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는 세 여자가 있었어. 첫 번째 여자는 내가 철들기 전 27년을 같이 살았던 친정엄마. 두 번째 여자는 내가 철들어서 36년을 같이 산 시어머니. 그리고 세 번 째 여자는 나를 누구의 딸에서 누구의 엄마로 바꾸어 준 딸들. 내겐 딸이 둘이 있으니 네 명의 여자라고 하는 것이 맞겠네. 한 여자가 웃을 때 다른 한 여자는 울기도 했고, 그 여자의 울음이 나를 슬프게도 했어. 나머지 두 여자는 내가 주저앉고 싶을 때 내가 일어나야 하는 이유였고 내가 쓰러지지 않게 바쳐주는 버팀목이었지.
돌아가신 외할머니께 쓰는 엄마의 편지
-외할머니께 편지 써 본 적이 있냐고? 생각해보니 엄만 외할머니께편지 써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날 낳아 준 엄마에게 고맙다는 편지 한 장 못 써드리고 내 엄마를 떠나보냈어. 외할머니 이야기는 하늘에 계신 네 외할머니께 엄마가 부치는 편지야.
엄마, 엄마 외손녀가 엄마 이야기를 해달라네. 딸이 나에게 '엄마의 엄마'이야기를 묻는데 '친정엄마'라는 말을 허공에 띄워놓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어. 내 딸이 나중에 내 생각하면서 지금 내 마음 같을까 봐 들키지 않으려고 꼭꼭 마음 접어 숨기면서.
친정엄마라는 말. 왜 그런지 입도 떼기 전에 눈물부터 나. 엄마가 시집올 땐 거의 집 한 채를 실어올 만큼 혼수를 해서 왔는데 내 딸 시집 줄 때는 아무것도 못 해줬다고 늘 미안해하던 우리 엄마. 나만 보면 난 괜찮으니까 네 시어머니께 잘하라고 했던 우리 엄마. 엄마, 나 그 말을 진짜 믿었어. 엄만 정말 괜찮은 줄 알았어.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가 내 딸들에게 엄마랑 똑같은 말을 하고 있더라고.
"시집가면 시어머니에게 잘해야 한다. 엄만 괜찮아."
엄마, 나 이제 이 말 안 할 거야. 내 딸도 나처럼 제 딸 시집보내고 똑같이 말할까 봐. 엄마도 알잖아. 괜찮지 않다는 거. 가끔 내 딸이 눈물 나게 보고 싶을 때가 있다는 거.
그래서 가끔 내 딸이 기다려진다는 거. 엄마, 미안해. 그때 내가 엄마 마음 다 믿었던 거.
미안하다는 말 하니까 생각난다.
살면서 엄마에게 미안했던 일이 한 둘이 아니지만 그래도 내 평생 잊히지 않는 두 가지가 있어. 엄마 그때 기억나? 엄마가 기억 못 했으면 좋겠지만 총기 좋은 우리 엄마가 기억 못 할 리 없겠지.
엄마하고 우리 시어머니하고 10년 칭아가 나잖아. 우리 시어머니가 엄마보다 열 살 아래였는데 엄마하고 우리 시어머니하고 거의 같은 시기에 아프셨어. 중풍으로. 쓰러지신 시어머니 돌보느라 엄마 아프다는 말 듣고도 난 가 보질 못했어. 엄마, 내가 왜 큰올케에게 잘하는지 알아?
엄마에게 잘하라고.
올케는 며느리니까 남의눈이 무서워서라도 엄마에게 자주 가잖아. 그래서 큰올케가 엄마에게 간다고 하면,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 주고, 뭐라도 주고 그랬던 거 같아. 울 엄마 한번 더 쳐다봐 주고 한 번이라도 더 만져주고 그러라고. 그러다가 올케에게 엄마가 더 아프시다는 말을 들었어. 아무래도 엄마 집에 갔다와야할 것 같더라고. 혼자된 아들이 모신다고 모시지만 그래도 아들이 해 주기에 편치 않은 게 있잖아. 그중의 하나가 목욕이고. 엄마 집에 간 그날. 하루 저녁을 엄마와 함께 지내면서 엄마를 씻겨드리는데 엄마 몸이 거뭇거뭇한 거야. 그땐 내가 안경을 안 쓸 때라 눈이 잘 안 보여서 엄마 몸에 검버섯이 돋은 줄 알았어. 그런데 씻기면서 보니까 아니더라고. 검버섯이 아니었어. 그 거뭇거뭇한 게 다 없어지는데,
'아, '때'구나.'
말을 못 하겠더라고. 너무나 속이 상하고 미안해서. 그렇게 엄마 몸을 다 씻겨드리고 내가 엄마에게 그랬어.
"엄마, 내가 이렇게 깨끗하게 씻겨드린 김에 엄마 그냥 돌아가셔."
엄마에게 이러고 돌아왔어. 내가. 그렇게 엄마를 혼자 두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 길. 내 평생 다시는 걷고 싶지 않은 길이야. 엄마, 미안해.
내가 그때 했던 말 맘에 두지 마.
엄마에게 말 많은 딸도 아니었는데 고작 몇 마디 엄마에게 한다는 말이 엄마 돌아가시라는 말이었다니.
엄마 정말 미안해.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 달 정도 우리 집에 있다 가신 거야.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난 다음, 엄마 돌아가시기 두 해 전이었어. 옛날에 큰아버지 내외가 서울로 이사 가면서 다 잡힌 산들 다시 사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산소들 한데 모아 이장하느라 둘째가 바쁘다고 해서 엄마를 우리 집에 모셨잖아. 그때, 엄마 집에만 누워 계시면 답답하다고, 성 서방이 엄마 휠체어에 모시고 동네 여기저기 다녔잖아. 그때 성 서방에게 참 고맙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