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커피는 제가 살게요.

by 김젠비



커피는 가볍다.


주로 블랙으로 커피 본연의 향을 즐기는 내 입장에서는 칼로리도 가볍다.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는 해도 그래도 대체로 주변 동네의 식사 가격에 비하면 가격도 가볍다. 무엇보다도 분위기가 가볍다.


“커피나 한 잔 하자”라는 것은 끼니때에 일정을 맞출 필요도 없고 술자리만큼 시간과 체력을 많이 할애할 필요도 없이 부담 없이 이야기 나누자는 뜻이다.


“커피는 제가 살게요”라는 것은 상대방이 식사를 샀거나 다른 호의를 베풀었을 때에 이에 가볍게 화답하는 사회적인 제스처다. 제안하는 사람도 기분 좋게 할 수 있고, 그 제안을 받는 사람도 미안해할 필요 없는.


무엇보다도 커피를 마시는 자리는 언제든지 파할 수 있다. 마음이 맞으면 식은 잔, 빈 잔을 앞에 두고 오래도록 이야기 나눌 수도 있지만 말 그대로 “커피 한 잔” 마시자고 했으니 그저 음료 한 잔 마시는 정도의 시간만 할애하고 금방 일어나더라도 그리 이상할 건 없다.


이 가벼움이 주는 매력이란.


소개팅을 하고 맞선을 보는 사람들이 왜 첫 만남에서부터 식사를 하려고 드는지 늘 의아했다. 왜 만남의 장소가 고급 레스토랑인지 아니면 카페인지에 따라서 상대방의 진의를 가늠하려고 드는지도.


교집합이 좁고 대화거리가 부족한 첫 만남 자리에서라면 굳이 번거롭게 음식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할 필요 없이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그러면서 서로를 알아가다가 마음에 들면 밥, 술, 산책, 영화, 무엇이든 이어갈 수 있는 것이고. 나도 저 사람을 모르는데 저 사람은 나의 무엇을 알고 믿어서 처음부터 비싼 밥을 사야 하며 그것이 성의의 증거가 되어야 한단 말인지. (물론 결혼 10년 차인 나의 의견은 여기에서 전혀 의미 없겠지만.)


사실, 반드시 소개팅이나 맞선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무슨 일이 됐든 잔뜩 기합을 주고 긴장하기보다는 가볍게 자연스럽게 시작하는 편이 좋으니까.


처음 보는 사이, 오랜만에 보는 사이, 조금은 어색한 사이, 어딘가 서먹한 사이. 딱딱하고 어려운 사이.


수많은 사람들의 ‘사이’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은 역시나 ‘그냥 뭐 가볍게 커피나 한 잔’ 일 듯 싶다. 밥 한 끼보다 가볍고, 술 한 잔보다 안전하고 무해한.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읽고 나에게 연락을 한 그대에게. 커피는 제가 살게요. 아, 물론 제목에서부터 말했듯이 이것은 딱히 커피에 관한 글은 아닙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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