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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 Apr 19. 2023

나는 수영을 한다.

배려와 존중, 그리고 동지애

2019년 초, 딱 한 달만 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새벽 수영, 어느덧 한 달의 반이 지나갔고, 한 달이 두 달이 되었고, 수영장을 옮겨 저녁 시간으로 그 이후 6개월, 코로나 시국 2년 정도 쉬었다가 2022년 5월, 또다시 수영장을 옮겨 6개월, 그리고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2019년에 처음 발차기를 배웠던 곳으로 돌아와서 다시 새벽 수영을 다니고 있다.


이력으로만 본다면 웬만큼 수영 좀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여전히 헤매는 중이다. 수영 보조도구인 '킥판'을 완전히 떼지 못한 상태. 그럼에도, 주 3회 수영 가는 날 아침이면 ‘아, 수영 가야지!’하며 눈이 번쩍 떠진다. 새벽 기도를 가는 것도 아니고, 새벽 수영을 다니면서 이렇게 성실할 일인가 싶을 정도.


본래 물을 무서워했고 수영복 입은 스스로의 모습이 창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외로 물에 잘 적응하였고, 몸매가 드러나건 말건 그런 것쯤은 실내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우는 사람 처지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상에서 하는 ‘걷기’를 포함한 그 어떤 운동보다 수영이 훨씬 재미있다고 느껴졌고, 비행기 창문 너머 포근포근한 구름 속을 유영한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물속을 가로질러 헤엄치는 느낌이 좋았다. 그 길로 수영은 나의 ‘인생 운동’이 되었다.


다만, 같은 초급반이지만 나와 다른 회원님들의 습득력은 천양지차. 다들 폐활량 또한 어찌나 좋은지 나만 헥헥 댄다. 매월 초, 대부분의 회원님들이 기초반에서 중급반으로 승급해서 떠나가길 여러 번, 어느덧 나는 초급반의 터줏대감이 되었다.


그렇게 수영이 내 삶의 일부가 되어가자 적응하고 배우느라 바빠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영장 벽과 입간판에 빼곡히 붙어 있는 각종 안전수칙 외에도, '실내수영장'이라는 공간에서 엄연히 지켜야 할 예의와 수칙이 있음을.


수영 실력이 다른 회원들에 못 미칠 경우 맨 끝 순서로 출발하는 것, 나의 실력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채 앞 서 출발했으나 뒤따르는 회원의 실력이 월등하다면 나는 그 사람 다음 순서임을 깨닫고 제자리를 찾는 것, 25m 레인을 한 번에 주파하지 못해서 중간에 멈췄다가 다시 출발할 때 뒤따라 오는 회원과의 거리를 확인하는 것, 보통 레인 하나를 반으로 나누어 교차 사용하므로 갈 때도 한 방향, 올 때도 한 방향으로만 다닐 것, 등등.


이뿐만 아니다. 실내수영장의 특성상 목소리가 웅웅 울리기 마련인데 초급반 선생님은 중급반이나 상급반 선생님과 달리 할 말이(해 줄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선생님의 설명에 집중하지 않는 일부 회원들 탓에 선생님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곤 하는데, 그럴 때면 마음 한 구석이 심히 불편하다. ('지방 방송은 잠시 꺼주시길...')


회원들 간에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에 대한 존중, 사용한 킥판은 제자리에 가져다 둘 수 있는 아량. 초급반이라서 더욱 강조되는, 필요한 덕목인 것 같다.  


수영 실력을 늘리는 것보다 실내수영장 풍경을 관찰하기 바쁜 만년 초급반 회원은 오늘 새벽에도 어김없이 출석했다. 50분 수업이 끝나기 몇 분 전, 헥헥거리며 수경을 잠시 벗고 쉬면서 옆, 옆, 옆 레인의 상급반으로 눈을 돌려보니, 회원 분들끼리 마무리 운동 겸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천천히 걸으시는데 다들 무척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초중급반을 거쳐 일정 경지에 오른 분들 다운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동시에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동지애가 보였다.  


예전에, 후배 한 명이 내게 수영을 권하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제가 진짜 오래 수영 다니는데요, 특히, 새벽 수영 다니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뭐야~' 했는데, 이제 알겠다. 그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고 수영장으로 향하는 부지런함은 수영이라는 운동 자체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발현되기 어렵다는 것. 좋아하는 운동을 즐겁게 하는 자, 긍정의 에너지로 똘똘 뭉친 사람이려니.         


”발차기 4바퀴, 갈 때 코어에 중심 잡고 한 팔 자유형/올 때 배영 발차기 4바퀴, 시작! “이라는 선생님의 우렁찬 구령에 맞춰, 오늘도 즐겁게 수영했다. 다만, 나의 생명줄과 같은 킥판을 꼭 붙들고서.

‘씨유숨’ 작가님의 수영 이모티콘은 행복 그 잡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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