀석들이 날이 다르게 커 가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크기가 아기 주먹만 해지는 걸 보고 몇 번이나 환호작약하였다.
매실 수십 그루를 사면서 주인에게 ‘보너스’로 받은 개량종 살구나무였다. 주렁주렁 커다랗게 매달리는 실과류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내 눈에는 돈 주고 산 매실나무나 감나무보다 이 살구나무가 더 예쁘게 보이는 듯했다. 벌써 아내는 아기 주먹만한 살구가 주렁주렁 매달린 몇 년 후의 살구 가지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가 따야 한대요. 아주 커다란 자루나 봉지에. 그래야 나중에 열매가 많이 열린대요.”
나는 실소가 나오려는 것을 참고 누가 그러더냐고 물었다. 아내 표정이 너무나 진지했다.
“건넛집 ○○ 어머니가 엄마에게 그랬대요.”
몇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시골 고향 집이 완전히 비게 되자 광주에 사시는 장인 장모께서 텃밭을 가꾸신다며 시골집을 오가고 계신다. 그사이 장모님과, 나의 동네 후배인 ○○의 어머니는 서로 절친한 말동무가 되었다. 올해 처음 열린 살구 이야기가 나오자 동네 토박이이자 농삿일에 관한 한 모르는 것 빼고 모든 것을 다 아는 ○○ 어머니가 근엄하게 훈수를 둔 저간의 소종래였다.
“적당히 해야지 말이야. 장모님이나 당신이나 기독교인이라면서 그런 미신을 믿어?”
나는 적당히 조롱기를 섞어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가 지지 않고 대꾸했다.
“어떻게든 많이 열리면 좋잖아요.”
2
그 다다음날인 토요일이었다. 아내가 일방적으로 정한, 살구 따기로 한 날이 밝았다. 나는 아침을 먹고 집 뒤 언덕바지에서 집 쪽으로 야금야금 쳐들어 오는 왕죽과 조릿대를 서너 시간 동안 쳐 냈다. 일을 끝내고 나자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점심을 먹고 곧장 방바닥에 뻗어 버렸다. 나는 잠속에 빠져들면서 조금 있다가 살구 따러 오라는 아내 목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다.
한참 뒤 전화기 울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받아 보니 아내였다. 부추를 뜯어야 하니 조그만 칼 하나를 들고 밭으로 오라고 했다. 늘어지게 잠을 자서인지 몸이 조금 가붓했다. 감나무밭 한쪽에 만들어 놓은 부추밭으로 가 아내와 함께 부추를 뜯고 나왔다. 아내가 한쪽 감나무 아래에 세워 둔 하얀색의 커다란 마대 자루를 치켜들고 보란 듯이 내 얼굴 쪽으로 들이밀었다. 짐짓 뭐냐고 물었다.
“살구예요. 당신이 안 와서 아빠가 땄어요.”
아내가 마대 속을 보여 주며 싱글벙글 웃었다. 샛노랗게 잘 익은 살구 두 개가 커다란 마대 속에 놓여 있었다. ○○ 어머니가 알려 준 속신(俗信)이 장모님과 아내를 거쳐 결국 평생을 예수님밖에 모르고 사시던 장로 출신 장인 어른에게 강력하게 전해진 것이었다.
3
그예 나는 픽 웃고 말았지만 세 사람의 진지함 속에 담긴 간절한 소망들이 느껴져 살구가 든 마대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셋이 나무 앞에 오종종 모여 커다란 마대 자루에 살구 두 개를 따 담으면서 연출했을 엄숙한 분위기가 단지 속신에 대한 믿음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실과는 사람이 땀 흘려 가며 애써 가꾼 보람의 결정체일 테다. 옛사람들은 남자든 여자든 누군가 처음으로 그것을 딸 때는 일정한 격식을 갖춰 정성을 들이는 것이 온당하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기실 남자가 큰 자루에 첫 실과를 따 담으면 계속 풍작이 들 것이라는 믿음 한편에는 남자가 나무 가꾸기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규율이 담겨 있는지 모른다. 과거 농경 사회에서 외부 노동의 핵심 주체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기 때문이다.
4
그날 저녁 우리 네 사람은 잎꾼개미가 나뭇잎을 갉아 대듯 살구 반쪽을 조심스레 조금씩 베어 먹으며 마음속으로 미래의 풍작을 경건하게 기원하였다. 나는 내 몫으로 전해진 살구 반쪽을 입에 넣어 천천히 저작하면서 ○○ 어머니 발 속신에 담긴 깊은 뜻(?)을 새기지 않고 미신이니 뭐니 하며 폄하하기에 바빴던 나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