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여보 당신. 내가 더 잘할게.”
월드컵 공원은 남편과 연애 시절 데이트를 했던 곳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더위를 많이 타서 기온이 조금만 올라가도 등에 땀이 흥건하다. 반면에 나는 더위를 별로 타지 않는다. 삼복더위에도 코와 이마에 땀이 살짝 맺힐 뿐.
사위가 아름답게만 보이고 이 세상에 우리 둘 만 존재하는 것처럼 행복에 겨웠던 그때 그 시절, 데이트 장소는 언제나 나의 기호에 맞춰 정하곤 했다.
그날도 그런 계기로 월드컵 공원을 방문했던 것 같다.
아직 늦여름 더위가 기승이던 9월 주말, 공원을 거닐다 그의 손을 이끌고 당시 TV 광고에서 봤던 포즈로 사진을 남겨야겠다며 이렇게 한 방, 저렇게 한 방, 각도가 안 맞는다고 ”처음부터 다시!”라고 외치며 따가웠던 가을볕 아래 한 시간여를 서 있었다.
땀범벅이 되어 산책길 옆 정자에 대자로 드러눕는 그를 보고도 잠깐 쉬었다가 다시 찍어보자는 말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 보니 그때의 나 참 섬뜩하네.
그날 데이트는 오로지 나의 뜻에 군말 없이 따라 준 그의 배려 덕분에 그나마 한 조각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