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틈에 피어나 짓밟혀도 당신은 아름다운 꽃이다 05
나는 대학교 3학년 때 드디어 집에서 완전히 쫓겨났다. 대학생이 된 후에도 학대는 계속되었기에 진작 나왔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내가 독립하려는 기미가 보일 때마다 그 여자는 내가 집을 나가면 주변 사람들에게 온갖 수치스러운 말로 소문을 낼 거라고 협박하며 막았다. 평생을 늘 협박과 폭력 속에 살고 아직 너무 어렸던 나는 그 여자의 협박이 너무 무섭기만 했고, 그저 막연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 먼 곳으로 탈출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여자가 얼마 안 되는 내 짐을 모두 집 밖으로 내던지며 내쫓았고, 나는 그렇게 벗어날 수 있었다.
학교 앞에 하숙방을 구하고 인사동의 전통찻집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학교에 다녔다. 괴롭히는 사람이 없는 것만으로도 평화롭고 편안했다. 새로운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인 J의 어머니가 찻집에 오셨다. J의 부모님은 지적이고, 다정하고, 유머도 넘치는 이상적인 부모님이셨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J는 고등학교 때 내게 늘 먼저 다가와 밝은 말투로 칭찬을 해주고 곁에 있어 준 고마운 친구이다. J의 어머니가 친구분들과 찻집에 오셨을 때, 나는 바쁘게 일을 하느라 몰랐는데, 차를 드신 후 계산하면서 매니저 오빠에게 내 이름을 대며 어디 있는지 물어보셨다고 한다.
매니저 오빠가 불러서 나는 친구의 어머니를 보고 인사를 드렸다. 친구의 어머니와 일행분들이 떠난 후 매니저 오빠가 누군지 물어봤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어머니세요”라고 대답했다. 양심상 “제 어머니세요”라고까지 말하지는 못하고, 앞에 “친구”를 생략하고 “어머니세요”라고만 대답한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저렇게 우아하고 멋진 분이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고, 그렇게 대답함으로써 잠시나마 진짜 내가 그런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이상적인 부모님을 갖게 되는 방법은 다시 태어나도 100% 보장되지 않을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나는 친구 J에게 부럽다는 마음조차 가진 적이 없었다. 늘 나는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비정상적인 인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마음이 아예 생기지 않았다. 20년도 훨씬 지난 어느 날에서야 나는 J에게 그 일을 이야기했다. 나는 늘 명랑하게 행동했기에, 친한 친구였던 J조차 내가 학대를 받았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J는 안타깝고 안쓰러워하는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며 나를 바라보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옥에서 태어나 잔인한 악마의 손아귀 아래 자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현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상상조차 안 되는 일일 것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짐과 고민을 안고 살지만, 각자 인생의 난이도가 다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슬픈 사실이다. 나는 스무 살 남짓 어렸던 그 시절의 나에게 찾아가서 꼭 안아주며 말해주고 싶다. 너는 사랑스러운 삼남매에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엄마가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