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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lluda Jan 14. 2020

넘어지는 이유

그래서 자꾸 넘어지고 싶어 진다

밴쿠버에는 우리 집에서 한 시간 이내의 거리에 스키를 탈 수 있는 곳이 세 군데 있다

그라우스 마운틴(Grouse Mountain)
싸이프레스(Sypress Mountain)
그리고 시모어 마운틴(Seymour Mountain)

작년에는 시모어 스키장 패스를 끊어 매주 토요일마다 딸아이와 스키를 탔다
올 해는 딸아이 스키캠프가 그라우스 마운틴에서 있어서, 아이는 그라우스 시즌 패스를 하나 더 끊고 나는 시모어 시즌 패스만 끊었다
혼자서 내 스키와 아이 스키를 들고 다니다 보면 스키 타기도 전에 지치기 마련인데 시모어 스키장은 주차장에서 스키를 신고 스키를 타고 내려갈 수 있어서, 주차하고 리프트나 곤돌라를 타고 스키를 타러 올라가는 다른 스키장보다 편했다
처음에는 아이를 위해 시작한 스키였는데 지금은 나를 위해 스키를 타게 되었다

캐나다의 자연설은 스키 타다 자꾸 넘어지고 싶어 지게 한다
넘어져서 아픈 느낌이 아니라 넘어져서 안기는 느낌이다
눈처럼 포근하다는 말.
스키를 타고 넘어지면서 알게 되었다
자연에게 안기는 기분.
한참을 그렇게 안겼다가 일어서면 내가 안겼던 자국이 눈 위에 남아있다
내 모습 그대로..
어떤 날은 가벼워 부는 바람에도 지워지지만
어떤 날은 갈 때까지도 그 모습 그대로 남아 파인 자국에 아쉬움을 한가득 담아두고 갈 때도 있다
자연은 안아 줄 때 자국을 남긴다
가끔은 온전히 기쁨으로.
가끔은 위로로.
그래서 나는 자꾸 넘어지고 싶어 진다

스키 타면서 더워진 몸을 식힐 만큼의 적당한 바람을 맞으며 리프트에 앉아 있으면 내 몸에 묻어있던 눈가루가 날려 수 백 년은 족히 넘었을 나무 위에 사뿐히 올라앉는다
나의 자취가 과거의 시간과 조우하는 시간이다
리프트를 타고 산을 오르며
눈 덮인 세상에 가려진 세상의 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하얀 눈으로 덮인 세상은 눈으로 덮이기 전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가려진 세상은 그래서 신비롭다

하루가 넘어가는 시간.
온통 하얀 눈 빛을 가르며 나도 함께 붉게 물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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