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 건물
역시, 심상치 않은 건물이 맞았다. 요즘 건물 같지 않은 분위기를 자아내더라니만.
이 근처 꼼장어 구이 집이 워낙 유명해서 사람이 항상 바글바글한 데 대각선 맞은편에서 외딴 붉은 벽돌 건물이 묵묵히 이 쪽을 바라보며 무상한 세월을 지나오고 있었다.
꼼장어 집에서 회식하고 나와서 택시를 잡을 때도, 조계사에 템플 스테이를 왔을 때도, 점심 먹고 정처 없이 산책할 때도 무심히 지나쳤던 곳이 뒤늦게 눈에 띄었다.
‘경성의건축가들’(김소연, 루아크, 2017)에 따르면, 이곳 2층에 1933년 당시 미국 유학파 박인준 건축사무소가 있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보고 배운 실력을 마음껏 펼칠 요량이었지만 일제 치하에서 순수 미국 유학파가 자리 잡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터.
활동 기간 동안 제대로 된 프로젝트를 따내지 못하셨다는데, 그는 가끔 아니 종종, 이 건물 2층에서 삐죽이 내다보며 바삐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가슴 한편이 헛헛하지 않았을까? 말로 표현 못할 그 중압감, 부담감, 참담함을 어떻게 이겨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