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등불이 되고 싶다.
"앞으로 10년 안에 실명할 수도 있어요"
만약 이런 말을 듣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아마도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감정을 겪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불안을 극도로 싫어하고 회피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불확실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실명이라는 상황은 어떤 말을 붙이더라도 눈이 보이지 않는 경험은 갖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직면해야 했다. 많은 중도시각장애인이 마찬가지지만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하다가 결국 받아들이고 다른 방안을 찾게 된다.
나도 먼 길을 돌아 받아들이는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정말 힘든 일이었지만 시각장애인 동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정보를 얻고 여러 가지 대처를 하기 위한 삶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만날수록 마음 깊은 곳에서는 거부감이 일어나기도 했다.
특히 나의 같은 병명으로 시력을 잃을 사람을 만날까 봐 입에서 그 병명이 언급되지 않기를 바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내가 가진 질환으로 인해 실명한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회사를 창업했다.
원래 하던 소프트웨어 개발이 조금 버거웠기 때문이다. 요새 GPT가 나오고 조금 수월해지긴 했지만 창업을 결심하게 된 시기에는 내 눈상태로는 버그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어쨌든 개발일이 아닌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연결하는 서비스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회사를 창업한 후 동료 장애인을 더 많이 자주 교류하게 되었다. 현재 장애인은 265만 명 정도 추산되었고 시각장애인 인구도 26만 명 정도 되었다. 그러나 만나는 장애인 친구들은 많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대부분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안마사가 가장 많았고 아나운서, 향을 만드는 조향사도 있었다. 안마사는 법적으로 시각장애인만 가능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기업에 '헬스키퍼'라는 이름으로 고용되어 일하고 있었다. 어떤 20대 여성분은 팔목에 매우 많은 테이핑이 있었다.
체구도 작고 힘이 없어 보였지만 사력을 다해 안마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각장애인은 다른 장애에 비해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범위가 한정적이었다.
디지털 사회가 되면서 대부분 일들은 컴퓨터로 처리하는데 시각장애인에게는 모니터를 보고 일하는 직업이 간단하지 않다.
그래서 몸을 사용하는 안마일을 많이 하지만 대부분은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는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더 많은 직업을 찾고 싶었다.
그중 눈에 하나 들어온 것이 바로 '작가'였다. 누군가가 말하는 것이 글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었다. 글을 쓰는 것은 많은 노동 중에서 눈의 사용이 절대적이지 않았다.
물론 눈이 보이면 원고를 빠르게 읽고 대응할 수 있지만, 빠르게 쓴다고 해서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시각장애인에게는 귀와 입이 있기 때문에 말로 내뱉는 것을 귀로 듣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다시 정리하여 손가락을 이용해 타이핑할 수 있다. 혹시 타이핑이 어렵다면 머릿속으로 정리한 글을 말로 내뱉으면 AI가 알아서 문장으로 정리해주기도 한다.
오히려 시각적인 차단은 사고의 유연성과 창의성을 돕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시각정보에 지배당해 고정관념이 생길 수도 있었다.
나는 저시력이면서 극도의 색각 이상을 겪고 있다. 어떤 회사의 로고를 6년 동안 다크 브라운 색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짙은 보라색이었다.
정말 신기한 것은 그 색상이 짙은 보라색이라고 아는 순간 그 로고가 보라색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시각적 관점이 이미 세팅된 감각과 동기화되고 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난 후 시각장애인으로 겪는 이야기 그리고 접근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발행하였다.
앞으로 눈이 나쁜 사람이 일하는 방법을 주제별로 작성하고 이를 브런치북으로 엮는 작업도 해보고 있다.
이는 갑작스럽게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이나 진행성 퇴행 질환을 겪는 사람들, 혹은 어릴 때 시력저하를 겪는 아이들에게 교본 같은 책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또 다른 직업을 찾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 작업을 통해 누군가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프레임워크를 만들고 싶다.
사실 누구나 눈이 나빠질 수 있다. 나는 그것이 조금 일찍 왔을 뿐 앞서가는 사람으로서 작가라는 도구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등불을 선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