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개발서만 너무 읽어 오랜만에 소설이 읽고 싶어 졌다. 리디 북스 책방을 구경하다 '달까지 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장류진 작가가 그전에 썼던 '일의 기쁨과 슬픔'을 재밌게 읽었더랬다. 그 작가가 그 작가라는 건 나중에 남편이 얘기해 줘서 알았지만. 어쩜 그렇게 기억을 못 하냐고 한소리 들었다. 그 한소리도 또 금방 까먹기 때문에 내가 너랑 잘 사는 거라고. 뭘 모르시기는.
여주인공 세명이 남 같지 않은 이유는 나도 저들이 말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에 포함이었고, 거기서 탈출 한지 얼마 안 된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남편은 세명중 리더 격인 은상 언니와 자기가 겹쳐 보인다고 한다. 나도 동의한다. 그리고 나는 '다해'라를 주인공과 닮았다고 한다. 나도 전적으로 남편에 결정을 많이 믿는 편 이니깐.
이민을 왔다고 누구나 잘 풀리는 건 아닐 테지만, 적어도 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게 잘 풀렸다. 고등학교 내신으로만 대학을 가는 캐나다 시스템에서, 우연히 별로 공부 잘하는 애들이 가는 학교가 아닌 고등학교를 졸업해 평균이 좋았다. 그렇게 캐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토론토 대학을 들어갔다. 북미는 입학은 쉬워도 졸업이 어렵다는 정설을 깨고 졸업도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잡기까지 알바를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 일주일에 두 개 다른 알바를 한 적도 있다. 이 동네에선 알바에 달인으로 약간 유명하기도 했다. 캐쉬어, 화장품 판매, 정수기 판매, 미용실 알바, 베이베 시터 알바, 팝업 스토어 알바, 대학교 커리어센터 리셉션 알바 등 생각나는 것만 적어봐도 이 정도다. 고등학생 때 한국 식품 캐쉬어로 일할 땐, 한국 어머님들 손님이 '어머 네가 그 대학에 붙었다고? 축하한다. 그런데 졸업이 그렇게 어렵데. 잘할 수 있겠어?'라며 축하인지 아닌지 모를 인사를 받기도 했다. 같이 일하던 한국 남학생은 고등학교 일 년을 쉬면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 애 어머니는 '우리 애는 진득하니 공부해서 대학가야 하니, 헤어지는 게 어떻겠니'라는 말도 들었다. 내가 대학을 붙고 나선 다시 만나보는 게 어떻겠니로 바뀌었지만.
대학을 들어가면서 같은 대학 다니던 남편을 만났다. 또래보다 2년 늦게 입학하느라 동갑인 남편은 3학년 난 1학년이었고, 4년제를 5년 다니면서 졸업하는 동안 남편은 대학도 졸업하고 중간에 1년 코업도 하고, MBA 도 하면서 나랑 같은 해에 난 대학교 졸업 남편은 대학원 졸업 이렇게 학교 공부를 끝마쳤다. 그리고 만 25살에 결혼을 했다.
둘에 학자금 대출은 총 13만 불. 한국 돈으로 하자면 1억 3천 가까이 되는 액수이다. 11년이 지난 지금 돌아봐도 정말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2/3 이상 남편 학자금 대출이었지만, 첫 직장 이후로도 쭉 연봉도 나보다 1/3 이상 높았다. 결혼하고 일 년은 시댁에 들어가 살았다. 이제 갓 졸업한 어린 부부는 재산은 없고 대출만 가득이었기 때문이었다. 일 년 후, 회사 근처로 분가를 하게 되면서 드디어 제대로 된 경제활동이 시작되었다.
책에서는 약 8개월 동안 주인공들이 겪은 일이 중심적으로 나온다. 우린 그 정도로 폭발적인 투자 성공으로 조기 은퇴를 한건 아니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캐나다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을 경험하긴 했다. 지난 3년간의 일이다.
책에 나온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지금 이게 (이더리움 투자) 우리에 유일한 탈출구인 것 같다고. 리더인 은상 언니가 열심히 공부하고 확신해 차서 동생들을 이끈다. 우리가 첫 부동산 투자를 시작할 때 주변에 만류가 만만치 않았다. 예를 들어 왜 서울이 아니고 외각인지. 뭘 해도 서울에 사야지. 망하면 어쩔라고 그러는지. 사람들이 많이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고, 많이 안 하는 데에도 다 이유가 있는데 도대체 처음 하는 투자를 왜 반대로 하려고 하느냐며 열이면 열 다 말렸다. 우리는 집값 자체가 오르는 것보다, 렌트비 받아서 이것저것 (재산세, 소득세, 소소하게 고치는 비용, 은행 융자 (원금+이자) 등)을 다 빼고도 플러스로 돈이 남는 시스템을 원했다. 그러려면 집값이 너무 비싼 토론토에선 아무리 계산해도 매월 마이너스로 내 돈을 더 채워 넣어야 하기 때문에 외각으로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직감적으로 안 것 같다. 부동산 투자가 우리의 탈출구 라는걸.
그렇게 투자 3년 만에 우리는 회사생활에서 탈출했다. 책에 주인공 3인방은 투자가 롤러코스터를 탈 땐 애간장이 녹는 경험을 했지만, 캐시 아웃한 후에 다시 만났을 땐 서로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고 하는 대목이 있다. 내가 요즘 경험하는 거다. 직장인에게 최고에 보약은 퇴사라는 얘기를 퇴사하고 알았다. 퇴사 한 달 차인 나는 지난 몇 년간 자연스레 기피하게 되었던 셀카를 다시 찍고 있다. 세수도 가끔 안 하고 다니는데도, 셀카가 너무 마음에 든다. 표정이 매우 환하다.
책에 주인공들은 성공을 만끽하며 차도 사고 예전엔 특별한 날만 먹던 조각 케이크도 편하게 시켜 먹는다. 우리 집은 그 반대다. 조기 은퇴를 하면서, 월급 받을 땐 별생각 없이 사 먹던 외식들을 대대적으로 줄였고, 쉽사리 사던 다른 사람의 노동/서비스도 웬만하면 직접 하려 두 번 세 번 방법을 고민한다. 이 부분은 정 반대이지만, 그들이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한 투자를 소신껏 할 때 느꼈던 고독함? 은 비슷하다고 느꼈다. 직접 해본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유대감이 느껴졌다. 책의 주인공과 나의 투자 종류는 다르지만, 결정을 내리는 무게감은 비슷하다. 전재산을 투자하든, 마이너스 통장으로 투자하든, 투자금을 받아서 투자하든, 적금식으로 투자하든 뭐라도 결정을 내릴 때까지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자료를 모으고 공부하고 확신을 가지고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과정, 그 과정과 결과/책임은 오롯이 본인이 떠맡아야 하는 것이다.
나도 지금 소설 속에 주인공처럼,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 정지 버튼을 누른 지금 천천히 고민하는 중이다.