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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문 Aug 12. 2020

명의 명약

득심응수

일어서서 나가려다 다리가 풀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뒤에 있던 아내가 말했다. "당신 보약 한재 먹어야겠네" 최근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던 차라, 땡큐지. 땡큐.


"당신이 먹자면 먹지 머. 내가 별 수 있나" 허튼소리를 하면서 좋아라 웃었다.


보약이 필요할 때면 찾는 증평에 있는 평화한약방. 3대 한약방의 그 한약방. 한의원이 아니라 한약방. 한의원과 한약방이라. 흠흠흠.


여기서 잠깐. 명리학은 아직도 불법체류자 신세지만 한의학은 시민권을 얻어 학문으로써 이제는 자리를 잡았더랬지. 지금은 미국에서도 인정받는 데지.


그러나 진맥은 학문으로써 정량화하기 어려운 어떤 감각의 영역. 하여 한의학의 학과목으로 인정을 하기 어려웠지. 그래도 엄연히 진맥으로 면면히 이어노는 무림의 고수들이 있던 터라 무시할 수도 없고.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기존 진맥 하는 무림의 고수들을 한약방이라는 이름으로 영업허가를 내주었더랬지.


장자에 나오는 수레바퀴 장인의 '득심응수'의 영역이랄까. 학문이나 과학으로는 이르기 어려운 어떤 경지가 있다는 것. 경험으로만 얻을 수 있는 어떤 레베루. 외과의사도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사람 둘셋은 죽이고서야 진정한 칼잡이의 명의가 된다고 했다던가.


아무튼, 한약방을 가게 되었는데 아내는 당연히 아들 한약도 지어야 한다고 했다. 그럼 그럼 물론 물론이지. 아들은 다음 달이면 논산훈련소에 입대하니 당연히 가야지. 암암. 그렇게 이른 아침 아내가 운전하여 셋이서 한약방을 찾았다.


올해 칠순은 넘은 듯한 원장이 꼿이 서서 먼저 아들을 진맥 한다. 이것저것 몇 가지 물으면서 말한다. "자네 체질에는 술 담배는 많이 안 좋아. 하지 마. 그리고 일찍 자도록 해. 내, 잘 지어 줄 테니 잘 먹도록 해. 효과가 좋을 거야."


다음으로 나를 진맥을 한다. "음. 아버지도 술 담배 하면 안 되겠네. 음. 아버지도 일찍 자야 하는 체질이네. 음... 아들하고 체질에 똑. 같. 네. ㅎㅎㅎ"


마지막 말이 하루 종일 나를 기분을 좋게 한다. 벌써 보약 먹은 듯 힘이 난다. 그 참. 명의일세. 명의야 명의. 벌써 약효가 나잖아 ㅎㅎㅎ


<명의 명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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