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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해야 한다.

by 최우주

눈이 나쁜 사람은 어떻게 일할까?

“눈이 나쁘면 안경을 쓰면 되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안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일할까?


이 문장은 나를 20년 동안 괴롭히기도 하고 독려하기도 했다.

특히 시력이 서서히 사라지는 경험은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어떻게 일하고 살아갈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는 20여 년간의 시행착오와 성취, 그리고 어쩌면 나와 같은 상황에 있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가이드 역할을 해주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록 우리는 당장 소멸하는 세포를 막을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응원하고 있고, 세상의 누군가는 그 기능을 대체하기 위한

무수한 발명품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일해야 한다."


많은 이야기를 풀어가기 전에 우선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아픔과 고통의 정도에 대해 탐구하고 싶었다.

결국 한 사람이 직면하게 된 고통은 당사자 외에는 이해하기 어렵다.


커다란 인명 피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가정했을 때, 당사자와 유가족들은 심한 고통 속에서 살게 되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어떻게 보면 잔인하게도 누군가는 평범하게 출근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한다. 유가족들은 많은 관심과 빠른 사건 수습을 바랄 수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더 가슴이 아픈 것은 이러한 사고가 일어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잊혀 가고, 남아 있는 가족들만의 슬픔으로 남겨지게 된다는 것이다.

왜 이토록 고통은 개인적인 것일까?

그리고 정말 이 고통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나는 시각장애를 얻고 난 후 몇 해 동안은 주변 사람들이 나의 상황을 이해해 주길 바랐다.

실제로도 내가 현재 사물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무슨 색으로 보이는지 자세하게 설명해 보았다.

대부분은 이해하지만, 당사자가 아니기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선에서 그친다.

혹은 동정의 말로 “의학이 많이 발달했으니 곧 시각장애도 극복될 거야.”

라는 식의 위로를 던지기도 한다. 그 위로는 고맙지만, 위로가 크게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현재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해답은 정말 간단했다.

그냥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눈이 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애초에 불가역적인 상황이라면 그것과 당당하게 직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수용한다”, “받아들인다”라는 언어와는 다른 차원이다. 수동적인 대처가 아닌, 현실을 인정하고서 그 안에서

최선의 방법을 능동적으로 찾는 길이었다.

나는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흔히 RP라고 불리는 그 질환은 망막에 색소가 침착되어 손상을 주고, 결국 시야 협착 등을 유발하여 실명에 이르게 하는 질병이다. 이 진단을 받기 전 MBC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이동우 씨를 응원하는 내용의 방송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방송을 시청할 때만 해도 갑자기 시각장애를 얻은 이동우 씨에 대해 안타까운 감정을 가졌었다.

주변 동료들이 함께 응원하고 동행하는 모습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방송이었다. 그러나 이동우 씨의 눈과 나의 눈은 다르지 않았다.


첫 진단은 2008년 여름이었다. 웹디자인과 프로그래밍을 배워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였고,

정말로 엄청난 은혜로 서울에 있는 병역특례 지정업체에서 근무하면서 3년간 군 복무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8년 봄에 기초군사훈련을 받게 되었고, 그 훈련 과정 안에 야간 사격이 포함되어 있었다.


동료들은 과녁에 제대로 맞추어 사격을 하였지만, 나는 표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주간 사격에서도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남의 과녁에 맞히기도 하였다. 조교들은 나에게 안경을 바꿔볼 것을 권유했고, 정확한 시력 측정을 위해 큰 안과를 방문하였다. 이리저리 시야 검사를 하더니 망막에 문제가 있을 것 같다며 동공이 확대되는 산동제를 눈에 주입하고 진료를 받을 것을 권유하였다.


“혹시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중에 시각장애인이나 시력이 현저히 떨어진 분이 있나요?”


나는 대수롭지 않게 아버지와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할머니를 언급하였다.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인터넷에 ‘망막색소변성증’이라고 검색해 보세요.

현재는 치료 방법이 전혀 없지만 앞으로 의학이 발전하면 좋은 소식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대략적인 질병의 경과에 대해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정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따라오는 물음은


“왜, 하필 나야?”, “내 잘못이 아니잖아.”


다양한 이유에서 불행이 닥칠 수 있다. 우연치 않은 교통사고, 테러, 질병 등

내가 잘못해서 얻은 것이라면 백번이라도 나를 탓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분명했다.


그날 바로 집에 돌아가지 않고,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인 송도라는 곳에 갔다. 그리고 아무 곳에 내려서 그냥 하염없이 걷기만 하였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눈물만 계속 나서,

모르는 곳을 향해 걷고 또 걸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첫 진단 후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완전히 실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서히 진행되는 상황에 눈에 온갖 증상이 동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인식과 자기 성찰을 잊지 않도록 노력했다. 또한 신앙을 가지며, 나를 만드신 분을 원망하기보다

그 이유를 찾고자 골몰했다.


:이 기록은 그에 대한 대답이다."


이유를 발견하고 방법을 찾고 미래를 설계하는 구성을 선택했다. 남들에게 불행하다는 시선을 받으며 너무나 개인적인 고통을 겪고 사회에 던져졌지만, 그래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도움을 주는 기술들,

그래서 다시 일어나 일해야 하고 수많은 기술과 사회서비스 개선, 그리고 유전자 치료를 통해

그래도 괜찮은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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