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epilogue)가 되어버린 인터루드(interlude)
오늘날 '카페'라는 말은 참 두루 많이도 쓰인다. 커피를 파는 곳도 물론 카페. 샌드위치, 파스타 등 식사거리를 주로 파는 곳도 카페. 심지어 분식집 브랜드에도 때로는 카페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커피랑 아무 상관 없이 모여서 도란도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공간도 카페.
커피를 비롯한 음료를 주로 판매하는 '카페'들도 가게마다 그 세세한 어감은 제각기 다르다. 교외 데이트 장소 신상 핫플 추천! 대형 카페! 이런 곳들도 있는가 하면 자그마하고 조용하게 스페셜티 커피를 내리거나 직접 로스팅을 하는 로스터리 카페들도 있으니까.
요는 - 커피를 매개체로 하여 공간을 소비하는 곳과, 커피가 주인공인 곳들이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너무 당연하게도 - 결국은 공간과 커피, 커피와 공간, 두 가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곳들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오래도록 남기 마련이다.
그 공간에서 경험한 것은 커피였지만 오랜 시간 지나서 돌아보면 세세한 음료의 향이나 음식의 맛보다는 그 공간의 빛, 온도, 소리 그 총체적인 감각으로 기억된다.
나에게 파주 운정동의 인터루드커피가 그랬던 것처럼.
안타깝게도 이제는 과거형이 되어버린 이야기다. 이름은 인터루드(interlude)인데 이렇게 에필로그(epilogue)가 되어버렸네.
이 가게를 묘사할 방법은 많이 있었다. 운정동 디저트 맛집, 파주 데이트 장소 추천, 까눌레 맛집 등등 그런 흔한 검색어와 해시태그들.
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아... 그게 아니야, 아니라고. 매번 그런 뻔한 표현을 쓰고 싶지 않아서 유독 말을 고르고 아끼곤 했다. 왜냐하면 몇번을 찾아가도 매번 느낄 수 있었던 이 공간의 매력을, 그 공간 안에서 보낸 시간의 기억을 그렇게 뭉뚱그리는 게 마땅치 않아서.
나의 인터루드는 고작 '무슨무슨 맛집'으로 축약될 수 없다고! 라는 애정 단골의 투덜거림.
우선, 소리.
매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날서지 않은 적당한 데시벨이 맞이해준다. 때로는 조곤조곤 대화 나누는 고객들, 때로는 잔잔하게 깔리는 재즈 음악 소리. 이따금씩 커피를 내리는 에스프레소 머신, 그리고 까눌레 등 구움과자를 구워내는 오븐의 소리.
'이런 소리의 공간이 되기를 원해요'라는 오너의 의도가 전달된 탓이었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이런 걸 좋아하는 (그러니까 나 같은) 고객들이 주로 찾아서 그랬을 수도. 와글와글 왁자지껄 귀를 힘들게 하는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인터루드를 떠올리면 늘 떠오르는 음악 데시벨이 있을 정도로.
이런 소리 속에 있노라면 말소리는 저절로 보드랍게 깔리기 마련이다. 웃음소리로 따지자면 '깔깔깔'보다는 '싱긋'이 어울리는 기분이 된다. 혹여 잠시 목소리가 커지더라도 어쩐지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이 다시 잦아들기 마련이다.
인터루드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이 장소에 들어서면 내 일상의 페이스도 반 박자 정도 느려지는 것만 같았다. 깊은 숨을 들이쉬고 차분하게 느릿느릿 움직이게 되곤 했다.
그리고, 빛.
화사하면서도 차분한 버터크림 옐로우. 매장 곳곳에 놓인 푸릇푸릇한 식물 화분들. 커다란 전면창을 통해 들어오는 그날그날의 햇빛. 은은하게 일정 조도를 유지해주는 조명 도구들.
문 열고 들어가서 좌석을 선택하기도 전에, 자리에 앉기도 전에, 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이미 감각으로 느낄 수 있다. 내가 잘 아는, 익숙한 그 공간에 왔음을.
이 조명... 온도... 습도... 라는 표현이 감성밈으로 쓰이는 요즘이라서 유사한 소리를 하기가 머쓱하지만. 이거야말로 말 그대로 내 기억 속의 조명, 온도, 습도... 가 맞는걸 어떡하나. (자고로 사랑과 재채기 그리고 덕질은 숨길 수 없는 법이랬다.)
수년 동안 참 여러 번 다녔던 카페이건만 아마 이 공간의 빛에 대한 기억은 니콘 FM2 필름 카메라의 색감으로 기억될 것 같다. 영업 종료 예정의 소식을 듣고서 내 기억을 박제하기 위해서 DSLR, 필름 카메라 싸들고 달려갔던 마지막 몇 번의 방문.
그러니까, 기본 아메리카노도 정말 잘 뽑고, 퐁신하고 달콤한 비엔나 커피도 일품이었으며, 내가 아는 최고의 까눌레를 구워냈으며, 커스터드 푸딩도 완벽하게 내 취향이었지만 -
인터루드 커피를 고작 디저트 맛집으로 축약해서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고. 커피의 공간이었지만, 단순히 커피와 공간 그 이상이었다고.
이 세상에는 어딘가에 이토록 멋지고 아늑한 곳, 내 마음에 쏘옥 드는 곳, 마치 누군가가 내 마음을 읽어내서 구현해낸 것 같은 그런 곳이 존재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던 나의 카페 추억.
인터루드커피를 추억하며.
그리고 이런 카페 공간을 알게 해준 커피라는 매개체는 역시 멋지다는 생각으로 마무리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