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틈에 피어나 짓밟혀도 당신은 아름다운 꽃이다 04
내가 학대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친구 두 명을 잃은 후 나는 새로운 가면을 쓰고 살게 되었다. 원래 나의 타고난 성격은 밝고 웃음이 넘쳤다. 그러니까 가면까지는 아니었고, 학대받는 현실을 감추기 위해 살짝 연기를 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나는 밖에서 더욱 명랑하게 행동했고, 부모에게 듬뿍 사랑받는 아이처럼 보이기 위해서 귀여운 척까지 했다. 또 누군가가 내 참혹한 현실을 알게 되면, 나를 혐오하거나 떠나버릴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할 때 너무 놀라운 점은, 그렇게 끔찍한 학대를 매일 당하면서도 집에서도 밝고 씩씩했다는 점이다. 어렸음에도, 그들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이미 그때도 마음속에서 나는 그들을 내 부모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냥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이고 씩씩한 어린이였던 것이다. 그들은 늘 밝고 꿋꿋한 나에게 맨날 처맞으면서 뭐가 좋아서 실실 웃냐고 기분 나빠했다. 그러나 나중에 학대가 오래 지속되고 사춘기를 지나면서 고등학생 무렵부터는 몸도 마음도 지쳐서 집에서는 점점 어두워졌고 아무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학대는 정도가 훨씬 심해졌고, 나는 그냥 그 여자의 악다구니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모든 폭력을 견뎠다. 생각해 보면, 그 정도 컸을 때는 내가 힘으로 이길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한 번도 반항한 적이 없다.
그 여자가 내 머리털을 뽑고 나를 물어뜯는 동안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은 ‘그래, 당신이 내 몸은 파괴할 수 있겠지만, 절대로 내 영혼은 건드릴 수 없어’였다. 그들과 똑같은 폭력으로 맞서기보다, 그들이 아무리 짓밟고 방해해도 훌륭한 사람이 돼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큰 복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버텼다.
오랫동안 지속된 학대로부터 나를 지켜준 것은 나는 분명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고, 좋은 엄마가 될 것이라는 자기효능감이었다. 부모에게 사랑받는 공주인 듯 친구들 앞에서 귀여운 척하며 자신을 보호하던 여린 마음의 사춘기 소녀는 그렇게 강한 자신을 발견하며 스스로를 양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